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현식 교수
‘교수, 학생, 교직원.’ 대학을 구성하는 이 세 주체는 어느 주체가 더 중요한지를 따질 수 없고 이 세 주체가 각자의 역할을 제대로 수행할 때 대학은 활기차고 학문적으로 발전을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특히 교수가 학생을 잘 가르치고 교육을 잘 받은 학생들이 사회에 진출하여 각 분야에서 습득한 전공 지식을 바탕으로 사회에 기여를 하는 것은 대학의 존재 가치와 직결되는 부분이기도 하다.  

사회 구조가 복잡해지고 모든 기준을 경제성과 생산성으로 판단하려는 분위기가 만연한 이 시대에 대학을 평가하는 기준 또한 여기에 맞추어 점차 정량적이고 객관화 되고 있다. 이에 따라 대학에서의 교수 역할 또는 우수한 교수의 기준은 대학의 평가 항목에 맞추어 ‘연구 논문’, ‘연구비 수주’ 및 ‘대학원생 배출 실적’ 같은 항목이 우수한 교수의 평가 기준이 되고 있는 것도 현실이다. 이러한 현상은 한국만이 아닌 이미 세계적인 추세이며 점차 사회에서 요구하는 대학의 경쟁력 및 역할이 강조될수록 더욱 더 강조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대학에서의 교수 평가 기준이 이러한  항목으로 평가된다는 것이 뭔가 허전하고 아쉽게 느껴지는 이유는 뭘까? 

4년 대학 생활 또는 그 이상의 대학원 과정을 거치면서 교수님에 대한 추억을 누구나 가지고 있을 것이다. 대학을 졸업한 후에 개인적으로 다시 찾아뵙고 인사를 드리고 싶은 교수님도 있을 것이며 수업시간이나 그 외의 대학 활동을 통해 살아가는데 깊은 교훈을 받은 추억도 가지고 있을 것이다. 생각해 보면, 필자도 대학 및 대학원 과정을 거치면서 많은 교수님들한테 영향을 받았다. 강의 시간에 정말로 강의를 잘하시는 분도 계셨고 강의는 어려웠지만 기회 있을 때마다 늦게까지 술 한잔 사주시며 인생 선배로서 뭐가 중요한지를 알려주신 분도 계셨다. 또는 교수님의 일상적인 생활에서 보여주시는 행동만으로도 깊은 교훈이 된 경험도 있을 것이다.

필자의 예를 들면 20여 년 전 대학교 2학년 때 일이다. 시험 기간이라 새벽에 학교를 간 적이 있는데 나이 지긋하신 학과 교수님 중 한 분이 지저분하게 붙은 벽보와 주변의 휴지를 줍는 것을 보고 인사드리면서 청소부가 할 일을 왜 직접 하시느냐고 여쭤본 적이 있다. 선생님 말씀은 간단했다. “힘든 일도 아니고 맘도 상쾌해지고!” 그 이후에도 그 선생님이 이른 아침에 지저분한 벽보와 휴지를 정리하시는 것을 종종 봤다. 필자도 우리 학교에 부임한 이후에 그 선생님을 떠올리면서 지저분하게 아무데나 붙은 상업 광고 벽보나 주변의 휴지를 종종 정리한다. 비록 강의 시간에 배운 것은 아니지만 필자에게는 큰 교훈이었다.

강의와 연구 업적이 뛰어난 교수님, 위의 예처럼 사소한 일에 교훈을 남기신 교수님, 그리고 술 한잔 늦게까지 하시며 여러 가지 조언을 해 주신 교수님 모두 훌륭한 스승이신 것은 분명하다. 그러나, 오랜 시간이 지나고 학창 시절을 돌이켜 볼 때 아마 학생들한테 더 기억에 남아 찾아뵙고 싶은 선생님은 누구일까?
요즘 같이 생산성, 무한 경쟁력 그리고 수치적인 잣대로만 모든 것을 평가하려는 시대에 대학도 교수들한테 요구하는 것이 이러한 사회적인 분위기를 의식하지 않을 수는 없다. 그러나 뭔가 2% 부족한 스승과 제자 사이를 채워줄 수 있는 여건이 만들어 질 수 있도록 지혜가 필요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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