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모’의 행렬에 함께 서게 되니 이제 오랫동안의 여행을 마친 듯한 기분이다. 허지만 사실상 現實的(현실적)으로 긴 여행의 자그마한 한 구간을 걸어온 ㅡ무전여행을 한 듯한ㅡ 그러한 얘기가 되리라.
  탄탄대로를 여유 있게 달릴 수 있었던, 고속버스를 타고 휴식을 취하며 하는 그런 類(류)가 아니고, 나는 내 스스로를 짊어지고 또 달래가며 C地(지)에서 K宿所(숙소)에서 4년이란 세월의 행각을 이룬 것이다.
  버스를 타고 마장동 비좁은 다리를 건너다보면 개천가를 따라 잇대어있는 판잣집, 천막집사이로 우중충한 寺刹(사찰)식 건물이 내 4년의 보금자리였던 草洞(초동) 寄宿舍(기숙사)의 진풍경이었다.
  무릇, 많은 세월을 거쳐 오면서 험한 시비곡절을 간직한 이곳은 東大(동대)의 역사와 함께 많은 東國人(동국인)의 머리에 남으리라.
  선후배간의(물론 졸업 동문도 포함하고) 따뜻한 교류, 반면 엄한 규칙과 힘찬 단결력은 이의 장점이요, 내 일생 중 길이 추억에 남을 수 있는 것이다.
  아침예불, 발우공양, 청소 또는 야릇한(?) 인접민간인과의 투쟁ㅡ 이 속에서 나는 일과를 키웠고 장래를 눈여겨보았으며 간혹 ‘나는 大學生(대학생)으로서 어떠한가’의 반문을 일삼았으며 이젠 그러한 생활을 갖은 것이 하나의 중요한 과정이 되었음을 새삼스럽게 느낀다. 69년 9월에 이르러 현재의 안암동 기숙사(기원학사)로 옮기고 선후배의 살핌 속에 舍生長(사생장)을 맡아보기도 했다. 지난 1년간 부족한데로 무사히 마칠 수 있었음을 뭇 주위인들께 인사드리며 바라는 바 더욱 훌륭한 寄宿舍(기숙사), 나아가서는 東大(동대)가 되었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지난날을 회고하며 나는 뭇 사람들과 어울린 생활과 태도 속에서 매우 客觀的(객관적)인 자기를 관망할 수 있었음을 생각해 본다. Delpoi신전의 ‘너 스스로를 알라’라는 名句(명구)가 큰 효과를 이룰 때가 곧 他人(타인)과의 對照(대조)속에서 용이하다는 평범한 말의 중요성을 재인식하며 이런 점에서 나는 기숙생활을 권장하고 싶다.
  물론 스스로의 비판과 결단성 있는 태도가 중요함은 말할 것도 없고 他人(타인)과의 비교대조는 자신을 항상 가늠해보는 과정에서 출발할 수 있는 것이기에, 만약 내가 다시 대학생활을 시도한다면 이런 점에서 더욱 조심할 것도 생각해 본다.
  이제 나는 사회인의 첫발을 내디디면서(이 말은 퍽 실감을 느끼게 한다) 이제까지의 여장을 다시금 매만지고 새로운 마음가짐을 굳게 다짐해야 하리라. 이는 즉 심히 공식적인 생활을 준수해야겠다는 저 나름의 서약이 될 수도 있겠다.
  샐러리맨에 부여되는 데스크 앞에서 더욱 충실키 위해 現實論(현실론)의 서적을 뒤적여도 보아야하고 이제까지의 자유스러운 放觀(방관)의 호기심의 즐거움(?)을 떠나 다소 차가움을 느낄 기대 비슷한 것이 말초신경을 신축시킨다.
  卒業式(졸업식)이 入生式(입생식)이 되고 나는 삼보의 언덕을 소외된 감정에서 걷지 않을 수 있기를 기대해 보며, 좀 더 삼보의 정신을 충실하게 이어받은 초연한 자세의 인간이 되도록 노력해야겠다.
  그러나 다른 한 면으로는 인간의 의지에 한계성을 부여하는 따위의 일은 당차게 거부하는 힘찬 발걸음을 내디뎌야겠다. 그것 또한 삼보의 언덕에서 줄기차게 체험해 온 ‘진리의 길’이기 때문이다.
  이제 마지막 여장을 꾸리면서 줄이어 여행을 뒤따라 올 사람들에게 부처님의 가호를 비는 마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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