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면한 과거와 마주할 때 살아있는 오늘

학자나 예술가, 정치인의 공과 과를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지만 우리 삶에서 그것들을 분리할 수 있을까. 위대한 재능과 학식으로 불의의 편을 들었다면 그것은 뱀의 혀에 불과하다. 허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면 당당히 그 허물을 이야기하고 속죄의 언약을 말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배워야할 역사의 판단이다.

 
과거만 남은 사람이 있고, 과거를 잊은 사람이 있다. 과거만 남은 사람에게 현재란 혐오의 대상이며 오직 지난날의 영광이 삶을 지배할 뿐이다. 또는 과거의 상처에 사로잡혀 빈껍질의 오늘을 살아 갈 수도 있다. 과거를 잊은 사람에게 역사는 오직 부질없는 굴레로 치부된다. 정치적 유불리에 따라 누군가는 과거를 왜곡하기도 하고 과거를 들어 현재를 부정하는 경우도 볼 수 있다.

우리 역사엔 특히 잊지 못할 과거의 상흔이 남아있다. 지우지 못할 상처가 있는 한 과거에 대한 논쟁은 그치지 않을 것이다. 침략과 수탈과 부역, 전쟁과 살육과 분단, 독재와 억압과 기만의 흔적은 우리 속에 고스란히 남아 있다. 우리가 대면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현재의 시간이나, 그 현재의 반은 과거이고 나머지 반은 미래이다. 즉 오늘은 과거의 결과이기도 하고 내일의 원인이기도 하다. 오늘의 세대가 겪는 불안과 불공정은 하늘에서 떨어진 것이 아니라 왜곡된 과거의 살아있는 악령이다. 과거를 이야기하지 않으면 미래를 향한 항로는 계속 제자리를 맴돌 수밖에 없을 것이다.

우리가 스스로의 악으로부터 구원받고, 역사적 과실과 화해할 수 있는 유일한 길은 그것에 대해 끊임없이 말하는 것이다. 그 본질이 드러날 때까지 이야기함으로써 과거의 악령은 사라져 가고 진실로 의미 있는 현재를 만날 수 있다. 역사를 기록하는 이유가 바로 그 때문이다.
기록된 역사에 대해 수많은 의심과 냉소의 비판도 있다. 괴테는 파우스트를 통해 “역사란 도망치고 회피하고 싶은 쓰레기통”이란 말로 조롱했다. 혹자는 ‘승자의 기록’으로 냉소하고, 어떤 이는 ‘부질없는 시간의 파편’으로 무시한다. 그럼에도 역사는 기록되고, 기록되어야 한다. 우리가 과거를 알 수 있는 유일한 자취이며 미래의 지도이기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 개인의 처신과 공과를 이야기할 때 떠오르는 두 분의 스승이 있다. 모두 동악에서 만난 분이다. 한 분은 그 학식과 명성이 대단하여 독재자가 세운 대학의 수장을 맡았던 분이다. 수업은 언제나 진지하고 깊이 있으며 학문적 통찰과 자세를 배울 수 있었다. 늘 근엄하며 학생들에게 학문의 엄정함과 권위가 무엇인지를 보여주던 분이다. 단 한 가지 학생들의 질문을 허용하지 않았다. 권위에 대한 도전을 용납치 않은 것이다.

그런 그 분에게는 그늘이 있었다. 자신의 학문으로 유신과 독재 이데올로기에 힘을 보탰다. 대학에 민주화 바람이 불자 당신이 썼던 영광의 자취들은 고스란히 비난과 조롱의 상흔으로 남게 됐다. 대자보에는 전에 썼던 논문들이 치욕으로 나붙고, 독재자의 편에 선 학자의 양심을 저주하고 있었다. 선생께 당시의 정황을 물을 수는 없었다. 워낙 완고한 분이기도 하였지만, 겉으로는 학생들의 비난 따위를 신경 쓰지 않았다. 어떤 면에서 그분의 학문은 지금도 높게 평가된다. 그러나 그 삶을 존경할 수는 없는 일이다. 그 대단한 학문으로 지금은 조롱거리가 된 독재의 궤변에 앞장섰기 때문이다. 그것도 철학과 종교와 이념을 독재의 선동질에 썼다. 그 분을 떠올리면 마음 깊이 안타까움이 솟는다.

또 한 분의 스승은 그와는 좀 다른 분이셨다. 달변도 아니고 현란한 지식의 구사는 없지만 수업은 늘 진지했다. 학생들의 도전적인 질문도 묵살하거나 회피하지 않으셨다. 교실에서 때로는 수업과 무관한 삶의 본질을 묻는 질문을 던지기도 하셨다. 책을 넘어 당신이 삶 속에서 경험 한 것이 전해지기를 바랐다. 교실 밖에서 학생들의 품행을 지적하며 화를 내시기도 하였고, 진달래 붉은 계절 남산길에서 허물없이 막걸리 잔을 건네기도 하셨다.

6월 민주화항쟁으로 대학이 시끄러울 때 학생들은 학과장이던 선생님을 찾아 갔다. 중간고사를 거부하기 위해서였다. 선생님은 학생들의 주장을 다 듣고 나서 되물었다. “시험을 치루지 않으면 무엇을 할 텐가? 학생이 시험 대신 할 만한 행동이 무엇인가?” 시험 기간을 의미있게 보낸다면 시험거부를 인정하겠다고 하셨다. 며칠 후 최루탄이 쏟아지는 명동 입구에서 선생님을 뵈었다. 쫓기는 학생 여럿을 모아 음료수와 아이스크림을 사주시던 모습이었다. 손을 잡으시며 다치지는 말라고 당부하던 모습은 지금도 생생하다.
정년퇴임으로 학교를 떠나신 후에 그 분에 대한 옛이야기들을 들었을 때 마음은 좀 더 숙연해졌다. 80년 서슬 퍼런 침묵이 강요될 때 태극기를 가슴에 안고 팔정도 길을 돌았다는 이야기는 유명했다. 제자의 빚보증으로 집을 날린 일도 마음 아픈 이야기다. 노령에도 불구하고 그 분은 지금도 책을 쓰고 평생 자신의 신념을 실천하고 계시다.

어떤 삶을 살 것인지는 온전히 자신의 선택이다. 그리고 그 자취는 역사의 벽에 흔적을 남긴다. 온전히 짊어져야할 상처이거나 묵묵히 발자취를 남기거나 스스로의 선택을 감당해야한다. 흔히 학자나 예술가, 정치인의 공과 과를 구분해서 보아야 한다지만 우리 삶에서 그것들을 분리할 수 있을까. 위대한 재능과 학식으로 불의의 편을 들었다면 그것은 뱀의 혀에 불과하다. 허물로부터 벗어나고 싶다면 당당히 그 허물을 이야기하고 속죄의 언약을 말해야 한다. 그것이 우리가 배워야할 역사의 판단이다.
돌아보지 않은 어제의 잘못은 고스란히 오늘 속에 살아있고 내일도 반복될 것이다. 한 분의 스승으로부터 그 뒷모습을 보았고, 또 다른 스승으로부터 역사를 대하는 태도를 보았다. 우리는 모두 찰나의 시간을 살아가지만 역사의 저 편에 위대한 씨앗을 심을 수는 있다. 젊은 시절 만났던 한 분의 스승께 다시 한 번 감사의 마음을 바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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