가사의 장르

시대경향에 관계없이 가사는 시가에 포함돼
오늘날 시와 가의 의미 분화되고 있어

  Ⅰ,歌辭(가사)의 장르
  흔히 한국의 詩歌文學(시가문학)이라 말할 때 이 속에는 ①사뇌가 ②景幾體歌(경기체가) ③俗謠(속요) ④時調(시조) ⑤歌辭(가사) 등을 포함해서 부르고 있는 것 같다. 즉 ①~⑤의 上位(상위) 장르로서 詩歌(시가)를 인정할 때 우리 고전문학에서는 고전소설을 제외한 거의 모든 작품들이 시가에 귀속됨을 알 수 있고 이런 점에서 고전문학에서 詩歌文學(시가문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큼도 알 수 있겠다.
  그런데 現實的(현실적)으로는 흔히 詩歌文學(시가문학)의 하나라고 생각되는 歌辭(가사)에 한해서는 이것이 詩歌(시가)라고 하는 見解(견해), 詩歌(시가)가 아니고 隨筆(수필)이라고 하는 見解(견해), 詩歌(시가)ㆍ隨筆(수필)의 양 性格(성격)을 同時(동시)에 具有(구유)한 특이한 形態文學(형태문학)으로서 詩歌(시가)와 對等(대등)한 위치에 설 수 있는 獨立(독립)된 歌辭(가사)장르로 規定(규정)하는 見解(견해), 律文(율문)으로 된 敎說(교설)(述(술))文學(문학)이라고 하는 見解(견해) 등등 그 見解(견해)가 정말 구구하다.
  이와 같이 歌辭(가사)의 장르를 規定(규정)하기 어려운 것은, 무엇보다도 歌辭(가사)가 가지고 있는 特異(특이)한 性格(성격) 때문이겠지만, 後學(후학)을 위해서 歌辭(가사)를 詩歌(시가)에 包含(포함)시킬 것이냐 아니면, 詩歌(시가)와 獨立(독립)된 別個(별개)의 장르로 취급할 것이냐 하는 문제는 매우 필요ㆍ절실한 문제가 된다. 筆者(필자)는 本考(본고)에서 이 문제에 대한 解答(해답)을 구하고자 하는 것이다.


  (1) 詩歌(시가)와 歌辭(가사)
  歌辭(가사)가 詩歌文學(시가문학)에 포함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문제에 있어서 제1차 요건은 詩歌(시가)가 무엇이냐 하는 것이다. 詩歌(시가)가 무엇이냐에 있어서 詩(시)와의 대비 관계는 매우 중요한 것이다.
  詩(시)와 詩歌(시가)의 공통점은 다 같이 詩(시)를 공유하는 것이다. 다른 점은 詩(시)는 ‘詩(시)’이지만 詩歌(시가)는 ‘詩(시)+歌(가)’ 로 ‘歌(가)’字(자)가 하나 더 첨용되고 있는 것이다.
  詩(시)→詩(시) 詩歌(시가)→詩(시)+歌(가)
  詩(시)에다 歌字(가자)가 하나 더 添用(첨용)된 詩歌(시가)는 이 語彙(어휘)가 어떻게 添用關係(첨용관계)를 가지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는 것이 詩歌(시가)의 해석을 위해 필요한 일이다. 이것을 알아보기 전에 文獻的(문헌적) 用例(용례)를 찾아 그에 合當(합당)할 해석을 할 수도 있겠지만, 결국 語彙(어휘)의 結合關係(결합관계) 내지 添用關係(첨용관계)의 근본적인 論及(논급)은 불가의하다.
  詩(시)+歌(가)가 倂列的(병렬적) 복합관계의 어휘라고 하면, ‘詩(시)와 노래(歌)’라는 풀이가 된다. 詩(시)+歌(가)의 복합관계가 상호 枸束的(구속적)이라고 한다면, 詩(시)로 된 노래 또는 노래로 불린(릴) 詩(시)라는 풀이가 된다.
  ㉠詩(시)+歌(가)=詩(시)와 노래 (병렬적 복합어)
  ㉡詩(시)+歌(가)= ⓐ詩(시)로 된 노래=歌(가)(구속적 복합어) ⓑ노래로 불린(릴)시=詩(시)

  詩(시)와 歌(가)의 어휘 결합에서 얻어낼 수 있는 가능한 해석은 위와 같이 셋으로 나왔다. 詩歌(시가)가, 詩(시)와 노래, 詩(시)로 된 노래, 노래로 불린 시로 해석될 수 있는 하나하나를 다시 檢討(검토)해 보기로 한다. ㉠에 의하면 ‘詩(시)’와 노래(歌)는 原始藝術(원시예술)에서는 舞(무)와 함께 同時的(동시적)인 것이다. 詩(시)에서→歌(가)나 歌(가)에서→詩(시)가 됨을 受容(수용)하지 않고, 오직 兩者(양자)는 대등한 것이다. 만약 詩歌(시가)를 이와 같은 개념적 범주로 파악한다면, 매우 폭넓은 하나의 文學樣式(문학양식)이 될 것이다.
  ㉠에 의하면, 詩(시)로 된 노래, 노래로 불린(릴) 詩(시)인데, 요는 詩(시)냐 노래(歌)냐 하는 것이 선택되어야 한다. 詩(시)를 선택하든 歌(가)를 선택하든 詩(시), 歌(가), 그 自體(자체)로서는 完璧(완벽)할 수 없고 各各(각각)이 그 相對的(상대적) 부속성분을 가져야 한다. 따라서 비중의 문제다. 그리고 노래로 불릴 수 있는 詩(시)는 달리 말하면, 詩(시)로 표현된 노래라 해도 통할 것이다. 詩歌(시가)를 이와 같은 개념으로 파악한다면 ㉠보다는 ㉡이 制約的(제약적)이다.
  詩歌(시가)를 ㉠과 같이 詩(시)와 노래(歌(가))라고 한다면, 사뇌가, 경기체가, 俗謠(속요), 時調(시조)는 말할 것도 없고, 歌辭(가사)도 詩歌(시가)속에 包含(포함)될 수 있다. 특히 歌辭(가사)가 詩(시)가 될 수 없다는 이유로 詩歌文學(시가문학)에서 除外(제외)시키는 見解(견해)도, 이 경우에는 無用(무용)하게 되는 것이다. 왜냐하면, ‘詩(시)’이거나 ‘歌(가)’이거나 둘 중에 하나이면 될 것이기 때문이다.

  ①詞腦歌(사뇌가) ②景幾體歌(경기체가) ③俗謠(속요) ④時調(시조)를 詩(시)로 봄에는 아무런 견해 차이를 볼 수 없다. 그리고 ①~④를 노래(歌(가))로 인정하는 데에 아무도 異見(이견)을 갖지 않을 것이다. 다만 歌辭(가사)만을 詩(시)가 될 수 없다는 한 이유로 시가에서 제외시키는 경우가 있지만, 판소리系(계) 소설들을 노래(歌(가))로 인정하듯이 歌辭(가사) 또한 노래(歌(가))를 전제로 한 것임을 아무도 부인하지 못한다.
  그렇다면 歌辭(가사)를 詩歌(시가)에서 제외시켜야 한다는 견해는 ㉡의 詩(시)로 된 노래, 또는 노래로 불린(릴) 詩(시)라고 하는 詩歌(시가)의 槪念範疇(개념범주)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만약 ㉡의 개념범주를 따른다고 하더라도 ‘詩(시)’가 과연 무엇인가 하는 문제를 놓고 생각할 때, 가사를 가사 속에서 제외시키는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가 않을 것이다.
  詩經(시경)에서 말한 詩(시)가 오늘날 우리가 poem이라고 하는 말과 같을지 자못 의심스럽고, 뿐만 아니라 시가 시였기 때문에 詩(시)인지 이에 대한 검토도 있어야 할 것이다.
  文化史的(문화사적)으로 봐서 藝術(예술)의 分化(분화)는 항상 變化(변화)를 바탕으로 하여 일어나고 있으므로 오늘날 우리가 意味(의미)하는 詩(시)는 우리 時代(시대)가 갖는 한 경향적 규범일 뿐이다. 따라서 歌辭(가사)가 오늘날 文學(문학)장르 중 어디에 屬(속)할 것이냐는 해답을 주기 위해 미리 예상하고 지어진 作品(작품)은 아닐 것이다.
  歌辭(가사)가 오늘날 문학 장르 중 어디에 속할 것인가에 대한 해답을 간편하게 구하기 위해 歌辭(가사)가 갖는 특징 위에다가 現代人(현대인)이 보기 편리한 새로운 의상을 덧씌우는 것은 아무리 보아도 古典(고전)에 대한 올바른 이해라고 볼 수는 없다. 몇 세기에 걸친 그 內容的(내용적) 變人(변인)을 충분히 고려할 때 現代(현대)와의 脈絡(맥락)은 찾을 수 있겠지만, 歌辭(가사)는 歌辭(가사)일 뿐인 것이다.


  (2) 詩歌(시가)와 詩(시)
  국어대사전에 詩歌(시가)의 풀이를 보면, ①‘詩(시)’, ②‘詩(시)와 노래’로 풀어 놓고 있다. ①의 ‘詩(시)’라고 풀이한 것은 ‘詩通歌(시통가)’ 라는 견해이다. 현대적 감각으로는 詩(시)는→문학으로, 노래는→음악으로 통하여 각각 다르게 쓰이지만 옛 사람들의 경우에는 동의어로 쓰였다. 古代人(고대인)의 원시종합예술적 형태에서 노래는 곧 詩(시)일 것이고, 詩(시)는 곧 노래였을 것이다.
  唐詩人(당시인) 李白(이백)의 ‘子夜吳歌(자야오가)’ ‘蛾眉山月歌(아미산월가)’ ‘秋浦歌(추포가)’나 杜甫(두보)의 ‘悲歌(비가)’는 엄밀히 말해서 노래(歌(가)) 아닌 詩(시)였지만 ‘歌(가)’라 命名(명명)했음을 보아도 그렇고, 포은의 丹心歌(단심가)나 吉再(길재)의 懷古歌(회고가)도 時調(시조)(詩(시))였지만 歌(가)라 했음에서 알 수 있다. ①의 풀이에 따른다면, 歌辭(가사)의 ‘歌(가)’字(자)는 곧 詩(시)인 것이다. 歌辭(가사)의 歌(가)가 詩(시)로 通(통)하는 이 문제에는 詩(시)(Poem)와는 別個(별개)의 문제인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두 번째 풀이는 詩(시)와 노래라고 하여, 詩(시)와 노래가 엄연히 詩(시)와 歌(가)로 분리되어 파악하는 여기에 現人的(현인적)인 觀點(관점)이 적용하고 있음을 알 수가 있다. 그리고 ①의 詩(시)에서→②詩(시)와 노래로 풀이됨에 있어서는 詩(시)에서→다시 詩(시)와 노래(歌(가))로 分化(분화)되고 있음을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①詩(시)―②→ⓐ詩(시)→ⓑ歌(가)
  ①의 ‘詩(시)’에서→②의 ⓐ‘詩(시)’로 됨에는 ‘詩(시)’의 意味縮小(의미축소) 내지는 分化(분화)가 예상되고, 따라서 우리는 詩(시)가 詩(시)였기에 詩(시)가 아니라, 詩(시)가 파악되고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다.
  尙書舞典(상서무전)에 의하면 詩(시)와 歌(가)가 약간 달리 풀이되고 있다. 詩言志(시언지), 歌永言(가영언)이라 함이 그것이다. 詩言志(시언지), 歌永言(가영언), 詩言志(시언지)에서 오늘날 흔히 말하듯 詩(시)가 반드시 韻文(운문)이어야 할 당위성을 찾아볼 수 없고, 그래서 오늘날 말하는 韻文(운문)은 文章表現(문장표현)―言(언)(言語(언어))의 한 形式(형식)에 불과할 것이고, 詩(시)는 文學(문학)(言(언)) 類型(유형)의 하나일 뿐이다.
  詩言志歌永言(시언지가영언)에서 詩(시)는 곧 言(언)이요. 歌(가)는 言(언)(詩(시))을 노래하는 것이 된다. 詩經(시경)에서는 詩者志之所之也(시자지지소지야) 在心爲志(재심위지) 發言爲詩(발언위시)라 했다. 마음속의 뜻이 말로 나타난 것이 詩(시)요. 그 말을 노래한 것이 歌(가)이다.

  詩(시)든 歌(가)든 言語(언어)를 共有(공유)한다. 詩通歌(시통가)에서 詩(시)가 歌(가)로 通(통)할 수 있는 要件(요건)의 하나에는 言語(언어)이기 때문이다. 이 言語(언어)에는 ⓛ人心之發於口者(인심지발어구자) 爲言(위언)이라 할 때의 그것이지 ①言之有節奏者(언지유절주자) 爲歌詩文賦(위가시문부)를 必須(필수)로 해야 한다고 지시하지는 않는다.
  散文(산문)이냐 韻文(운문)이냐, 報道文(보도문)으로서의 言語(언어)냐 感動的(감동적) 언어냐, 직관을 통한 창조냐 說明(설명)하고 批評(비평)하는 言語(언어)냐의 선택이 요구되지 않는다. 또 歌(가)가 반드시 樂(악)이어야 할 까닭도 없다.
  歌辭(가사) 作品(작품)이 3ㆍ4調(조) 또는 4ㆍ4調(조)를 律調(율조)로 하는 율문이어서 詩歌(시가)라고 말해도 틀린다. 現代的(현대적) 의미의 Poem이 아니고 Eessy적 性格(성격) 때문에 詩歌(시가)에서 제외해서도 맞지 않는다.
  이러한 까닭과 性格(성격)은 바로 ‘歌辭(가사)’ 文學(문학)의 성격을 잘 나타내어 줄 뿐이지, 가사를 詩歌(시가)에 포함시켜야 하는가 제외시켜야 하는가를 決定(결정)할 수 있는 要件(요건)은 아니다. 如上(여상)에서 말한 詩歌(시가)의 개념 속에 歌辭(가사)는 엄연히 놓여 있었다. 新羅人(신라인)들의 입으로 노래한 사뇌가나 경기체가, 속요, 시조가 詩歌文學(시가문학)이듯이, 오늘날 사람들의 詩(시)에 대한 槪念(개념) 規定(규정)과 상관없이 가사도 詩歌文學(시가문학)에 포함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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