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대학의 새로운 예술무대

연극분야 특히 다양
후원단체 보조로 활기

  대학은 이제 단순히 학생들에게 예술에 대한 鑑識力(감식력)을 심어주는 곳이 아니며 대학의 예술행사를 통해 그 지역사회를 위한 文化(문화)센터 구실정도로 만족하지는 않는다.
  오늘날 미국의 대학은 또한 창조적인 인물들이 -전문가이건 학생이건 간에- 그들의 새로운 작품을 적절한 분위기 속에서 보여주거나 들려주는 기회를 제공해주고 있다. 대부분의 이러한 행사는 예술의 발전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는 몇몇 큰 재단에 의해서 가능해지는 것이며 또 연방정부는 ‘예술을 위한 국가보조금’을 통해 보다 많은 원조를 제공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연방정부의 보조는 뉴욕대학교에서 초연된 半(반)추상작품인 按舞家(안무가) ‘루카스 호빙’의 ‘群舞(군무)69년’으로부터 미국 동남부에 사는 작곡가들에 의한 새로운 음악의 讀譜(독보)와 공연에 전적으로 마음을 쏟는 알라바마대학교에 있어서의 지역 작곡가 연구회에 이르기까지 광범위한 분야의 새로운 기획을 가능하게 해주었다.
  대학의 예술에 대한 참여의 다양성은 연극분야에서 특히 두드러지게 나타난다. 기성작가의 새로운 희곡이 대학, 지역사회 및 非營利(비영리)극장에서 상연할 수 있게 되는 ‘미국 극작가 극장’ 계획에 참여하는 외에도 많은 대학들은 전통적인 학생들의 브로드웨이 성공작의 공연을 넘어서서 그들의 연극의 영역을 확장시켜 왔다.

  스탠포드대학교의 ‘PerSe’誌(지)의 전국적인 현상응모당선작인 두 편의 짤막한 희곡이 센트럴 미주리州立(주립)대학의 학생들에 의해서 공연되었을 때, 흥미 있는 공동 작업이 이루어졌다. 이 중의 한 작품은 특히 관심을 끌었다. 족 버밍햄 사우던대학 연주과장 ‘아놀드 포월’의 ‘세상 어머니의 죽음’이 그것인데 이 작품은 세상 모든 어머니들의 꿈과 失意(실의)를 그린 비극적이고도 희극적인 이야기다.
  이 작품의 공연은 오늘날의 학생 연극감독들의 풍부한 상상력뿐만 아니라 아직 발굴되지 않은 극작가들의 존재를 증명해주는 것이었다.
  위스턴신州(주) 메노모니에 있는 스타우트 주립대학교는 비록 무대예술이 이 학교의 교과과정에 포함되어 있지는 않지만 그 실험적인 쿼터 스퀘어극장으로 주목을 끌기 시작했다. 3년 전 카린 팔코프스크夫人(부인)에 의해서 설립된 이 극장은 관심 있는 학생들에게 연기, 감독, 무대장치의 기회를 제공하고 있으며 또한 보다 특기할 만한 사실로는 無名(무명)의 극작가들의 새로운 희곡을 찾아내어 공연하고 있다. 비록 미국의 대학이 모든 예술을 육성하고 있기는 하지만 대학의 문화 활동을 지배하는 것이 음악이라는 것은 의심할 나위 없다.

  그렇다고 해서 반드시 ‘(Rock)콘서트’의 형태를 취하는 것도 아니다. 현대 작곡가들은 음악적 실험을 위한 둘도 없는 ‘연구실’과 그들의 새로운 작품을 위한 전시대를 미국의 대학에서 찾아내게 되었다. ‘미국대학작곡가會(회)’의 2백여 회원들은 그들 同好人(동호인)들이 창조적 문제의 해결을 지향하여 말할 수 없이 귀중한 자극을 제공할 수 있음을 인식하게 되었다.
  작곡가들의 활약은 결과적으로 전국각지의 대학 음악과에 주로 현대적 작품의 연주를 목적으로 하는 실내악단의 형성을 촉진시켜 놓았다. 이들 중에서 제일 먼저 생겨난 것이 콜롬비아대학교의 현대음악 연주단이었다.
  그 밖에도 많은 類型(유형)의 음악행사가 미국의 대학에서 성황을 이루고 있다. 그것이 페어몬트 주립대학(웨스트 버지니아)에 있어서의 아메리칸 윈드 심포니를 위한 호세세레브리에(Jose Serebvier)의 新作(신작) ‘12곱하기 12’의 시험이든 로체스터대학교(뉴욕) 후원의 연례적인 현대음악의 제전이든 또는 작곡가인 존케이지와 레자렌 힐러에 의해서 ‘HPSCHD’(하프로시코드라는 뜻)라고 불린 일리노이대학에 있어서의 널리 알려진 ‘예술적인 분위기’이든 간에 이것은 새로운 창조적 작품을 고취함에 있어서 미국의 대학들이 떠맡고 있는 중요한 역할을 증명하는 것이다.
  ◇사진=‘사우드 플로리다’大學(대학)에서 1968년 6월에 공연한 무용극 ‘天幕(천막)’의 한 장면 <近着(근착) Horizons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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