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현(국어국문학과)교수
텔레비전에서 누구나 한 번쯤 봤을 공익광고로부터 이야기를 시작하자. 이 공익광고에는 베트남 엄마를 둔 아이가 등장한다. 김치 없이 밥을 못 먹고, 세종대왕을 존경하며, 독도를 우리 땅이라 생각하고, 축구를 보며 대한민국을 외치고, 군대 가고 세금내고 투표할 것이라는 멘트와 함께, 화면에는 그의 해맑게 웃는 모습을 담은 컷들이 팝송 ‘The Rose’와 함께 잔잔히 흐른다. 그리고 ‘당신처럼’이라는 멘트로 마무리한다.

우리 사회의 이주자들을 차별하지 말자는 분명 착한 의도를 담고 있는 공익광고다. 하지만 이런 선의에도 불구하고 광고는 적어도 두 가지 점에서 폭력을 내재하고 있다. 하나는 피부색이 다른 소년으로 표상되는 우리 사회의 이주자들은 그 멘트대로 사고하고 생활해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배제하겠다는 폭력이다. 또 다른 하나는 ‘당신처럼’이라는 멘트처럼 ‘당신’이라는 말로 시청자들에게 국민적 동일성(national identity)을 자연스러운 것처럼 강요하는 폭력이다. 이 광고는 ‘국민’이라는 현대의 신화(Mythologies)가 작동하는 장인 것이다. 롤랑 바르트의 말에 따르면, 이러한 신화는 그 사회 지배계급의 가치와 이득을 유지시키며 강화하려는 사상과 실천체계로서 일종의 이데올로기이다.

프랑스의 비평가 에르네스트 르낭은 ‘국민’을 이렇게 정의했다. ‘날마다의 인민투표’라고. 올 연말에는 대통령 선거가 있다. 선거라는 장은 최고의 정치 교육의 장인 동시에 ‘국민’ 교육의 장이다. 이번 선거에서도 ‘국민’이라는 말이 난무하는 가운데 투표권을 가진 사람들은 자신의 의지와 무관하게 국민임을 자극받게 될 것이다. 하지만 ‘국민’이라는 신화는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동일성을 강요하는 동시에 우리 사회에 어디엔가 존재하는 비(非)국민에게 배제의 공포를 제공하기도 한다.

작년 3월 동일본대지진 때 각종 미디어는 무서울 정도로 절제된 일본 시민들의 행동이나 미담 사례들을 보여주었다. 그때 ‘일본 국민’이라는 언어는 주어이자 목적어인 전부였다. 하지만 그것은 1923년 ‘관동대지진과 조선인학살’이라는 잔혹한 기억을 안고 살아가는 일본 내 재일한국인-조선인들에게는 배제의 공포로 내모는 상처의 언어가 되기도 했다.

사실 선거란 계급, 젠더, 인종, 지역의 차이에 근거한 사회 제(諸)집단이 벌이는 욕망 투쟁의 장이어야 한다. 하지만 ‘우리 국민의 행복’ 운운하는 어느 정치인의 정치 수사처럼 국민적 동일성을 강조하는 언어는 흔히 그 다양한 차이에서 비롯된 욕망들을 희석시킨다.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이명박 후보가 내세운 ‘국민성공시대’라는 구호처럼 말이다.

이 정권의 5년 동안 성공한 ‘국민’은 과연 누구였을까. ‘국민’은 마치 고체처럼 단일한 것이라 말하지만 그럴 수 없다. 그 안에는 계급, 젠더, 인종, 지역의 차이를 근거로 한 집단-개인들이 존재한다. 따라서 누가-어떤 상황에서 그 말을 발화하느냐에 따라 그것은 다른 결을 지닐 수밖에 없다. 이번 선거 과정에서 ‘국민’이라는 말은 과연 어떤 식으로 계급, 성, 인종, 지역의 차이를 무화시킬 이데올로기로 작동할까.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