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홍기(정외81졸) 동문
충남 청양의 칠갑산 기슭에 천년고찰 장곡사가 있다. 조계종 제6교구 본사인 공주 마곡사의 말사로 규모는 작지만 대웅전이 2개나 있는 특이한 형태의 국보사찰로 유명하다. 지금은 많은 관광객과 등산객이 찾지만, 나의 대학시절만 해도 도통 인적을 구경하기 힘든 곳이었다. 잘 해야 일주일에 한두명 외지인이 올까 말까하는 정도.

지금은 근처를 지나는 고속도로가 3개나 뚫려 전국 어디서든 접근이 매우 편리하다. 반듯한 포장도로 덕분에 자동차로 바로 문 앞까지 닿을 수 있다. 하지만 옛날에는 첩첩산중인 오지중의 오지였다. 서울서 갈려면 지금은 사라진 용산터미널에서 직행버스로 청양읍까지 내려간 뒤 하루 두 세편 있는 버스로 바꿔 타고 대치면 장곡리로 간다. 그리고 다시 십오리쯤 산길을 걸어 올라가야 했다. 아침 일찍 나서야 해 떨어지기 전 도달할 수 있는 그런 곳이었다.

대학교 3학년 여름 방학때다. 고시 등에 뜻을 품은 사람들이 번잡한 세상에서 떨어진 산속 절간 등으로 찾아들던 시절이다. 도시의 고시촌 등으로 모여드는 요즘 풍경과는 다르다. 동기생이 하나둘 군대로 빠져나가면서 캠퍼스는 쓸쓸해지고, 입대를 할 것인지, 학업을 계속할 것인지를 놓고 고민하던 때다. 그러던 차에 뭔가 해봐야겠다는 마음을 먹고 책과 간단한 짐을 꾸려 무턱대고 장곡사로 찾아들었다. 다행히 요사체의 방 하나가 비어 주지스님으로부터 승낙을 받아낼 수 있었다. 비구니로 어머니처럼 자상하게 보살펴 준 주지스님과 공양주 보살님, 그리고 나보다 서너살 많은 다른 기숙생 2명을 포함해 모두 다섯 식구의 가족처럼 오붓하면서도 단란한 산사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한 여름 산중의 적막을 깨고 원없이 울어대는 매미소리, 밤에는 이름모를 풀벌레 소리를 벗삼아 두달 정도 보냈다. 물론 찾아오는 사람이 없으니 외지인을 의식할 일이 없었다. 한낮의 무더위를 참을 수 없을 때면 방문도 앞뒤로 열어 놓는다. 들여다 볼 사람이 없다. 길잃은 매미와 여치, 귀뚜라미 등이 가끔씩 방으로 들어와 무료를 달랠 뿐이다.
작심은 하고 갔지만 공부에만 매달렸던 것은 아니었다. 세속과 단절된 곳이라 딱히 공부말고는 할 것이 없는데다, 주지스님 등 다른 식구들의 시선이 신경쓰여 방안에 갇혀 있는 시간이 많았지만 산사의 고즈넉한 분위기에 동화된 탓인지 좀처럼 독한 마음이 생기지 않았다. 근처의 개울을 막아 간이 목욕탕을 만들어 놓고 차가운 계곡물로 더위를 식히기도 했고, 칠갑산 정상에 오르기도 했다. 한번은 기숙 동료들과 꽤 물이 깊은 지천으로 물놀이를 갔던 일도 있다. 개구리 헤엄을 치며 놀다가 인근 농가에 부탁해 잡은 토종닭으로 간만에 단백질을 보충하며 흐뭇해 하던 기억이 생생하다. 산사생활하는 동안 한번도 저녁 예불을 거르지 않았다. 그러나 새벽 예불은 아침잠이 많아 몇 번밖에 참석하지 못했다. 이를 통해 사찰의 예법도 자연스럽게 터득했고 반야심경 등도 암송할 수 있게 됐다. 제법 신심이 있는 불자 행세를 하는 것도 다 그때 덕분이다.

요즘도 마음이 심난할 때면 장곡사 생활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스리곤 한다. 애초의 목표는 이루지 못했지만, 졸업 후 군복무를 무사히 마치고 ‘운칠기삼’이라는 언론사 수습기자 시험을 통과해 사회생활을 하게 된 것도 장곡사 부처님의 가피 덕분으로 믿고 있다. 요즘은 옛날과는 여건이 변했겠지만 재학시절 산사에서의 체험을 권하고 싶다. 며칠간의 템플스테이만이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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