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간학교 탐방기 - 성북구 나눔 야학

▲ 1년 반 만에 초ㆍ중ㆍ고등학교 졸업자격 검정고시를 합격한 한중규(81) 할머니의 받아쓰기 노트. 주름 진 손으로 빼곡하게 한 글자 한 글자 적어내렸을 할머니의 노력이 담겨 있다.
“오늘 배울 한글은 ‘환영합니다’에요. 자 다들 소리내서 크게 따라 읽어볼까요?”
늦은 밤 9시. 사람들이 하루 마무리를 짓고 있을 시각, 나눔야간학교의 작은 교실 한 켠에선 한글공부가 한창이다. 교실 책상에 자리한 60, 70대 할머니들이 선생님을 따라 칠판에 적힌 ‘환영합니다’란 문구를 큰 소리로 읽는다. 그리곤 이내 세월이 묻어나는, 주름 깊은 손으로 연필을 쥔 채 한 글자씩 정성스레 쓰시는 모습이 요즘 학생 못지 않다.

의무화 교육 실시, 야학의 필요성은 반감
서울시 노원구 공릉동 빗물펌프장 작은 지하 공간을 빌려 자리한 나눔야간학교에 40명 가량의 학생들이 찾고 있다. 학생들 대부분은 30대에서 60대까지 다양하다. 각자 사연도 남다르지만 ‘보릿고개 시절’ 배움의 기회를 잃었던 이들이 대다수다.
저녁 6시부터 10시까지 △한글기초반 △중등검정고시반 △고등검정고시반 세 반으로 나눠 수업이 진행된다. 2009년 9월 21일 처음으로 문을 연 나눔야학은 신생야학으로서 야학의 명맥 유지에 힘을 보태고 있다.

▲ 밤에도 불이 꺼지지 않는 야간학교 한글기초반에는 60대부터 80대까지 나이를 불문하고 배움의 갈증을 해소하러 온다.

학교를 세운 장추문 교장은 “중학교까지 의무 교육화 돼 있는 지금과는 달리 1950년대부터 70년대 사이엔 초등학교도 돈을 내고 다녔다. 당시 밥을 먹고 살아가기도 어려워 학교에 진학하기엔 부담이 있었고 이들을 위한 야학이 성행했었다”고 야학이 각광받던 시절을 떠올렸다. 그는 이어 야학이 점차 감소되고 있는 현황에 대해 “경제 발전과 함께 요즘은 학력도 대체로 높아지면서 야간학교의 필요성이 많이 반감됐다”고 설명했다.

교실 부족 · 학생 감소 등 열악한 야학
어려운 시절, ‘배우지 못한’ 국민들 배움의 장이 됐던 야학은 요즘 그때의 전성기 시절이 무색할 정도다.
2009년 이후부터 정부의 재정 지원이 끊기면서 명맥을 이어가기 어려운 실정이다. 근 3년 전까지만해도 서울 시내 야학은 70개로 확인됐었지만 최근 몇 년사이 줄줄이 문을 닫기 시작하면서 지금은 50개 가량만이 남아 있는 상황이다.
시설도 열악하다. 이로 인해 야학들 간의 수업과 학생들 연계 프로그램과 학습수준에 따른 학교 선정 등을 통해 부족한 교실 문제를 간간이 해결하고 있다. 직접 찾아간 노원구에 위치한 세 개 가량의 야학들 역시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로 돕고 있다고 한다.

연이은 검정고시 합격 등 성과도 잇달아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야학에는 여전히 배움의 꽃이 만개하고 있다. 현직 교사들을 비롯해 대학생들, 퇴임 교사들이 힘을 모아 야학에서 다양한 지식들을 제공하고 있다. 좋은 결과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해 고입검정고시에서 5명이 합격통지서를 받아들었다. 대입검정고시에선 6명이 합격의 기쁨을 맛봤다.
올해 여든을 훌쩍 넘긴 한중규(81) 할머니는 1년 반 만에 세 개의 검정고시를 연이어 합격했다. 2011년 5월과 8월에 연이어 실시한 중입 검정고시와 고입 검정고시를 넘어 올해 4월엔 대입 검정고시도 통과했다.

▲ 야간학교 교무실에 붙어 있는 급훈.

6·25 사변 당시 서울에서 부산으로 피난길에 올랐던 할머니는 초등학교 중퇴로 학력을 마친 이후 52년 만에 고등학교 졸업을 검정고시로 이룬 것이다. 할머니는 가장 좋아하는 과목으로 수학을 꼽으면서 “수학이 정답이 정확하게 떨어지는 재미가 쏠쏠하다. 나이가 어떻든지 무엇이든 마음먹기 나름이라 생각한다”고 밝혔다. 공부하며 시력도 많이 떨어졌지만 할머니는 “공부를 하며 계속 성과가 나오니 신기하면서도 즐겁다. 가족들의 응원으로 수학능력시험 응시와 대학 입학도 계획하고 있다”며 앞으로의 목표도 밝혔다.

뜨거운 학구열은 학생들의 본보기
이들 만학도들의 학구열도 대단하다. 이들의 학습 열의는 야학에 선생님으로 나서는 대학생들에게도 귀감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신성희(서울여대·국사 담당) 씨는 “와서 수업을 하는 시간은 한 시간뿐이지만 학생분들은 소중한 시간으로 여기신다”면서 “우리 대학생들은 쉽게 넘길 수 있는 짧은 시간이지만 모두들 열의를 가지시고 열심히 하시는 모습에 우리 스스로 많이 부끄러웠다”고 말했다.
늦은 나이에 배움의 불을 지피고 있는 야학. 요즘 들어 어린 나이에서부터 공부가 강요되는 현실 속에 스스로 배움의 길을 찾아 나선 늦깍이 학생들의 열의가 돋보인 현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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