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시기 교수

“방하착!” 마음을 내려놓아라!
스님들의 설법을 들으면서 가장 자주 듣는 말이기도 하고, 스님들이 수행을 하면서 큰스님들로부터 받는 화두들 중에서 가장 흔한 화두들 중의 하나일 것이다. 그래서 ‘방하착’은 아마도 석가모니의 가르침을 가장 잘 요약하는 말들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그래서 ‘방하착’이라는 말은 내가 이해하는 불교의 가르침들 중에서 가장 으뜸의 가르침이다.

언제, 어느 스님으로부터 ‘방하착’이라는 말을 들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방하착’이라는 말은 스님들의 수행뿐만 아니라 학자가 공부를 하는 데에도 그대로 적용되는 듯하다. 아무리 훌륭한 문학 텍스트나 이론이라고 하더라도 그 텍스트나 이론에 집착하면 다른 텍스트나 이론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집착의 마음을 내려놓았을 때, 새로운 텍스트와 새로운 이론이 들어와 내 눈과 마음을 밝힌다.
학자의 공부만이 아니라 개개인의 삶에서도 마찬가지이다. 자식과의 관계, 제자들과의 관계, 동료 교수들과의 관계, 혹은 친구나 연인과의 관계들에서도 집착의 마음은 나 자신뿐만 아니라 나와 관계를 맺고 있는 상대방의 삶마저도 피폐하게 만든다. 지난 삶은 그런 집착하는 마음을 놓지 못해서 수없이 아파했던 번민의 연속이었다.

공부나 개개인의 삶만이 아니다. 사회와 국가도 마찬가지이다. 사회와 국가가 집착하는 마음을 가지면 그것은 지배와 권력의 이데올로기가 된다. 사회와 국가가 이데올로기를 가지면, 그 이데올로기에 찬성하는 사람들과 반대하는 사람들의 대립과 갈등이 있게 마련이다. 그러한 사회와 국가는 변화하는 세계에 대응할 수가 없다. 지난 수천 년의 역사가 가르쳐주듯이 그런 사회와 국가는 망하는 것이 원칙이다. 스님들의 설법이나 수행, 학자의 공부나 개개인들의 삶, 그리고 사회와 국가의 미래에도 적용되는 ‘방하착’의 가르침이 불교를 모태로 하는 동국대학교의 교육과 행정에서도 예외일 수는 없다. 그런데 요즈음 동국대학교의 교육과 행정은 ‘방하착’의 가르침과 너무나도 멀리 떨어져 있다. 대학의 학문교육을 수행하는 교수들에게 일방적으로 담당강의 시간을 추가하는가 하면, 지난 학기 초 전체교수회의에서는 교수들에게 알려준 시간보다 30분 후에 총장과 이사장이 등장하며 전체회의가 개시되었다.

이러한 학교의 권위주의적 집착의 마음은 학생들에 대한 교육행정의 처리에도 마찬가지이다. 학교 당국은 전체 학생들의 민주적인 투표에 의해서 당선된 총학생회장과 부총학생회장 등등의 집행부 학생들이 새 학기가 되어 총학생회 업무를 담당하기도 전에 징계를 했다. 스님들의 수행이나 학자들의 공부는 물론이고 개인과 사회, 그리고 국가가 ‘방하착’의 마음을 가지지 않으면, 각각의 개인들과 그 구성원들의 분열과 갈등을 초래할 수밖에 없다. 그래서 동국대학교의 학생들은 학생들대로, 동문들은 동문들대로, 그리고 교수들은 교수들대로 각각의 삶들이 서로서로 갈등하면서 피폐해질 수밖에 없다.
학교 당국과 총학생회의 마음이 다르면 서로 대화를 하고 소통을 하면 된다. 그런 대화와 소통의 원칙은 ‘방하착’이다.

학생들은 어리다. 그래서 교육이 필요하고 새로운 학문의 수행이 필요하지 않은가? 때문에 “집착하는 마음을 내려놓는” 불교를 모태로 하는 교육의 마음은 동국대학교를 대표하는 총장님과 보직교수들에게 필요하다. 총장님! 그리고 학생처장님! ‘방하착’의 마음으로 징계를 해제하시고 총학생회 대표들과 소통하시기를 바랍니다. 나무아미타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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