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고 평범한 노력이 세상을 바꾼다

 

어제와 똑같은 오늘과 내일을 살아가는 평범한 삶. 그 속에서도 분명 인생을 송두리째 바꿀 번뜩이는 순간이 누구에게나 찾아온다. 이 순간을 경험한 이들은 변화의 세계로 들어서고, 나아가 세상의 변화를 이끈다. 운명의 순간을 무심코 지나치지 말고 마음의 창을 열어두자.

운명의 순간은 번갯불처럼 다가온다. 사람과의 만남, 스승의 가르침, 책 속의 한 문장, 부질없는 농담 속에서 진실을 발견했을 때. 우리는 변하고 그 순간의 충격은 오래도록 기억된다.
히브리의 신비주의자들은 그 순간을 일러 알레프(Aleph)라고 표현했다. 알레프란 히브리어와 아랍어의 첫 글자이니 모든 것이 시작되는 때이고 모든 것을 담고 있는 상징이다. 세상 일의 시작과 끝이다. 더러는 속박된 자아를 벗어나는 마음의 관문을 말하기도 한다.

어찌됐건 하잘 것 없이 사소한 일이라도 필생의 알레프를 담을 수 있다. 뉴튼에게는 떨어지는 사과를 지켜 본 순간이었을 것이고, 붓다는 짙은 어둠 속에서 샛별을 지켜보며 알레프의 순간을 맞았다. 세상의 작가들은 첫 문장을 쓰며 운명을 만들어간다. 연인에겐 첫 만남의 불꽃이 평생토록 기억될 것이다. 우리 모두는 공평하게 알레프의 순간을 맞았을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눈치 채지 못했거나, 두려운 나머지 일상으로 발길을 돌려 외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문득 다가온 충격으로 오히려 갈피를 잃고 삶은 혼돈 속을 헤맬 수도 있다.

평생 그 돈오(頓悟)의 순간을 경험하지 못한다면 우리는 텔레비전 신파극에 의지하여 희비애락(喜悲哀樂)의 감정을 소비하고, 아무 일 없는 듯 갈망을 숨긴 채 시간을 흘려보낼 것이다. 그러다 문득 남은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는 것을 깨닫고 “왜 이렇게 살았을까?”를 한탄할 수도 있겠다.
알레프 따위야 필요 없는 인생이 대부분이다. 파괴와 소멸, 망각이라는 시간의 힘을 거슬러 불멸의 명성으로 기억되는 이들은 대개 알레프의 문턱을넘었다. 자기 한계를 넘어야 결국은 영겁(永劫)에 닿는 법이다. 알레프를 경험한 이들은 자신 뿐 아니라 타인에게도 그 변화의 세계로 들어설 기회를 준다. 스스로 변화하며 그 경험을 공유하고 궁극에는 세상의 변화를 이끈다. 물질을 소비하고 돈을 벌어들이는 자본주의 세계에도 그런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너무나 많이 인용되어 시들해진 애플의 혁신이나 자신들의 종교적 신념으로 농작물을 경작하고 소비자에게 돌려주는 미국 테사하라 농장처럼 기업의 방향이 약탈적 탐욕에 머물지 않는 일도 드물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제는 세계적인 브랜드가 되어버린 탐스(TOMS, Shoes for Tomorrow)라는 신발도 하나의 물건을 넘어 생산과 소비, 나눔의 형식을 만든 사례이다. 미국청년 블레이크 마이코스키는 2006년 아르헨티나 여행에서 새로운 세계에 눈을 떴다. 가난한 어린이들이 맨발로 걸어 다니고 그 때문에 병을 얻는 제3세계의 현실. 그 참혹함이 마이코스키에게는 알레프의 순간이었다.

한 소년에게 신발을 나눠주는 것은 일시적이며 제한된 자선이지만, 그는 다른 방식의 해결책을 만들었다. 아르헨티나 민속신발 디자인을 채용한 탐스 신발은 한 켤레를 사면 제3세계의 소년들에게 똑 같은 한 켤레의 신발을 전해준다. 소비자가 지불하는 가격 안에 누군가를 위한 신발값이 포함되어 있다.
세상의 냉담함과 불공정한 현실로부터 우리 자신을 구할 수 있는 존재는 결국 우리들이다. 신과 같은 초월적인 존재나 막대한 자본을 가진 자, 또는 권력자가 신발 한 켤레 살 수 없는 어린이를 위해 무엇을 하겠는가. 결국 마음속에 작은 자비심의 불씨라도 간직한 이들이 자신의 신발을 사며 누군가의 신발값을 지불한다.

기업에게 엄격하게 강요되는 선한 경영은 벽에 걸어두고 가끔씩 쳐다보는 구호와 같은 눈속임이다. 기업의 탐욕을 절제하라는 충고는 현실적으로 강제할 수단이 없다. 하지만 개인의 소비활동이라면 이야기가 다르다. 우리는 건강한 생각을 할 수 있고, 작은 것을 실천할 의지가 있고, 자기 행위의 집행자이기 때문이다. 타인에게 요구하는 선량함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에 있는 선의에 눈뜨면 가능한 일이다. 모두가 탐스 신발을 사 신지는 않을지라도 자본의 무절제한 탐욕을 혐오하고, 세상이 좀 더 나은 곳이 되길 바라며 가끔은 이상을 위해 마음의 창을 여는 이라면 그 신발을 신을 것이다.
마이코스키의 아이디어는 아주 단순하지만 강력하다. 그는 신발을 파는 일을 넘어 인간 본성에 내재된 선의를 일깨웠다. 그는 잘 팔리는 신발을 만들지 않고 새로운 사업의 방식을 만들어냈다. 그것이 중요하다.
경제가 어렵다는 공포감이 청년들을 지배하면서 학창시절에 창업하는 학생들도 늘었다. 사업 아이템을 생각하고 투자를 계획하며 마케팅에 나서는 일도 중요하겠지만, 창업자들에게 전하는 마이코스키의 조언은 의미 있다.

“사업가가 되기보다,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이 세상의 문제를 찾도록 노력하는 것이 더 중요한 일이다.”
모두가 흘려 지나치는 각성(覺醒)의 순간에 눈을 뜨자. 그 각성이 백일몽처럼 흩어지지 않도록 주목하자. 아주 작은 일, 평범한 노력이 세상을 바꾼다는 사실을 기억하자. 그리하여 모두가 알레프의 문턱을 넘고 서로를 이상(理想)으로 인도할 수 있기를 바라자. 모두가 꿈꾼다면 그것이 현실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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