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 같은 마패를 해 같이 둘러매고 삼문을 냅다 치며, “암행어사 출두야!” 한 번을 고함하니 강산이 무너지고, 두 번을 고함하니 초목이 떠나는 듯, 세 번을 고함하니 남원이 우군우군…“네가 누구냐?” 운봉 곡성 겁을 내어 말을 거꾸로 타고, 삼색나졸 넋을 잃어 어찌 할 줄 모르는데, 깨지나니 거문고요 딩구나니 북 장구라. … 본관의 거동 보소. 칼 집 쥐고 오줌 누며, 탕건 잃고 요강 쓰며 갓 잃고 전립 쓰며, 인통 잃고 연상 들며…’ 우리에게 ‘춘향전’으로 알려진 ‘열녀춘향수절가’에서 어사 이몽룡이 등장하는 장면이다. 조선시대 임금은 지방의 사정을 효율적으로 파악하기 위해 어사를 파견했다. 조선시대판 사찰이다. 암행어사는 지령지와 마패를 받으면 숭례문을 나와서야 지령지를 풀어볼 수 있었다고 한다.

▲총선을 목전에 둔 현시점에서 국무총리실 산하 공직윤리지원관실의 민간인 사찰의혹이 뜨거운 감자다. 이 내용이 정치 쟁점화되며 ‘자신이 몸통’이라고 주장하는 사람이 등장하는 한편, 지난 정권에서도 사찰이 진행됐다는 증거가 발견되며 혼재된 양상을 보이고 있다. 특히 정치적 성향을 보인 연예인들도 사찰대상에 올랐다는 증언이 나오기도 했다. 현재 여당과 야당은 특검도입과 특별수사본부 설치를 주장하며 맞서고 있다.

▲미국에서도 이러한 정보수집이 문제 된 바 있다. 1956년부터 1971년 사이에는 FBI가 코인텔프로(COINTELPRO)를 가동해 미국 내부의 저항 정치 조직을 조사하여 파괴하려는 목적을 가지고 마틴 루터 킹 2세, KKK(Ku Klux Klanㆍ백인 우월단체) 등의 활동을 감시해왔던 것이 밝혀졌다. 70년대 케네디 대통령 시절에는 CIA가 1만 명의 민간인을 사찰했던 것이 드러나기도 했다. 당시 미국에서는 관련 법규를 제정하여 불법의 영역과 합법의 영역을 명확히 하는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했다.

▲사실 정보수집활동은 불법과 합법의 경계를 나누기 쉽지 않다. 사회가 고도화되면서 공공영역과 민간영역의 범주를 구분하기가 쉽지 않아졌기 때문이다. 공직자의 비위를 캐는 과정에서 연루된 민간인을 추적하는 것은 불법이 아니다. 또 추적하는 과정에서 숨겨져 있던 진실이 밝혀지기도 하는 한다. 그 결과만이 불법과 합법을 경계 짓는 유일한 증거가 되는 셈이다. 이렇게 사찰과 감찰의 경계가 모호하여진 데에는 관련 법 제도가 미비한 점도 한몫했다. 입법자인 국회의원들이 정보수집활동의 범주에 대해 명확하게 입법했다면 이런 상황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다. 결과적으로 자신들이 풀어야 할 숙제를 풀지 못한 채 남 탓만 하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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