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이범선 교수와 함께

문학은 자기생활 기록하는 예술
섬 생활의 무료 달래기 위해 쓴 것이 소설
‘목화가 피는 장미’ 같은 작품 쓰고파

  “文學(문학)은 言語(언어)의 藝術(예술)이다”라는 말은 어쩌면 진부한 얘기로 들릴진 모르나 아직 불변의 定義(정의)임은 분명할 것이다. 人間(인간)은 言語(언어)로 자신을 표현하고 萬物(만물)의 뜻을 감지할 수도 있을 것이다. 文學(문학)이란 藝術(예술)은 이와 같은 言語(언어)를 매체로 아름답고 높고 넓은 세상의 모든 것에 대한 갈망과 思慕(사모)의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게 된다.

  “섬 생활의 무료를 달랜다고 썼던 것이 小說(소설)이었으며 作家(작가)가 돼버렸다”는 李範宣(이범선)교수(東大(동대)ㆍ國文科卒(국문과졸)ㆍ現(현) 外大(외대)교수).
  착 가라 앉은 조심스런 말씨와 간간히 떠오르는 미소. “폭탄이 떨어져도 눈 한번 거들떠보지 않을 정도로 냉철한 사람”이라고 그를 가리켜 말했듯 전혀 흔들릴 것 같지 않아 오히려 위압적이다.
  그러나 그의 藝術(예술)은 전쟁의 포화와 극한에서 출발해야만 했다. 46년에 월남해서 죽을 고비와 극심한 고생을 겪으면서 <갈매기>의 고향 거제도에서 그의 藝術世界(예술세계)는 小說(소설)로 서서히 開眼(개안)했다.
  그곳에서 교사로 있으면서 전쟁의 체험은 한결 승화되어 혼란과 극한 상황에서 인간이 어떻게 변할 수 있는가를 발견할 수 있었다. 후일 <誤發彈(오발탄)>에서 그것은 結晶(결정)을 보았으며 데뷔작 <暗票(암표)>와 <日曜日(일요일)>에서도 그것은 번득이며 빛을 발했다. 1955년 이 두 편의 단편으로 꽤 느지막이 신호를 올린 그의 作家(작가)선언.
  한 폭의 수채화처럼 소박한 서정이 깔린 <갈매기> <愁心歌(수심가)> 등을 쓰면서 또 예리하게 부조리한 세태를 고발한 <被害者(피해자)> <誤發彈(오발탄)> 등을 발표, 한마디로 다양한 작가라 불리고 있다. 더 구체적으로 말하자면 <갈매기> <愁心歌(수심가)> <鶴(학)마을 사람들>은 마치 예쁜 깃털을, 가늘고 긴 목을 자랑하는 새들 같은 청아하고 담담한 ‘리지시즘’의 작품이다. <몸 전체로> <死亡保留(사망보류)> <誤發彈(오발탄)> <被害者(피해자)>에서는 맹수의 발톱을, 그 밑에서 소멸되어가는 생명에 다시 한 번 몸부림쳐보는 제물들에 날카로운 비판과 신경질까지 보이는 고발문학이었다.

  그의 作品(작품)의 특성을 서민文學(문학)이라고 지적한 평론가도 있다. 작품에 選民(선민)의식이나 귀족취미 컴플렉스 같은 것이 없다는 것이다. “구태여 내 창작 작업을 설명한다면 매일아침 안경알의 먼지를 닦는 것하고 비교할까”고 그는 말한다. 보고 듣고 체험한 것들이 작품의 소재라고. 그래서 생활의 흔적을 정리하여 쓰다보면 작품이 된다고 한다. 하루일과에 쌓인 가슴에 와 부딪쳐 남은 것들을 하나하나 헤쳐 보는 작업인 것 같다.
  문학이란 자기생활의 기록이며 자기인생의 감동적인 단면을 감당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앞으로도 역시 생활과 밀착된 것을 많이 쓰겠다면서 “목화가 피는 장미꽃 같은 작품을 쓰고 싶다.”고.
  작품을 쓰는 작업을 항상 출발점으로 와서 시작하는 높이뛰기나 넓이 뛰기에 비유하면서 생존한 작가의 대표작을 정하는 것은 그리 현명하지 못한 처사며 작가 사후에나 말할 수 있는 것이란다.
  흔히 그의 대표작으로 말하는 ‘오발탄’에 대한 작가자신의 생각은 해가 거듭할수록 달라진다고.
  그것은 인생의 목표를 찾지 못해 방황하던 시절의 思考(사고)의 한계점이었단다. ‘들무늬’에서처럼 人生(인생)은 어디로 가는지 알 수 없는 것이며 대리석의 무늬처럼 까닭은 있는 것이지만 의미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문학을 하는 자세는 항상 진실 속에 자기발견을 위한 작업이어야 할 것 같다고 한다.

  <文學(문학)은 社會(사회)의 표현이다>라는 스탈夫人(부인)의 말은 어느 면으로는 틀림없는 말이다. 그러나 반대로 사회자체가 문학을 힘입어 스스로 개조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作家(작가)의 정신을 결정하는 것은 사회의 분위기와 환경의 限界線(한계선)인지도 모른다. 문학에 있어서의 사회참여에 대하여 자기생활의 성실성은 곧 정의감이며 그런 생활을 진실하게 作品化(작품화)했을 때 그 사회가 바른 사회라면 일치할 것이며 부패한 사회라면 그것이 하나의 고발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즉 투철하게 자기생활을 한다면 그것이 참여문학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산삼이 산에서 자랄 때는 다만 한 뿌리의 산삼 그 본능대로 뿌리를 키운다. 그러나 후에 사람들이 그것을 캐어 여러 가지 藥材(약재)로 쓴다. 그렇다고 산삼은 결코 藥材(약재)로 쓰여지겠다는 목적에서 자란 것은 아니다. 그와 같이 “문학 역시 어떤 목적이 될 수 없다.”고 재미있는 비유로 말한다.
  작품을 쓰는 것은 자전거타기와 같다. 자전거를 탄 사람은 무게의 중력을 생각 안 해도 안 넘어가고 앞으로 달린다. 어렸을 적 장기 쪽으로 탑을 쌓던 것처럼 무게의 중심을 알지 못해도 무너지지 않게 기웃기웃 잘 쌓는다.
  6ㆍ25라는 혼란기가 없었다면 문학을 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는 그는 인생을 자기 뜻대로 움직이다 죽으면 행복한 사람이라고, 여행도 좋아하지만 시간과 경제와 건강문제로 자주 다니지 못한다며 좁은 쓸쓸한 표정을 웃음 한다.
  “사망보류” “오발탄” 등은 英語(영어)ㆍ獨語(독어)ㆍ中國語(중국어)로 번역되었으나 더러 反譯(반역)된 것도 있더라고. 몇 편의 작품이 영화화 되었으며 그 중 ‘오발탄’은 원작에 비교적 충실했기에 기억에 남는단다. 취미로 파스텔 그림도 그리며 長女(장녀)도 69년에 東大(동대) 국문과를 나와 동화를 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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