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개천 교수

4월 선거를 앞두고 우리사회는 보수 아니면 진보로 첨예하게 양분되어 있는 것 같다. 보수와 진보는 정책이 폐쇄적 혹은 개방적인가로 구분된다면 우리사회의 보수는 오히려 개방적이고 진보는 한미 FTA에서 보듯 폐쇄적이다. 사실 그 둘을 가를 수 있는 기준은 모호한데도 불구하고 대척점에 서있는 듯 나누어 말하고 생각한다. 이 세상에 이분법적으로 나눌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모든 것은 다중적이고 복합적인 연관관계를 맺고 있으며, 나눌 수 있는 명확한 기준과 체계는 갖고 있지 않다. 현대적인 지식인의 기본자세는 이것은 옳고 저것은 그르다고 하지 않는 것이다. 선과 악은 나눌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현실의 모든 것은 모호하고 흔들리는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있기 때문이다. 똑같은 상황은 하나도 없으며 같은 대답을 요구할 수도 없다. 상황에 따라 다른 판단과 선택이 요구된다.
숨겨진 배면의 세세한 것까지 헤아릴 수 있어야 하고, 그 너머까지 통찰력으로 바라볼 수 있어야 한다. 자신의 정체성도 신념도 갖고 있지 않아야 한다. 신념과 체계를 갖게 되면 한 곳에 머무는 닫힌 사고를 하게 되며, 내편 저편을 신념의 잣대로 나누게 된다. 생각이 다른 사람을 계몽시키려하고 심지어는 폭력을 행사하게 만든다.

인류는 선(善)이라는 미명하에 행해진 폭력으로 얼마나 많은 자가 희생되었는지 모른다. 이상에 치우치면 삶은 하부구조가 된다. 자신에게 주어진 더 많은 기회를 잃고 자신을 불행하게 만든다. 숭고한 우상의 노예가 되어 자신을 즐기지도 못하는 타자의 삶을 살게 된다. 그 무엇에도 기대는 것 하나 없이 끝없이 흐르기만 하는 도도한 강물처럼 자신의 삶을 살아야 한다.
도라는 것은 앞에 있다 싶으면 뒤에 있고, 위에 있으면 밑에 있고, 멀리 있으면 가까이 있는 것이라 하지 않았던가. 임제스님은 살불살조(殺佛殺祖)라 하여 부처를 만나면 부처를 죽이고 큰스님을 만나면 큰스님을 죽이라고까지 하였다. 그 말은 어떤 개념도 진리도 허구로서 집착과 가치의 상(相)을 갖지 말라고 경계하는 바이다.

모든 가치는 무가치하다는 믿음으로 자유로운 삶을 추구하는 것이다. 지성을 꿈꾸는 학창시절은 닫혀있기보다는 열려있어야 할 때이다. 판단을 내리기보다는 흡수하여 자신의 것을 키워나가야 한다. 타인에 대한 관심보다 모든 것을 자신에게로 집중하여 믿기보다는 의심하고, 구축하기보다는 해체하고, 안정된 것보다는 위험한 것을 선택해야 한다. 답을 말하려 하지 말고 질문할 수 있을 때 현실적 맥락으로 녹여내는 힘을 가질 수 있으며 각 개인의 삶을 깊이 있는 의미로 포착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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