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다 나은 大學(대학)生活(생활)을 위한 어프로우치(APPROACH)

  ―인간사회의 문화는 運動(운동)에서부터 시작됐는지도 모른다. 더구나 체육은 인간의 知的(지적) 精神的(정신적) 작용의 소산으로 하나의 文化(문화)로 대두되고 있다. 대학에 있어서도 체육활동을 통한 여러 가지 방향 설정이 모색되어야 할 것이다.
  ▲교수=현대는 ‘스트레스’의 시대라고 할 수 있지. 현실사회는 물론 대학에서도 심리적 갈등 등 욕구불만의 요소를 해소시키기 위해선 건전한 체육활동이 전개 장려돼야 함은 말할 나위도 없는 일이야.
  ▲학생=어떤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으로 신체활동 즉 체육활동이 영위되어야 하죠. 주위로부터 격리되는 걸 예방하여 전체 속의 자기를 인식할 계기가 되고 학습에 의한 지식 습득의 효과적인 방편을 마련해 주는 것이죠.
  ▲교수=무기력하고 불성실한 소위 침체된 자기 啓發(계발)은 물론 나아가서 전반적인 학풍 고취를 위해선 조건 없는 참여로 체육활동이 이뤄져야 해. 체력이 국력과 연결되듯 校勢(교세)는 전 학생의 단결력이 중요한데 그것은 전통 확보 의식이 되거든. 이는 오로지 ‘目的(목적)’이 아닌 ‘過程(과정)’으로서의 체육활동을 통해 형성되는 게 바람직한 일이 아닐까.
  ▲학생=체육활동을 통한 참여의식이 한데 뭉쳐서 愛校(애교)정신이나 나아가서 대학 본래의 건학이념의 부각이 이루어져야 해요. 굳이 그것에서 어떤 유형적인 가치를 추구하고자 하거나 지나친 개인의식의 발로로 점차 그런 志向(지향)은 어렵게만 되는 것 같아요.
  ▲교수=대학이 하나의 집단임을 의식하고 그 구조내부에선 진취적인 이미지를 항상 개발하는데 가장 적절한 것이 바로 체육활동이라고 생각돼.
  ▲학생=그렇죠. 그런데 얘기의 방향을 구체적으로 좁혀 보면, 현실적으로 각 학교는 對外(대외)PR에만 치중하여 각종 체육활동을 장려하거든요. 부수적으로 학생들의 사기앙양과 단합이 문제되는 것 같습니다. 이런 점은 개인의 공명심이나 체육활동이 ‘育(육)’이 아닌 ‘技(기)’만으로써 왜곡된 해석의 탓이 아니겠습니까.
  ▲교수=경기를 통한 勝(승)과 敗(패) 어느 쪽이든 다 같이 자기를 반성하고 나아가서 자체단결의 동기를 발견하게 되지. 이미 그런 결과 이전에 동일한 각오와 명예감으로 충분히 그 순간만으론 동일의욕이 왕성해지고 그래서 ‘우리’라는 보다 거시적인 안목이 따르게 되는 거야.
  ▲학생=그러한 이상적인 효과의 실현을 위해선 학교 당국의 행정적인 배려가 따라야겠어요. 단순한 학교명예의 선양에만 급급한 나머지 선수 개개인에 대한 대학적인 교육 방안이나 또 학생들에 체육활동에의 협조, 소위 응원행사도 단순한 행위 강요에 그치고 있어요.
  ▲교수=주먹구구식의 非科學的(비과학적)인 힘과 過慾(과욕)만으로 오로지 좋은 승부만 바라는 건 지양돼야 해. 선수 자신들도 자기가 착용한 유니폼에 새겨진 ‘마크’에 대한 최대의 열성으로 개인이 아닌 자기 뒤의 모든 기대와 응원의 전체라는 걸 알아야 해.
  ▲학생=그렇지만 지나치게 그러한 일종의 책임의식을 가지게끔 요구한다면 건전한 ‘스포츠맨 십’에도 차질이 있을 뿐만 아니라 오히려 자기 기술을 위축시킬 염려가 있지 않을까요. 오로지 정신자세가 얼마나 확고하냐가 문제겠죠.
  ▲교수=훌륭한 선수는 그 정신적인 투지가 평가되어야 하고, 그들을 성원하는 방향도 평소에 우러나오는 것이어야 해. 동원되고 소집된 응원이 제대로 될 리도 없으며 그 속에서 무슨 전체의식이며 단합의욕이 나오겠는가.
  ▲학생=체육활동이나 그것에 수반된 일체의 행사도 어디까지나 조직적이고 모두가 私心(사심)없는 열의로 참여해야 본 의도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거예요. 그리고 체육활동 궁극적으로 개인의 건강이나 정신위생의 환기작용이 主(주)가 되어야겠죠.
  ―대학의 침체된 환경에서 그 활력소가 될 수 있는 것은 ‘파이팅’과 그것에의 진정한 감동인지도 모른다. 이때까지 실제로 체육활동은 너무 무관심속에 지내온 것 같다. <文責記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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