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사 논설위원 장하용 교수가 말하는 대학 사회의 바람직한 의사소통 방향

대학 사회의 커뮤니케이션은 충분해야 하지만, 결정은 조금 느린 것이 필요하다. 그 결정이 구성원들에게 중요한 사안일수록 더욱 그렇다. 아무리 신속하고 정확한 의사결정이라도 구성원들이 진심으로 동의하고 따르지 않는다면, 의사결정의 실효성은 사라지고 계속해서 수정해야 한다. 이때 발생하는 갈등비용은 최초의 의사결정에 투입된 자원을 초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한국에서는 대통령이 바뀔 때마다 정부 이름을 짓는 것이 유행처럼 반복되어 왔다. 문민 출신 정치인이 처음으로 대통령이 된 김영삼 정부는 ‘문민정부’로, 김대중 정부는 ‘국민의 정부’로 불렸다. 바로 직전인 노무현 정부는 다양한 사회 계층의 국정 참여를 강조하면서 ‘참여정부’로 이름을 지었다. 합의에 의한 절차적 민주주의가 중요시되고, 일반 시민들이 의사결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수단이 늘어나면서 소통(疏通)은 자연스런 시대적 흐름이 되었다.
대학 사회도 이런 흐름에서 자유롭지 않다. 최근의 등록금 인하 이슈를 비롯해서 대학 구성원들 간의 의사소통이 문제가 되고 있다. 경기도에 있는 한 대학은 ‘소통본부’란 별도 기구를 만들어 학교와 학생들의 커뮤니케이션을 강화하고 있다.

소통, 민주사회서 효율적인 수단
소통이 왜 중요한가?
사실 소통이 강조되기 시작하면 역설적으로 불통(不通)이 심하다는 것이다. 소통을 하지 않아도 일이 잘 풀리면 굳이 강조되지 않는다. 또한 의사결정 차원에서 보면 소통은 매우 비효율적이다. 구성원들 간의 충분한 커뮤니케이션은 많은 시간과 노력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소통은 서로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대화와 설득을 통해서 합의를 이끌어내는 과정이다. 소통 자체는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다. 소통을 중요시하는 이유는 민주주의 사회에서 합의를 이루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라는 공유의식이 있기 때문이다.
어떤 조직이든 의사결정 과정에서 두 종류의 에너지를 소비한다. 하나는 과제 자체를 해결하기 위해 사용되는 시간과 자원으로 효율적 에너지라 불린다.
다른 하나는 구성원간의 의사소통 방식 때문에 소비되는 내재적 에너지로, 당면한 과제와는 직접적인 관계가 없다. 내재적 에너지는 의사소통에 대한 기대와 방식이 서로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대인적 분쟁을 해결하기 위해 소비된다. 문제는 내재적 에너지의 소비량이 많을수록 구성원들은 소통을 하면서도 단절감을 느끼는 데 있다. 수단과 목적이 전도된 것이다. 대학에서 소통의 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행정부나 기업과 달리 대학 구성원들의 연속성이 약하기 때문이다. 학부생의 경우 4~5년, 대학원을 포함하더라도 7~8년이면 졸업과 함께 대학 울타리를 벗어나게 된다. 또한 학생들은 피교육자 신분이기에 대학의 의사결정에서 주도적인 역할을 담당하기에 부족하다는 인식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다보니 대학 내 소통이 결정 사항을 알리기 위한 통보나, 소통을 했다는 면죄부를 주기 위한 요식행위로 그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신속함보다 신중함이 중요
그렇다면 대학 사회의 의사결정에서는 어떤 기준이 중요한가? 조직의 의사결정을 평가하는 기준은 신속성, 정확성, 그리고 충성심이다. 신속성은 상황을 얼마나 빠르게 대처할 수 있는지, 정확성은 핵심 문제를 효율적으로 해결할 수 있는지를 말한다. 이와 달리 충성심은 참여자들이 얼마나 결론에 동의하고 따르는지를 의미한다.
외부 환경이 급변하는 일반 기업이라면 신속한 의사결정이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대학은 창의적인 지식과 경험을 생산하고 공유하는 조직이다.
창의성의 발현은 다양한 의견이 제기되고 자유롭게 유통되는 과정에서 이루어진다. 이를 위해서는 의사소통의 필요조건과 충분조건 모두가 만족되어야 한다.
필요조건은 대학을 구성하는 주체들이 공유하는 정보의 양이다. 충분한 정보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한다. 견해가 서로 다르기 때문에 발생하는 의견의 불일치는 정확하고 충분한 정보의 제공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 반면에 상대방의 견해가 무엇인지 잘 알고 있지만, 주장에 공감하지 못하는 경우는 정보 제공만으로는 부족하다. 이때 필요한 것이 소통의 참여와 진정성이다.

상시적인 의사소통 시스템 갖춰야
대학의 의사결정은 소수 사람들이 모여서 내리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많은 구성원들이 참여할 수 있는 기회를 통해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 대학은 상시적인 의사소통 시스템을 갖추어야 한다. 일이 생겼을 때 대화의 자리를 갖는 것은 그 순간의 어려움을 벗어나려는 회피의 구실로 보이게 된다. 정보를 공개하고 자주 만남의 기회를 가졌지만 수긍하지 못하는 이유는 상대방의 진심에 대한 공감이 부족하거나 없기 때문이다.
환자에게 의료서비스를 제공하는 병원처럼, 대학은 지식을 생산하고 교육을 통해 서비스하는 조직이다. 그동안 우리 대학은 하드웨어적인 서비스를 많이 확충해 왔다. 기숙사를 비롯해서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있지만 소프트웨어에서는 어떨까? 기업처럼 규정을 엄격히 적용하고 업무 수행의 효율성만을 강조한 것은 아닌가?
대학 사회의 커뮤니케이션은 충분해야 하지만, 결정은 조금 느린 것이 필요하다. 그 결정이 구성원들에게 중요한 사안일수록 더욱 그렇다. 아무리 신속하고 정확한 의사결정이라도 구성원들이 진심으로 동의하고 따르지 않는다면, 의사결정의 실효성은 사라지고 계속해서 수정해야 한다. 이때 발생하는 갈등비용은 최초의 의사결정에 투입된 자원을 초과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거의 220년 전인 18세기 말, 토마스 어스킨은 불통(不通)의 위험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생각을 자유롭게 소통하도록 하고, 노여움을 터트리도록 놓아두라. 화약이 터지듯 불타오르지만, 그 소리는 위험하지 않다. 그러나 이를 통제하면 지하로 숨게 되고, 그 불의 동요는 보이지 않지만 결국에는 지진이나 화산으로 폭발한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