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향집 뒤뜰엔 딸기 밭이 있었다. 어린 시절에 즐겨먹던 새콤한 딸기의 맛ㅡ.
  4년 전 내가 이 학교에 처음 입학하던 날 황건문 앞 30계단을 올라서며 고향집 뒤뜰의 딸기 맛을 생각했었다. 그 후 4년이 지난 오늘, 어린 시절에 먹던 딸기 맛이 유난히 그리워진다.
  그동안 무엇이 달라졌을까? 무엇을 했을까? 무엇을 얻었을까? 착잡한 마음은 자조이외에 아무런 생각도 떠오르지 않게 한다.
  졸업-.
  도무지 실감이 나지 않는다. “입학식이 엊그제 같은데”라는 어디서 들어 본 듯한 말의 의미를 이제야 깨달았나보다. 세월의 의미ㅡ.
  이것이 동국에서 얻은 최후의 것(?)이라면 지나친 말일까! 그러나 이 세월의 의미들은 지난 4년의 잊을 수 없는 일들을 기억케 한다.
  방송경연대회에 출품하기 위해 일주일 밤을 꼬박 새우던 일ㅡ. 5월의 방송실은 제법 추웠다. 커튼을 떼어 몸에 두르고 취재해온 녹음 테이프들을 편집하던 일, 그때마다 우린 아무리 바빠도 ‘치고이네르바이젠’을 듣곤 하였다. 밤 한시가 넘은 텅 빈 교정에서 가로등 희미한 서울거리를 바라보며 애절한 ‘바이올린’의 선율 속에 무엇인가의 막연한 갈망ㅡ. 그때의 그 갈망ㅡ 그 고생이 고귀한 한편의 추억이 되었으니.
  지난 4년은 방황의 연속이었다. 무엇인가 막연한 욕구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 밤거리를 쏘다니며 술을 퍼마시며 젊음의 낭만을 불태우던 일, 철학가나 된 것처럼 몇 개의 명언들을 암송하며 세상을 비웃기도 하고 ‘대학이란 멋을 배우는 곳이다’라는 어느 교수님의 말에 감동되었음일까.
  부산공연 때 자갈치 시장의 선술집에서 바다를 향한 창문을 내다보며, 친구와 얘기하던 일ㅡ. 어떻게 사는 것이 옳게 사는 것일까? 무엇 때문에 사는 것이냐? 좀 촌스럽지만 지극히 소박했던 그때의 얘기들, 그러나 이제는 인간은 본래가 이기적인 동물이고 돈 없이 잘 살 수 없다는 결론을 감히 내릴 수 있는 속물로 변한 것이다. ‘젊음은 투쟁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다’라는 그 한때의 결론은 나를 무척 어색한 만용꾼으로 만들었다. 공연한 일에 흥분하고, 아무것에나 감동하고 허술한 이론을 내세워 장내를 웃음바다로 만들었던 것이다. 그러나 그때의 방황들이 한 계단의 성장을 가져온 것이 아닐까.
  “인간의 지극한 행복은 해탈하는 것이고 그러기 위해서는 입산수도하는 길 밖에 없다”라는 감격적인 결론은 나를 ‘승려’라는 직업의 소유자로 만들기에 충분한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러나 이러한 결심들은 서울의 찬란한 불빛 속에 시들어 졌고 어떤 세계의 세뇌공작에 말려들어 갔다는 기분으로 돌아갔었다. 동국의 이름으로 주어진 몇 개의 賞(상)들은 나에게 또 다른 방화의 시련을 안겨 주었다. 내가 갈 길은 이 賞(상)이 이끌어 주는 제한된 길이란 말인가?
  정선아리랑을 취재하기 위해 정선행 야간열차에서 만난 어느 여인은 내게 이런 말을 들려주었다. “심각하게 생각하면 골치 밖에 아플 것이 없다” 그 말은 나에게 방황의 폭을 좁혀 주었다. “원시인처럼 단순하게 자연과 함께 살자”는 그래서 이 어설픈 지성인은 산을 찾곤 하였다.
  졸업이라는 필연적인 형식은 나에게 새로운 의지의 길을 열어 준다. 이제 모든 것을 정리할 시기다. 수많은 방황을, 그리고 산만한 마음을 정리하여 사회의 일원으로 진출하기 위한 마음의 무장으로 새로운 출발을 다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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