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가 사악해지면 다음엔 희망이 없다

 

“사악해지지 말자. (Don't be evil)” 인터넷 시대를 주도하는 기업 구글(Google.com)의 비공식 기업 표어이다. 기업이 악한 짓을 하지 않아도 돈 버는 일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자는 뜻이 담겨있다. 이 표어를 만든 것은 경영진이 아닌 지메일(Gmail.com) 개발자들이다.
구글이 사용자들에게 제공하는 서비스는 방대하다. 매순간 천문학적 규모의 메가데이터(Mega Data)가 생산되는 시대를 주도하여 구글은 서버 늘리는 작업을 하루도 쉬지 않는다. 덕분에 그들의 서버 점유율은 그 밖의 정보통신 기업 서버 모두를 합친 것 보다 높다. 그야말로 데이터를 긁어모으기 위해 전력을 다하고 있다.

이용자들은 구글을 통해 공짜 이메일에서부터 세계 각 지역을 촘촘히 보여주는 지도와 거리 풍경, 언어 번역과 각종 오피스 프로그램 등을 무료로 사용한다. 그에 그치지 않고 끊임없이 새로운 서비스를 시험하고 제공한다. 심지어 다음세대 컴퓨터 운영체계와 휴대폰 운영체계까지 보급하고 있다. 그것도 무료이다. 대신 구글이 얻는 반대급부는 막대한 트래픽과 사용자들이 생산해내는 데이터들이다. 그 데이터를 분석하고 가공하여 특화된 광고 등으로 막대한 이익을 창출한다.
지메일 개발자들은 사용자들이 구글 서버를 통해 저장하고 교환하는 데이터의 가치를 일찍부터 눈치 채고 있었다. 개인의 신상에서부터 싸구려 농담까지 흩어두면 아무 의미 없는 이진수의 쓰레기들이지만, 특정한 알고리즘과 수학적 분석을 거치면 그 누구도 얻지 못할 가치 있는 정보가 된다. 그야말로 노다지가 쏟아지는 보물창고라는 것을 알았다. 게다가 살짝 사악한 마음을 먹는다면 지구상에서 상상 가능한 그 어떤 악랄한 짓도 가능하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때문에 그들이 채택한 표제어가 “사악해지지 말자”는 것이다.
최근 구글의 기업행보를 두고 한편에서는 그 표어가 이미 빛을 잃었다는 평도 있다. 기업으로서 이익을 위해 구글은 ‘악행 금지’의 가면을 벗어던졌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글이 사악해졌다고 속단하기엔 아직 때 이른 감이 없지 않다.

절대적 권능을 차지한 이들이 저지를 수 있는 악행은 평범한 상상을 훌쩍 뛰어넘는다. 악행에도 창의적인 능력이 발휘되어, 인류는 시대를 거치며 늘 새로운 사악함과 비범한 악랄함을 선보여 왔다.
진리의 별로 치장한 종교는 한때 사악함의 극을 보여줬다. 돈을 받고 신을 대신하여 죄를 사하였고, 진실의 이름으로 인간을 불태워 죽이는 악행도 서슴지 않았다. 담요에 사람을 싸서 연못에 던져 물에 빠져 죽으면 신의 뜻이고, 물에서 살아 나오면 마녀라는 죄를 씌워 불태워 죽였다.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인간의 이성과 지성과 진실이었다. 종교의 이름으로 무지와 미신과 사악한 욕망을 휘두른 것이다. 이보다 더 사악한 일이 어디 있겠는가. 그러나 그 비극의 유산은 아직도 끝나지 않았다.
청빈과 절제를 표방하는 종교인은 개인적 쾌락에 탐닉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종교적 규율은 타인을 위한 치사(致辭)에 불과하고 자신의 악행은 면죄의 영역에 놓아둔다. 진실은 죽었고 진리는 무지한 이들의 발아래 놓였다.

민주주의의 정점에서 시민을 기만하고 권력을 사적이익을 위해 거침없이 쓰는 일도 보았다. 권력은 끝 갈 데 없이 사악해져 대중이 가지고 있는 마지막 권한까지 박탈하고 눈과 귀를 가려 수탈의 대상으로 삼는다. 진실의 잣대인 언론은 권력에 줄서서 사실을 호도하고 권력의 걸림돌을 선전과 선동으로 힐난한다. 일찌감치 사악한 거짓의 갱도(坑道)에 자신을 묻은 것이다.
민주주의의 대척에 서있는 독재와 전체주의의 폭력적 폐해는 세기를 거치며 줄곧 보아왔다. 집단을 자신에 복종하는 사병(私兵)으로 여기는 독재자는 선과 악이 무엇인지 조차 모르는 몽매(蒙昧)한 자들이다.
학문은 다음 세대에게 정의와 선악을 가르쳐야 할 의무를 지고 있다. 그러나 자신의 명성을 위하여 진실을 조작하고 거짓을 강변하는 모습도 보여주었다. 교육자가 교육을 포기하고 권위를 강변하며 학생에게 복종을 강요한다. 사악함 중에도 가장 저질적이다. 학교가 사악해지면 다음 세대에 희망이 없다. 시대는 절망으로 사로잡힐 것이다.

우리 모두는 나약한 존재이다. 한때 거짓된 생각과 행동을 할 수 있고, 한때 사악함에 사로잡힐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스스로의 행위를 인식하고 도덕적 판단을 내릴 수 있다. 스스로 나약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용기와 사악함을 반추(反芻)하는 능력이 있기 때문이다.
두려운 것은 강함을 가장하는 허위와 선악의 분별을 잃는 사악함에 굴복하는 일이다. 구글 개발자들이 표명한 “사악해지지 말자”는 표어는 집단의 단기적 이익을 위해 오랜 시간 동안 쌓아야 가능한 좌표와 신뢰, 방향성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는 의지이다. 그들은 더 나아가 구글의 목표를 ‘모두의 만족’이 아니라 ‘사용자의 만족’으로 선언했다.

오늘 우리는 정부의 의지, 학문의 목적, 종교의 좌표, 우리 학교의 목표가 무엇을 위함인지 되물어야 한다. 진리를 향한 열정과 ‘학생의 만족’이 목표가 아닌 학교는 그야말로 사악한 곳이다. 권한을 가진 자들이 사악함의 유혹에 굴복하면 그 곳은 지옥이 된다. 우리 모두 더 이상은 사악해지지 말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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