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천, 화합의 길 새롭게 ‘영원한 진리’ 명심하는 계기로

  親愛(친애)하는 敎授(교수), 職員(직원) 그리고 學生(학생)여러분!
  오늘 우리는 다시 한 번 부처님 오신 거룩하고 뜻 깊은 날을 맞이하였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났기 때문에 반드시 죽어야 한다는 무거운 苦痛(고통)을 짊어지고 살아가는 衆生(중생)에게 그 苦痛(고통)에서 解脫(해탈)하는 涅槃(열반)의 길을 보여준 導師(도사)가 바로 부처님이십니다. 부처님은, 涅槃(열반)이 있고 또 그 涅槃(열반)에 이르는 길도 있고 또 그 涅槃(열반)의 길을 그는 分明(분명)히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러나 自己中心的(자기중심적) 탐욕에 눈이 멀어버린 우리 衆生(중생)은 부처님의 길을 잃고 오늘까지 어두운 迷路(미로)에서 彷徨(방황)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한 자리에 모여 부처님 오신 날을 記念(기념)하는 것은 이날을 계기로 어두운 迷路(미로)에서 벗어나 부처님의 길을 다시 찾고 배울 決心(결심)과 覺悟(각오)를 새롭게 다짐하려는데 그 意義(의의)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흔히 있는 名節(명절) 때처럼 祝祭(축제) 기분에 들떠 遊興(유흥)으로 하루를 보내는 일은 삼가야 한다고 봅니다. 축제나 유흥의 기분은 하루가 끝나면 물거품 같이 사라지며 오히려 더 심한 허무만을 안겨다 준다고 부처님은 말씀한 적이 있습니다.
  이제 본인은 여러분과 함께 부처님이 우리에게 남긴 위대한 知慧(지혜)와 뜨거운 慈悲(자비)의 말씀을 되새기며 오늘의 意義(의의)를 다시 찾아보고자 합니다.

  첫째 부처님은 열반에 이르는 길은 知慧(지혜)의 길임을 우리에게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나 이 知慧(지혜)는 主管(주관)과 客官(객관), 나와 너, 男性(남성)과 女性(여성) 등 分別(분별)하는 知識(지식), 즉 分別知(분별지)와는 判然(판연)히 다름을 알아야 합니다. 이 같은 分別(분별)이 초래하는 분여로가 대립을 止揚(지양)하는 高次元(고차원)의 지혜입니다. 밤과 낮의 분별이 있는 地球(지구)를 分別知(분별지)에 비유한다면 부처님의 가르친 지혜는 밤도 낮도 없는 太陽(태양)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사실 이 지혜는 太陽(태양)같이 밝고 맑으며 뜨겁기도 합니다.
  태양같이 뜨거운 지혜이므로 한량없이 뜨거운 慈悲(자비)도 솟아나오는 것입니다. 또 모든 분열과 대립을 止揚(지양)한 次元(차원)에 있기 때문에 부처님의 지혜는 平和(평화)에 이르는 眞正(진정)한 길을 人類(인류)에게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둘째 부처님은 열반의 길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었을 뿐만 아니라 자신도 스스로 그 길을 걸어 간 宗敎人(종교인)이었습니다.
  머리로 생각만하고 입으로 말만하며 가만히 앉아있는 창백한 知識人(지식인)을 부처님은 날카롭게 비판하셨습니다. 머리와 입만 이고 손과 발은 去勢(거세)된 기형인간은 열매를 맺지 못하는 아름다운 꽃처럼 아무 쓸모도 없다는 것입니다. 무엇을 깨닫고 알았으면 그대로 곧 실행에 옮기라는 것이 부처님의 교훈입니다. 우리가 흔히 쓰고 있는 覺悟(각오)라는 漢字(한자)가 이 부처님의 뜻을 잘 설명하여 주고 있습니다.
  覺(각)이란 字(자)와 悟(오)란 字(자)는 ‘깨닫다’ 또는 ‘깨친다’는 뜻을 가진 漢字(한자)들입니다. 그런데 이 두 漢字(한자)가 合成(합성)되어 ‘覺悟(각오)’란 낱말이 되면 悲壯(비장)한 論理的(논리적) 決斷(결단)을 종용하는 뜻으로 돌변합니다. 覺悟(각오)는 되었는가 또는 覺悟(각오)는 되었다고 할 때 이것은 목숨을 걸고 不退轉(불퇴전)의 意志(의지)를 表現(표현)하는 서슬이 퍼런 엄숙한 자세를 말합니다.

  셋째, 부처님은 무엇보다도 和合(화합)을 강조하셨습니다. 그래서 부처님의 뜻을 계승한 初期僧團(초기승단)에서는 和合(화합)을 깨뜨리는 罪(죄)를 가장 엄하게 다스렸습니다. 분열과 대립을 止揚(지양)한 부처님의 지혜가 和合(화합)을 강조함은 너무나 당연한 理致(이치)입니다. 三寶(삼보)의 하나인 僧伽(승가)의 본뜻은 원래 여러 大衆(대중)이 한데 모여 和合(화합)을 이루고 있는 단체를 가리키고 있었습니다. 그렇다고 和合(화합)을 위하여 자기주장과 장점을 아주 굽히라는 강제는 불교가 가장 싫어하는 태도입니다. 각자가 자기의 주장과 개성적 長技(장기)를 훌륭히 살리면서 마치 여러 악기의 연주가 하나의 和音(화음)을 이루는 교향악의 연주처럼 和合(화합)하라는 것입니다.
  이상 세 가지의 부처님 敎訓(교훈)을 다시 한 번 여러분과 함께 명심하여 오늘의 紀念辭(기념사)를 맺으려고 합니다.
  여러분에게 항상 부처님의 가호가 있기를 기원합니다. 감사합니다.
  <金仁鴻敎務處長代讀(김인홍교무처장대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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