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온한 권력에 대한 성찰

전화벨이 울린다. 정치영화가 계속 개봉되는데 어떻게 생각하냐며 영화기자가 물어왔다.
그러고 보니 궁중 사극 ‘광해, 왕이 된 남자’도 시대를 넘어선 정치영화다. 고(故) 김근태 의원의 수기를 바탕으로 만든 ‘남영동 1985’는 곧 부산영화제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웹툰 작가 강풀 원작의 영화 ‘26년’도 촬영이 한창이다. 광주 계엄군과 민간 학살 책임자를 다루는 이 작품은 간접적 정치 검열 효과인지 투자가 끊어졌다. 이 소식을 접한 일반인 1만여 명이 ‘제작두레’ 형식으로 4억원 이상의 성금을 투자해 영화는 완성 막바지다. 보고픈 영화를 함께 만드는 이러한 두레정신은 자본 검열을 넘어서는 표현의 자유를 향한 몸짓이다. 고(故) 육영수 여사의 삶을 담은 ‘퍼스트레이디-그녀에게’도 제작 중으로 대선 전 극장에 걸릴 것이라고 한다.

대선을 앞둔 시점에 정치영화들이 이어지는 것은 영화와 현실이 함께 돌아가는 흥미로운 현상이다. 영화는 현실이 아닌 또 다른 허구 세계를 만든다. 그렇다고 현실세계와 무관한 것은 아니다. 굳이 들뢰즈를 인용하지 않더라도 예술세계에서 창작은 돈벌이용만이 아니다. 그보다는 현실 세계의 앙금, 불만, 억압을 자양분 삼아 부조리한 현실에 저항하는 작업으로 예술세계는 창조된다.

그런 맥락에서 ‘광해, 왕이 된 남자’는 조선의 15대 임금 광해군에 얽힌 숨겨진 기록을 상상하며 펼쳐진다. 임금 뒤에 ‘왕’이란 호칭대신 ‘군’이 붙은 경우는 폭군을 뜻한다. 하여 연산군과 더불어 폭군으로 알려진 광해군이지만 당대와 현재의 평가가 다르다. 그런 문맥에서 영화제목을 ‘광해군’이란 일반적 호명에서 ‘군’자를 빼고 ‘광해’를 붙인 것이리라.

“숨겨야 할 일들은 기록에 남기지 말라 이르다”라는 광해일기의 기록, ‘조선왕조실록’에서 사라진 15일간의 행적. 사라진 그 빈 공간에서 임금을 닮은 광대 하선이 왕노릇 하는 무대를 통해 궁중 권력이 해부된다.

광대 하선은 그를 발탁해 20냥을 주기로 한 도승지 허균의 지시대로 허수아비 노릇을 한다. 그러나 궁중회의를 지켜보면서 탐욕스런 사대부 권력자들의 음흉한 위선에 저항하기 시작한다. 온갖 모사와 역모 속에서 자신의 권력 유지에 전전긍긍하던 왕 광해와 달리 그는 자신과 같은 백성을 위해 과감한 선택과 지시를 내린다. 이 광경을 구경하노라면 사대부들이 명나라에 사대하며 권력을 유지해 나가는 곡학아세의 태도에 소름이 끼친다.

그런 장면은 허구지만 현실을 성찰하게 만든다. 우리는 지금도 무엇엔가 사대하는 건 아닐까? 영어로 실력을 평가하고, 큰 나라의 권력을 섬기고 거기 충성해 권력을 누리려는 태도, 그런 작태가 현실정치, 교육현장에 없다고 부인할 수 있을까?
그런 문맥에서 대선을 앞두고 범죄영화와 정치영화는 권력이 왜 범죄를 품고 가는지 가늠하게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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