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의 세계(世界)는 ‘님’이 안 돼

  ○…동국문학(東國文學)(3집)에 실린 ‘님에 관한 연구’를 발단으로 시작된 萬海(만해) 詩(시)에 있어서의 <님에 관한 論爭(논쟁)>이 本面(본면)에 2회에 걸쳐 실렸었다. 崔淳烈(최순열)군(國(국)3)이 처음 反論(반론)(12일字(자)ㆍ‘님은 目的(목적)이다’)을 제기, 沈鍾善(심종선)(國(국)4)군은 그에 대한 答(답)(19일字(자)ㆍ‘님은 영원한 複合體(복합체)’)을 했다. 이에 다시<崔(최)ㆍ沈(심)>양군의 글을 함께 실음으로서 이 문제에 대한 일단락을 짓는다. <편집자>

  그동안 紙上(지상)과 面談(면담)을 통하여 崔君(최군)과 여러 번 論爭(논쟁)을 벌여 왔으나, 그러나 나는 처음부터 이런 論爭(논쟁)을 싫어했던 것이고 또 崔君(최군)과는 論爭(논쟁)의 대상도 되지 않아 무척 苦心(고심)했었다.
  그러나 학문에 있어서의 모두가 보탬이 되는 의견의 차이라 생각하고 論(논)을 展開(전개)해 왔었다.
  그러나 이것 또한 오래 계속될 수 없는 論爭(논쟁)이기에 필자는 論(논)을 終結(종결)하는 意味(의미)로 지금까지 擧論(거론)되었던 萬海(만해)의 님을 再考(재고)해 더듬어 본다.

  님은 공동체(共同體)
  님이란 처음으로 비롯되어 시작된 것이어야 하며, 디딤하여 걸어가야 할 것이어야 하며, 궁극적으로 의지해야 할 것이어야 하고, 그리고 최후로 고안해야 할 것이어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萬海(만해)의 님은 한 自然(자연)만 가지고 님이라고 노래한 作品(작품)은 萬海(만해)의 님을 노래한 作品(작품)일 수가 없으며 따라서 祖國(조국) 理性(이성)…等等(등등)의 님을 노래한 作品(작품)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다시 말하면 님의 共同體(공동체)로써 萬海(만해)가 있을 뿐이요, 한 絶對的(절대적)인 存在(존재)로써의 님은 萬海(만해)에겐 없으며 또 규정지어 저서도 안 된다.
  그렇기 때문에 만해의 어떤 作品(작품)을 읽어 보더라도 筆者(필자)가 지적한 過程(과정)의 님들이 밝게 또는 얇게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것은 비단 萬海(만해)의 作品(작품)에서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고 어떤 사람의 어떤 作品(작품)을 읽어보더라도 쉽게 찾아 볼 수 있다.
  이렇게 作品(작품)에 나타나고 있는 님들의 裸身(나신)들 가운데서 어느 한 裸身(나신)만을 만해는 사랑하지 않았다.
  다만 그들을 사랑했을 뿐이다. 그렇다고 그 裸身(나신)들이 전부 같은 量感(양감)으로써 받아들여진 것은 아니었다. 그들 가운데서도 美醜(미추)가 있었던 것이다.
  이것이 본 筆者(필자)가 생각하는 만해의 具體的(구체적)인 님이며 이 事前智識(사전지식)을 가지고 만해의 작품을 분석하여야만 한다.

  님은 具體的인 것
  그러나 崔君(최군)은 <韓龍雲(한용운)의 님이라는 詩的(시적) 가상의 세계>라고 말하여 그의 님은 어디까지나 가상의 세계에 지나지 않는다고 말하고 있으니 이것은 崔君(최군)의 論題(논제) “님은 目的(목적)이다”에도 反(반)하는 것으로써 原始(원시) 宗敎的(종교적)인 가상의 세계가 어떻게 님이 될 수 있으며 目的(목적)이 될 수 있단 말인가? 님이란 具體的(구체적)인 것이어야 하며 가까운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도 崔(최)군은 他人(타인)의 論(논)을 철저한 이해 없이 가자해서 치기어린 고집을 부리지 말라. 이 고집은 우리나라는 전체적인 존재에게 눈(眼(안))을 흐리게 하는 결과가 되어버리고 만다.

  폭넓은 眼目(안목)을
  이제 끝으로 筆者(필자)는 더 이상의 어리석은 논쟁을 원하지 않으며 崔(최)군에게 만해의 作品(작품)을 좀 더 폭넓게 이해하려면 그의 작품의 밑바탕에 捨攝波羅密(사섭바라밀)이라는 거대한 사상이 깔려 있다는 것을 잊지 말기를 鍾(종)울리며 좀 더 넓은 것을 보고 사유하여 보다 나은 精進(정진)이 있길 빌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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