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꼭 할아버지를 만나 뵈어야 한다는 하나의 의무감 같은 걸 가지고 있었다. 그리고는 더 생각할 시간적 여유를 기대하지도 않은 채 대합실로 가는 길을 걷고 있었다. 나는 사실 내가 왜 할아버지를 만나 봬야한다고 생각하는지 모르고 있었다. 조금은 어처구니없다고 느껴지기도 했지만, 나는 그저 내 발에 몸 전체를 의탁하기만 하면 되는 거라고 생각했다.
  꽃집에 들어섰다. 빛깔이 너무너무 화려해 있는 꽃 한 송이를 집어 들었다. 그리고 쉴 새 없이 향기를 맡았다.
  꽃집을 나왔을 때, 난 우연히도 할아버지를 만나 버렸다. 결코 이런 곳에선 만나고프지 않았는데도 난 웃었다.
  “꽃………”
  내가 생각하기에도 어처구니없게 빨리 할아버지의 손에 꽃을 쥐어 드렸다. 할아버지도 웃어 보였다. 예의 그 서민적인 웃음.
  “어디 가는 길? 우리 애기”
  “할아버질 만나려…”
  그냥 말끝을 흐렸다. 할아버지의 눈가에 진 가는 주름이 할아버지를 더 늙게 해버렸다.
  “할아버지는?”
  “나두”
  나는 또 한 번 웃었다. 아주 작은 웃음이었다.
  우린 어깨를 나란히 하고 걸었다. 물론 내 어깨래야 할아버지의 허리께 밖에 닿지 않았다. 나는 문득 내가 할아버지의 친손녀였더라도 할아버지를 좋아할 수 있을까 하고 생각했다. 그러나 그런 것들을 생각해봐야 별 결론은 못 얻을 거라고 금세 생각을 고쳤다.
  삼등 대합실에 가는 것 그것은 친구를 배웅키 위해 나왔다가 생긴 하나의 습관이었다.
  꼭 무엇인가를 캐낼 수 있을 것 같던 대합실의 풍경. 내 무딘 펜으로 대합실의 풍경을 옮기고파서 퍽이나 애썼던, 그리곤 미완성인 채로 있는 글이 있을 정도로 나의 대합실에 대한 집착은 굉장했다.
  우연히도 같은 습관을 가진 노인, 이젠 누구보다도 가까운 분인 할아버지를 알게 됐을 때 우선 나는, 그의 풍부한 이야기 꺼리에 놀라 있었다.
  왜 대합실에 오시냐는 질문에 가난한 내 이웃을 보고 도울 의무가 우리에겐 있는 거라고, 저녁의 대합실엔 잘 곳 없는 사람들이 모여든다고 그러니깐 우린 같은 민족으로써 마땅히 또울 의무가 있지 않느냐고 얼굴이 벌겋도록 열변을 토하시던 할아버지. 난 그런 할아버지에게 어쩜 흠뻑 도취되어 있었나 모르겠다.
  사실 할아버지는 옛날에 머슴을 사셨고, 그러느라고 주인집 아들이 천자책을 배울 때에야 처음 글자라는 것을 보았고 눈에 익히게 되었다고 하셨다. 그러나 그것을 굉장한 경험으로 생각한다는 할아버지는 건강하다는 하나의 사실만으로도 만족해야 한다고도 말씀하셨다. 그리곤 정말 건강하다는 것에 만족하고 계신 것처럼 보였다.
  나는 때때로 할아버지의 웃음을 뺏고 싶은 충동을 느낀다. 뺏기지 않겠다고 할아버지가 말씀하신다면 몰래 훔쳐서라도 갖고 싶을 정도로 나는 할아버지의 웃음을 사랑하는 거다. 나는 오래 할아버지를 생각하느라고 잊고 있었던 내 언어를 생각했다. 그리곤 가장 빠른 속도로 할아버지라는 낱말을 발음했다. 할아버지는 눈을 크게 뜨시고 나를 바라보았다. 역시 다음엔 그 서민적인 웃음이 있었다. 나는 정말 웃음을, 할아버지의 그 소박한 웃음을 훔치고 싶다는 강한 충동이 꿈틀거림을 감각했다.
  “내게 할아버지의 그 웃음을 준다고 약속해줘요” 할아버지는 웃고 있었다. 이번엔 아주 커다란 소리로 웃고 있었다. 나의 머리는 할아버지의 웃음을 가지고 싶다는 일념으로 꽉 차있었다. 나는 할아버지의 손을 잡고 있었고, 한참 후에야 할아버지는 웃음을 멈추셨다.
  “정말 가지고 싶니?”
  할아버지의 눈을 바라보면서 나는 서슴지 않고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엔 아주 엄숙한 표정을 취하시고는 할아버지는 말씀하셨다.
  “정말?”
  “네.”
  나도 엄숙하게 선언했다.
  “영리하니까 우리 애기는 가질 수 있다. 그리고 나도 마음 놓고 줄 수 있고 할아버지랑 약속하자. 내 웃음을 받을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구. 그럼 꼭 네게 내 웃음을 주마 응?”
  나는 꼼짝할 수조차 없을 정도의 커다란 압력을 느꼈다. 그러면서도 난 행복하게 웃을 수 있었다.
  내게 할아버지의 웃음을 받을 수 있는 능력이 있다는 것은 무엇보다도 기쁜 일이었으니깐, 그리고 할아버지와 그런 약속을 할 수 있었다는 것도 퍽이나 기쁜 일이 될 수 있으니까. 얼굴을 번쩍 쳐들어서 하늘을 보았을 때, 나는 조그만 비명을 질렀다. 하늘빛은 내가 산 꽃빛을 잔뜩 닮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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