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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7.1 13: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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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남매가 함께 한 동악에서 평생의 인연도 만났어요”제5회 동국가족상 수상자 조충미(교육 85졸) 동문 가족

세상만사 억지로 되는 일은 없다. 자연스러움을 통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연이 시나브로 쌓이면 더욱 애틋하고 소중하다. 남산과의 우연한 만남이 부처님과 인연이 되고 평생의 배우자까지 만나는 필연으로 전개된다.

이번 제5회 동국가족상을 수상한 조충미(교육 85졸) 동문 가족은 조 동문을 비롯해 조충국(사회개발 83졸), 조충철(농생 90졸) 3남매가 우리대학을 졸업했다. 또한 조충미 동문의 배우자인 이만수(체교 85졸) 동문과 사촌 동생 조충권(영문 95졸) 동문, 조카사위 박종수(통계 93졸) 동문, 조카 박기범(건축2) 군까지 총 7명의 가족이 동악의 품에서 꿈을 키웠고 현재 진행중에  있다.

남산주변을 놀이터 삼아 자란 남매
조충미 동문은 항상 남산을 바라보며 자랐다. 장충단 공원은 그녀의 놀이터였다. “어릴 적부터 동국대를 접할 기회가 많았어요. 여름이면 인산인해였던 동국대 수영장에 자주 가고 남산도 자주 올라갔었죠.”
숙명여고 출신인 그녀는 학력고사 1세대다. 진학 당시 여러 대학 중 우리대학을 택한 이유를 물었다. “제일 중시한 기준은 남녀공학이었어요. 여대는 가고 싶지 않았거든요(웃음). 그리고 집안이 불교적 종교관을 가지고 있었고 어릴 적부터 보아오던 익숙한 건물이 저를 끌어당겼어요. 학교를 선택하는 데 많은 고민은 하지 않았어요. 친오빠가 다니기도 했고요.”

교육학과에 입학한 조 동문은 4년 내내  근로장학생으로 생활비를 벌었다. 당시 등록금은 40만 원 정도였다. 지금처럼 많은 장학제도가 마련되어 있지 않았던 시절이다. “수석, 차석 장학금도 있었지만 교수님의 추천으로 받는 ‘가사 장학금’ 제도가 있었어요. 이자 없이 원금만 졸업 후에 갚을 수 있는 장학제도였는데 취업하고 정말 감사한 마음으로 원금을 갚아 나갔어요.” 
그녀는 친동생 조충철 동문, 사촌 동생 조충권 동문, 조카 박기범 군에게도 우리대학 입학을 권했다고 한다. “우리대학에서의 추억이 많아 가족들에게 적극적으로 추천했어요. 서울의 중심에 우뚝 서 있는 우리대학이 자랑스럽거든요.”

부처님과의 만남이 부부의 연으로
이만수(체교 85졸) 동문은 경상남도 진주에서 올라와 남산 주변에서 친누나와 살며 서울생활을 했다. 태권도 유단자인 이 동문은 자연스레 친근해진 학교의 모습에 이끌려 체육학과로 진로를 택했다. 그는 평생 배필인 조 동문을 대학교 2학년 때 처음 만났다. 당시 학도호국단 여학생부 차장이었던 그녀를 체육부 차장인 친구를 통해 만났고 2년간 친구 사이로 지냈다.
바야흐로 5월은 사랑의 계절이었던가. 2년간 인사만 나누던 그들은 84년 축제 당시 지금의 연을 맺게 되었다. 교육학과 먹거리 장터에서 각자의 친구를 따라온 이 동문과 조 동문은 같이 자리를 해 즐거운 시간을 나눴다. 때마침 지나가던 ROTC 후배가 선견지명이 있었는지 그 광경을 보고 이들의 사진을 찍기도 했다고.

“지금의 수영장 자리에서 응원대전을 했는데 운동권 학생들이 구호를 외치자 경찰이 최루탄을 던졌어요. 완전 아수라장이었죠. 그때 남편의 도움을 받아서 수영장 뒷문으로 빠져나갈 수 있었어요.”
이를 계기로 두 동문은 도서관과 남산을 오가며 사랑을 키웠고 졸업 후 87년 10월 31일에 평생을 같이 하기로 약속했다. 이만수 동문은 “부처님과의 인연으로 우리가 만나게 된 거죠(웃음). 동악에서 얻을 수 있었던 가장 큰 선물”이라며 기뻐했다.

스스로 다짐하라 Pride Dongguk
ROTC 23기인 이 동문은 전역 후 제약회사 영업사원이 됐다. “한 직장에서 오래 근무하기가 생각보다 쉽지 않아요. 하지만 혼수도 생략하고 단칸방으로 시작한 결혼 생활을 생각하니 누구보다도 열심히 살아야 했죠. 후배들도 인내심을 가지고 한 우물을 파면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으리라 봐요”
조충미 동문은 임용고시 대신 대한사립중고등학교장회에 취업했다. 불교방송 리포터를 1년간 하기도 했고 현재는 유학원을 운영 중이다.
그녀가 후배들에게 전해달라고 했다. “자아 존중감을 가지고 타인에게 베풀며 스스로 행복할 줄 아는 사람이 되고 ‘My Pride, Dongguk’을 항상 기억했으면 해요. 돌아보면 자신, 가족 그리고 머물렀던 공간에서의 추억이 가장 소중하거든요.”

이준석 기자  stone@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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