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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8 18: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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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문탐방] 홍숙자 동문 <전 뉴욕총영사관 부영사>한국 최초의 여류외교관 뛰어난 능력-여왕대접 받고

  ○…<女子(여자)가 뭘>하는 식의 생각은 아직도 우리 사회의 각 계층에 뿌리 깊다. 男性獨占(남성독점)사회의 이른바 남존여비사상의 殘影(잔영)때문인지도 모른다. 한국 최초의 여류 外交官(외교관)으로 활약해 온 洪淑子(홍숙자)(37세) 동문이 가장 불쾌하게 생각했던 것도 바로 <女子(여자)가 무얼?>하는 식의 관념(?)이었다. 그의 외교관생활 10년은 이러한 관념을 실력으로 극복하고 女流外交官(여류외교관)의 활로를 개척하는 데 바쳐졌다.

  ○…55년 본교 政治科(정치과)를 졸업한 洪淑子(홍숙자)여사- 그는 경기女高(여고) 시절부터 지녔던 외교관으로의 꿈을 본교에서 키웠고 그 후 이대 大學院(대학원)을 거쳐 보스톤대학 대학원 등에서 碩士(석사)학위를 받았다. 그가 외교계에 첫 발을 딛기는 58년 12월, 외무부 의전관이었다. 여존남비(?) 사상까지 싣고 온 洋風(양풍)이 설치는 세상이었지만, “여자가 설 자리”는 역시 고독했다. ‘花草(화초)’로 생각하기 쉬운 그런 세정이었다. 니체의 ‘개척자가 된다는 것은 저주스러우나 숙명이다’라는 말을 좌우명 삼아 외교관으로서의 大成(대성)을 위해 열심히 일했고 연구를 했다.
  의전관 생활 二(이)년은 주로 한국을 방문하는 國賓(국빈)의 부인들을 모시는 일. 높은 교양과 학식을 겸비한 이들 국빈들과 접촉하면서 그의 선천적인 외교솜씨는 뛰어났다. 그 무렵 신생국 외교관을 육성키 위해 카네기 재단에서 외교관 초청이 왔다. 외무부의 쟁쟁한 인재들이 몰려들었다. 洪(홍)여사는 ‘女子(여자)가 무얼?’하는 식의 모멸을 물리치고 경쟁시험에 응시하여 당당히 1등. 콜롬비아 大學院(대학원)에서 외교문제를 1년간 연구할 수 있었다. 亞阿(아아)의 외교관 13명 중에 홍일점이었던 까닭에 언제나 女王(여왕)처럼 대우를 받았다.
  연구를 마친 뒤엔 귀빈대우의 세계일주, 그리고 귀국하여 외무부 美洲課(미주과)에서 실무에 종사. 해외 公館(공관)근무를 시작하기는 65년, 뉴욕총영사관 副領事(부영사)로 부임한 것이다. 여자이기 때문에 의견이 분분했고 다른 나라의 예를 조사하고, 그러다가 1년이 늦게 해외근무가 시작되었다. 67년엔 유엔 代表部(대표부) 3등서기관으로 옮겨 ‘후회 없는 활동’을 하다가 작년 10월에 사표를 냈다. 현재 뉴욕의 ‘뉴 스쿨 포오 쏘시알 리서치’ 博士(박사)과정에서 연구 중. 학위논문 자료수집차 귀국했다.

  ○…값싼 권위주의, 비생산적인 사치와 소비경향을 개탄하는 洪淑子(홍숙자)동문-. ‘정직은 바보’로 통하고, 창의성은 전혀 무시되는 ‘낙제 社會(사회)’의 굴레를 극복하자고 주장하신다. 올바른 民主政治(민주정치) 풍토조성을 위해 몸바치겠다는 洪(홍)동문의 의욕은 대단-. 그간 틈틈이 써놓은 글을 모아 슬하의 男妹(남매)를 위해 隨筆集(수필집)을 냈고 論說集(논설집)도 정리중이시다. 취미는 산책과 독서, 혼자 있기를 좋아한다.
  주소ㆍ麻浦(마포)구 玄石(현석)동 10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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