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민 교수

“여자들은 아무것도 자진해서 쟁취한 것이 없었다. 그들은 단지 주는 것을 받아 왔을 뿐이다.”
시몬 드 보부아르가 쓴 ‘제2의 성’의 서문에 나온 말이다. 심지어 여성은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반란을 일으키지 못한 피지배계층이다. 스파르타쿠스나 고려시대에 일어난 만적의 난에서 보듯 노예들도 지배계급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고, 결국 해방을 쟁취한 바 있는데 말이다.

시대가 달라져도 이 사실엔 변함이 없다. 지금 시대엔 반란을 일으키기 위해 굳이 무력을 동원할 필요가 없고, 표로 심판하는 게 얼마든지 가능함에도. 보부아르는 그 이유를 “여성들을 하나로 뭉치게 할 현실적인 수단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녹색당이 있고, 노동자를 위한 당도 있지만, 여성당이 있었던 적이 없다.
2000년대 들어 스웨덴과 인도, 폴란드 등에서 여성당이 만들어졌지만, 안타까운 것은 그 당이 여성들에게조차 외면당한다는 거다. 인구의 절반이 여성임에도 그네들이 얻은 득표율은 1%대에 불과하다.
우리나라 역시 사정은 비슷해, 여성의 권익을 위해 싸운다는 페미니스트들이 여성들로부터 외면받고 있는 중이다. 총선이나 대선 때 여성문제가 이슈화된 게 없는 것도 그 때문인데, 여기서 우리는 한 가지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뭉치지 않으면 얻어낼 것은 아무것도 없다는 것.
우석훈이 쓴 ‘88만원 세대’가 상징하는 것처럼, 우리 사회에서 대학생이 약자의 위치로 떨어진 건 꽤 오래 되었다.

어려서부터 입시지옥에 시달리다 대학에 왔건만, 그들을 기다리는 건 비싼 등록금에 갈수록 높아만 가는 취업문턱으로, 2011년 4년제 대학 평균 취업률은 54%에 불과했다.
사정이 이렇다면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라고 정부에 요구해야 하건만, 학생들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다. 2년 전 지방선거의 쟁점은 무상급식이었고, 이번 총선의 이슈도 현 정권 하에서 저질러진 불법사찰이 고작이다.
왜 그럴까? 다음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다. “이번 총선에서 반드시 투표하겠다는 20대는 36.1%로, 50대(72.1%)의 절반 수준이다” 정부가 20대를 배려하지 않는 이유도 행동하지 않는 유권자를 무서워할 정부는 없기 때문이다.

대학생들의 목소리가 후보의 공약에 반영된 적은 2007년 딱 한 번, 그때는 가파르게 상승한 등록금에 대한 학생들의 분노가 극에 달해 있었고, 그 기세에 눌린 현 대통령은 ‘반값등록금’을 공약으로 내세워야 했다.
현재 대학생의 숫자는 250만명, 결코 무시할 숫자가 아니다. 과거 여성들과 달리 그들은 하나로 뭉쳐야 할 뚜렷한 이유가 있으며, 인터넷이라는 현실적 수단도 있다.
대학생 모임이 생긴다면, 그래서 각종 선거 때마다 자기 목소리를 낸다면, 정치권이 지금처럼 대학생들을 무시하진 못하지 않을까?
학생 개개인마다 처한 환경이 조금씩 다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생들이 한 데 모여야 하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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