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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11.12 20: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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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랑스런 동국인 <36> 박영석재단 김진성 동문금산지교(金山之交), 평생을 산과 함께 할 산악인

   
▲김진성(전자계산83입학) 동문
인간은 자연 앞에 어떤 존재일까. 자연과 인간의 대립에 대해서는 지금까지도 많은 논란이 있다. 이러한 가운데 자연은 정복하는 것이 아니라 순응하여 극복해 나가는 존재라 말하는 이가 있다. 안나푸르나의 거친 눈보라 속에서 절친한 지기(知己)를 잃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자연을 결코 원망하지 않는다. 오히려 지기가 그토록 사랑했던 자연을 가슴에 품고 남겨진 유업을 이어 가고 있는 김진성(전자계산83입학) 동문을 만났다.

형제들과 어울려 집 근처 인왕산을 놀이터 놀러가듯 오르내리던 한 소년. 산은 그에게 자연스레 다가와 어느순간부터 그의 삶을 푸르게 물들여 버렸다.
“어린 시절부터 산은 저에게 절친한 친구 같은 존재였어요. 그때부터 산과 함께 하는 인생을 시작하게 된거죠” 다부진 체격과 날카로운 눈빛에서 느껴지듯이 김 동문의 첫 인상은 전형적인 산(山)사람이였다. 산과 첫 인연을 맺던 어린 시절을 회상하자 얼굴에서 어느덧 인왕산을 놀이터 마냥 놀러 다니던 어린 소년을 엿볼 수 있었다.

김진성(전자계산83입학)동문과 우리대학과의 만남은 필연적이였다. 고등학교 재학 당시 산악부에 가입해 산악인의 꿈을 키워가던 그는 북한산에서 훈련하던 중 같은 장소로 산악 훈련을 온 우리대학 산악부를 만나게 된다.
“당시 동국대 산악부는 저에게 선망의 대상이었어요. 산을 꿈꾸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정도로 체계적인 커리큘럼과 선·후배간의 우애로 유명해죠” 대학 산악부 최초로 히말라야 마나슬루를 정복한 이인정(상학72졸)동문의 모습이 동국대 산악부에 들어가고자 하는 꿈을 더욱 키웠다.

운명적인 박영석 대장과의 만남
우리대학에 입학하자마자 그는 산악부 생활에 푹 빠져들었다. 그리고 대학 1학년 산악부실에서 박영석 대장과 운명적인 만남을 가진다.
“그 당시 영석이와의 만남은 아직도 생생해요. 산악인이라면 누구나 ‘히말라야 등반 성공’을 최종 목표로 삼아요. 저 또한 마찬가지였는데 같은 목표를 가진 영석이를 그 날 처음 마주한거에요. 그 당시 느낌이 마치 저를 보는 것 같았죠”

그 날 김 동문과 박 대장은 ‘세계 최고봉 에베레스트를 같이 가자’라는 약속을 했다. 둘은 약속을 계기로 죽마고우가 되어 28년간 거의 모든 산행을 함께 했다. 또한 2011년 10월 박영석 탐험문화재단을 설립하게 된다. “영석이가 우리가 산을 통해 배운 것들을 청소년들에게 나눠주자고 제안해 시작했어요”

하지만 그 뜻을 미쳐 펼치기도 전에 박 대장은 안나푸르나에서 새로운 루트를 개척하려다가 눈보라 속으로 사라져 버렸다. 처음 그 소식을 접했을 때 김 동문은 누구보다 큰 충격을 받았다. 그렇지만 마냥 슬픔에 빠질 순 없었다. 그는 친구를 찾기 위해 곧장 긴급 수색대를 조직해 수색 대장으로 떠났다.
“비록 같은 뜻을 펼쳐보기도 전에 떠났지만 항상 마음속에 살아있어요. 친구가 자주 말하던 ‘1%의 가능성만 있어도 도전한다’라는 말을 새기고 친구이자 스승이였던 영석이를 생각하며 그의 뜻을 펼칠 수 있도록 할 겁니다”

열정으로 이뤄 낸 산악인의 삶
대학 산악부 활동은 훈련의 연속이였다. 1년에 100일 이상을 춘계, 추계, 동계 훈련으로 시간을 보냈다.
“재학동안 단 한 번도 대동제를 제대로 경험하지 못했어요. 시간이 부족해서 축제기간에 맞춰 훈련을 나가곤 했거든요”

주말에는 유산소와 심폐지구력 향상을 위해 6~8Km 거리의 남산순환도로를 달리곤 했다. 하지만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지 않았다. 산악인으로서 성장하고 있음을 스스로 느낄 수 있었기 때문이다. 그는 체력 훈련과 별개로 영어, 네팔어 등 외국어 공부와 함께 입산허가서를 작성할 때 필요한 행정업무를 배워 나갔다. “산악부를 통해 산악인이 갖춰야 할 소양을 배웠어요. 무엇보다 인성적으로 배운 점이 더 많죠. 당시 전문 등산 잡지는 비싼데 선배님들이 저희 대신 정기 구독을 해 주시는 모습을 보며 선·후배간의 정을 많이 느꼈어요”

여러 번의 훈련을 거치면서 마침내 1988년, 김 동문은 ‘동국대 알프스 원정대’로서 산악인의 길에 한 발자국 다가섰다. 학교 이름을 걸고 처음으로 가는 해외 등산인 만큼 1년 이상 국내에서 맹훈련을 하는 등 철저하게 준비를 했다. 혹독한 훈련과정은 알프스 아이거북벽 등반 성공을 이루게 했고, 이로 인해 총장공로장학금을 수여했다. 그리고 2012년 김 동문은 안나푸르나에 잠든 박 대장과 대원들을 찾으러 안나푸르나 수색대 대장으로 떠났지만 악천후로 인해 도중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안타까운 마음보단 홀가분한 마음이 더 들어요. 저는 다시 안나푸르나로 향할 것이고 거기서 영석이를 만날 거라 믿으니까요”

겸손의 자세로 세상을 나가야
김 동문은 이번 학기에 박영석 대장의 도전정신을 잇기 위해 개설된 ‘산악인 박영석의 탐험과 도전’ 강좌의 책임교수로 학생들을 만나고 있다. 이번 강좌를 통해 그는 학생들에게 자신이 산을 통해 배운 모든 것들을 학생들에게 주고자 한다.

“저는 산에서 체력적인 부분과 무엇보다중요한 인성을 배웠어요. 산을 통해 학식과 경륜, 즉 인생을 공부한 거죠”
그런 그가 학생들에게 당부하고 싶은 점은 겸손과 도전정신, 자기변화다. 도전을 하는 자만이 성공을 쟁취하고, 자기가 변화해야 세상이 변화할 수 있기 때문이다. 세 가지 당부에서 김 동문은 특별히 겸손을 더욱 강조했다. “겸손은 나 자신을 객관적으로 바로 볼 수 있을 때 생기는 감정이에요. 그만큼 내가 어떤 부분이 부족한 것인지 깨닫고 채워가는 방법을 알 수 있거든요”

병에 물이 가득 차 있으면 새로운 물을 부어도 넘치기만 할 뿐 채우지 못한다. 하지만 물이 필요한 곳에 물을 덜어주고 새로운 물을 담는다면 어떠할까. 이것이 그가 말하고자 하는 진정한 겸손의 모습일 것이다. 현재 김 동문은 재단에서 진행 중인 사회공헌 프로그램을 통해 자신이 가진 산악 등반의 풍부한 경험을 베풀고 있다. 이러한 김 동문이야말로 사회의 메마른 곳에 단비가 되어주는 사람이 아닐까.
 

김진성 동문 프로필

△1964년 출생 △1983년 전자계산학과 입학 △1988년 유럽알프스 아이거북벽 등정 △1990년 구소련 파미르 코뮤니즘봉 등정 △1992년 미국 요세미테 앨캡 등정 △1994년 대통령표창장 수상 △1997년 유럽최고봉 앨부르즈 등정 △2012년 네팔 안나푸르나1봉 수색대장 △(사)한국대학산악연맹 부회장 △(재)박영석탐험문화재단 상임이사
 

전지선 기자  sunn@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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