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후곤
법학과 91졸

돌아오는 방학엔 무엇을 할까? 요즘 대학생들은 이 같은 고민이 많다고 들었다. 84년도 법대 1학년 시절! 방학 때 나는 무엇을 했는지 찬찬히 기억을 더듬어 본다. 여름 방학 때 10박 11일로 전국을 여행했던 일이 떠오른다. 서울역에서 밤기차를 타고 남으로 남으로 내려갔다. 좌석도 없이 서서 가는 기차 안에서 밤새 노래 부르다 호남의 푸른 들을 차창 밖으로 보며 아침을 맞이하고, 해남을 지나 완도에서 배를 타고 제주도에 첫 도착했을 때의 그 설렘이란! 서귀포 일대를 수없이 걸어 다니며 풍광 좋은 곳에 텐트를 치고 추억을 만들었으니 아마도 제주 올레길의 첫 개척자였는지도 모르겠다. 텐트 노숙으로 지친 몸을 이끌고 완행버스와 도보 등을 이용해 다시 남해로, 부산으로, 속초로 반도의 해안선을 따라 여행했던 소중한 기억… 여행이 끝난 후 구릿빛 얼굴… 나의 몸과 정신은 더욱 탄탄해져 있었다.

이후의 방학은 그다지 추억거리를 남길만한 일이 많지는 않았다. 그저 도서관에 처박혀 공부하거나 틈틈이 전공과 관련 없는 책을 빌려서 읽었던 기억 외에는…. (지금은 법대 건물로 탈바꿈한 중앙도서관 건물 서고 사이사이를 지나가다 눈길 가는 대로 책을 꺼내 창틀에 기대어 읽었던 기억도 새롭다.)
요즘 젊은이들의 고민은 무엇일까? ‘아프니까 청춘이다’라는 청년들의 아픔을 대변하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될 정도로 그들의 고민은 깊다. 불안한 미래와 외로운 청춘을 보내고 있는 젊은이들이 이 땅에 넘쳐나고 있기에 기성세대의 고민도 깊다(나같은 기성세대의 힘듦은 우스개로 “결리니까 중년이다”라고 한단다). 그런데 이 시대 청춘들만이 유달리 고통과 아픔을 겪는 것인가 생각하면 꼭 그렇지는 않은 것 같다.
나의 학창시절을 돌이켜보면 멋모르고 청춘과 낭만을 구가하던 저학년이 지나고 그럭저럭 군 생활을 마치고 이제 졸업이 턱밑으로 다가오는 순간 이뤄놓은 성과는 아무것도 없었던 나 자신을 보면서 한없이 좌절했던 기억이 떠오른다. 도대체 결과를 알 수 없는 시험과 무모한 도전! 졸업장을 받아들고 내가 ‘청년 백수’라는 사실을 자각하는 순간의 아찔함….

고시생이라는 딱지를 언제 뗄 수 있을지, 이제 곧 서른이 되는데 그때까지 내 삶의 방향을 결정하지 못한다면 어찌 될 것인가? 하루하루는 불안의 연속이었다. 그때 나는 즐겨보던 ‘서른 잔치는 끝났다’라는 최영미 시인의 시집 제목대로 아무 성과 없이 서른이 될 것 같은 불안함에 하루하루를 살았다. 다행히 29살에 새로운 삶을 개척할 수 있는 교두보를 만들기는 했지만….

돌이켜보면 내가 청년시절 아파했던 것처럼 사랑하는 후배, 청년들이 아픈 것은 당연하다. 그래서 ‘아프니까 청춘이다’라고 하지 않았겠는가? 미래에 대한 불안함은 미래에 대한 무한한 가능성의 다름 아니다. 불안함을 즐기고, 때로는 그 불안함과 외로움을 오롯이 몸과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나아갈 수 있다. 사색과 여행, 독서가 그 불안함을 희망으로 바꿀 수 있다. 그래서 방학에는 외로움을 즐기기 위해 홀로 책 한권 들고 여행하길 권한다. 다시 돌이켜봐도 여행을 통해 몸과 마음을 단련시킨 것이 혹독한 추위와도 같은 ‘청춘의 겨울’을 견디게 하는 힘이 되었던 것이었다고 굳게 믿는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