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은 과정이기에 우리는 묻는다 “나는 누구인가?”

자신을 표면적으로 보여주는 대답을 위한 질문의 가치는 그리 중요치 않다. 스스로의 존재 가치를 성찰하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그런 진실한 노력만이 진리가 있는 곳으로 향하는 관문이 된다.

“당신은 누구인가?” 이 평범한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우리는 끊임없이 노력한다. 이름을 갖고 전공을 선택하고 자기소개서를 쓰고 직업을 얻으며 하염없이 무엇인가를 이루어 간다. 어떤 때는 현실적이고 언젠가는 철학적으로 다가오는 이 질문은 쉽지 않다. 그리고 이보다 더 진지한 질문이 있다.

“나는 누구인가?” 젊음의 고뇌 속에 한번은 떠올렸을 이 물음은 불쑥 우리에게 다가와 속삭이지만 그 답을 알기 어렵다. 참으로 그 해답을 얻었다면 그는 무지하거나 신성한 자 둘 중 하나일 것이다. 그리고 한 번도 묻지 않았다면 분명 불행한 사람이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해답을 얻기보다 자신에게 던져야할 숙명의 과제이다. 어느 날 그 질문을 덮고 하나의 해답에 스스로를 규정한 사람이라면, 그의 인생에서 신비는 사라져 버린다. 그는 구두쟁이거나 재벌이거나 권력자거나 방랑자이거나 스스로 규정한 굴레를 안고 살아야만 한다. 우리는 자신이 누구인지 알기 위해 평생의 시간을 소모해 가고 있다. 삶은 어떤 경지나 단계가 아니라 끊임없는 과정이므로 우리가 그 질문의 답을 구한다는 것이 불가능할 지도 모를 일이다.

특정한 지위나 신분에 있는 이는 자신보다 타인에 의해 그가 누구인지 규정되는 경우가 있다. 티베트의 정신적 스승 달라이 라마 같은 이가 그런 경우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그를 지켜보며 이해할 수 있는 수준에 따라 규정한다. 어떤 이에게는 정신의 스승, 누군가에게는 민족의 지도자, 어떤 세력에게는 타파의 대상인 봉건지도자이며 국가분열의 우두머리, 믿음을 가진 이에게는 살아있는 보살의 화현(化現)으로 꼽힌다. 과연 그는 누구일까? 아마 그 모두이기도 하고 그 어떤 것에도 속해있지 않을 것이다.

 
언젠가 솔직한 대답을 들을 기회가 있었는데 달라이 라마가 말하는 달라이 라마는 이렇다. “나는 관세음보살의 화신도, 살아있는 부처도 아니다. 사람들이 그렇게 믿을 수는 있겠지만, 그것이 옳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렇게 믿는 것은 그들의 몫이고, 나의 삶을 살아가는 것은 나의 몫이다. 지금 이 시간 속의 나는 우리 마음 중 깨달음을 향해가는 특별한 마음(菩提心)을 닦는데 평생토록 노력하는 한 사람의 불교수행자이다.”

그가 자신에 대해 분명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마도 스스로에 대해 질문을 그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 분명한 성찰이 있으므로 달라이 라마와 그의 민족 앞에 놓인 고난에도 불구하고 절망에 사로잡히지 않았다.
우리 삶은 한가지로 묶을 수 없는 다양한 측면을 갖고 있다. 누군가의 자식으로, 누군가의 어버이로, 가정에서 사회에서 수많은 역할을 통해 자신을 만들어 간다. 타인이 부과한 의무와 스스로 세운 목표 사이에서 좌절하고 갈망하며 노력해 간다.

얼마 전 세상을 뜬 한국출신의 세계적 종교지도자는 달라이 라마보다 훨씬 더 극단적인 평가를 받았다. 세계적인 영향력에도 불구하고 특히 모국인 우리나라에서 숭배자보다 비난하고 공격하는 이들이 더 많았다.
그는 스스로를 누구라고 생각했을까? 어떤 이는 구세주라고 믿고 누군가는 사악하다고 주장했다. 세상에 널린 잡다한 이야기들은 그가 어떤 존재인지, 스스로를 어떻게 생각했는지 혼란스럽게 만든다. 그는 몇 해 전 서른을 갓 넘긴 막내아들에게 교회전체를 이끌도록 물려주었다. 당시 이제 막 교회를 물려받은 젊은 지도자에게 질문을 던졌다. 당신과 당신의 아버지는 누구인가? “분명한 것은 아버지는 한 사람의 목사이고, 나 또한 그렇다. 내게 교회를 이끌라고 하셨을 때 나는 걱정에 잠을 이루지 못했다. 깊은 밤까지 그러자 아버지는 나를 불러 이렇게 말하셨다. 걱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으니, 다만 매사에 정성을 많이 들이라고 했다.”

세상에 알려진 것과는 좀 다른 이야기이다. 전해들은 것은 보통 부자지간에 있을 법한 평범한 대화와 종교적 입장이었다. 그 어떤 판단에 앞서 아들의 앞일을 걱정하는 한 사람의 아버지가 있었다. 극단적인 평가를 뒤로 하고 그는 세월의 장막 속으로 사라져갔으니, 그들의 앞날 또한 시간의 저울 위에 서있을 것이다. 스스로의 입장에 따라 누군가를 판단할 수 있으나, 그 모두가 진실은 아니다.

현대 인도의 위대한 스승 중 한 분인 라마나 마하리쉬(1879 ~ 1950)는 진리를 찾는 이들에겐 단 한가지의 질문만 있으면 된다고 가르쳤다. 그 질문은 바로 “나는 누구인가?”이다. 어떤 이들은 형식에 의지하고, 무엇인가 다른 것에 마음을 쏟지만 진리와는 거리가 있다고 했다. 자신이 마주선 대상을 탐구하고 살피는 이들은 그보다는 가까우나 역시 먼 길을 걷고 있다고 하였다. 정말 진리에 가까운 이들은 자신이 누구인지를 묻는다는 것이다.

질문은 성찰을 향해 나아가는 관문이다. 배우는 일이란 수많은 질문과 마주하는 것이다. 그리고 어떤 질문은 얻을 수 있는 해답과 무관하게 질문만으로도 값지다. 자신의 존재를 향해 끝 없는 질문을 던질 때, 우리는 길을 잃지 않을 수 있다. 지금 이 순간 내가 누구인지, 어디에 서 있는지를 진지하게 물었으면 좋겠다. 그로부터 공허한 시간 속에 인생을 허비하지 않을 진실한 노력이 시작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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