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롤드ㆍ핀터’의 <홈ㆍ커밍>

  연극 ‘홈ㆍ커밍’에서 作家(작가)가 무엇을 말하고자 하는지 알 수가 없다. 作家(작가) 자신이 主題(주제)에 대해 한 번도 말한 적이 없다.
  ‘뉴욕ㆍ타임스’에서는 이 劇(극)의 主題(주제)에 대해 각계각층의 인사들의 의견을 모아 특집을 꾸민 적이 있었으나 모두가 다른 주장이었다. 그만큼 이 극(劇)은 모호하다. 그러면서도 관객을 사로잡는 魔力(마력)이 있다.
  70이 다된 白丁(백정)에게 아들이 셋이 있다. 長男(장남)은 美國大學(미국대학)의 철학교수요 次男(차남)은 娼女(창녀)를 소개 하는 뚜쟁이. 막내는 舊式(구식)건물을 파괴하는 것이 本職(본직)인데 권투선수가 되기를 희망한다. 오랜만에 長男(장남)이 미모의 妻(처)와 함께 英國(영국)에 사는 부친의 집으로 돌아온다.

  그런데 次男(차남)과 막내 그리고 나중에는 父親(부친)까지 長男(장남)의 妻(처)를 共同所有(공동소유)한다. 長男(장남)은 아무 말 없이 집을 떠난다. 그의 妻(처)는 낮에는 방을 얻어 娼女(창녀)가 되며 저녁이면 집에 돌아와 세 사내를 대한다.
  이 劇(극)을 맥 빠진 현대知性(지성)과 인간의 原始的(원시적)인 본능과의 대결로 보기도 하고 大地(대지)의 근원으로서의 女性(여성)의 위치를 말하고 있다고도 한다.
  이 劇(극)은 臺詞(대사)로서가 아니라 불투명하면서도 긴박감을 주는 연기자들의 침묵과 동작으로 뜻을 대신한다. 論理(논리)와 질서가 아니라 赤裸裸(적나라)한 人間(인간)의 숨소리가 우리를 압도한다.
  내가 더욱 잊을 수 없는 점은 이 작품을 볼 때 ‘王室(왕실)셰익스피어 劇團(극단)’ 멤버들의 완벽한 앙상블이 아직도 기억에 생생하기 때문이다.
  연출은 ‘피이타ㆍ홀’이 맡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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