使命感(사명감)과 責任倫理(책임윤리) 강조

  민주주의를 정치제도로서 생각하면, 그것은 국가운영의 한 방식으로서 그 구성원이 직접으로, 또는 간접으로 그 대표를 통해서 운영하는 것이다. 이러한 제도의 理念(이념)의 밑바닥에는 모든 구성원을 1對(대)1의 인격자로 인정하는 인격존중의 관념이 흐르고 있다. 서로가 同輩的(동배적) 입장에서 공동생활의 질서를 유지하고 공동체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협조한다. 그런데 여기에는 ‘指導者(지도자)’가 있어야 한다. 따라서 민주적 지도자란 指導(지도)받는 者(자)와의 동일성을 前提(전제)로 해서 존재하기 때문에 ‘支配者(지배자)’는 아니다. 이러한 지도자는 자기의 행위에 대해 책임을 짐은 말할 것도 없다.
  그러면 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할 조건은 무엇인가? 이제까지 사상가나 또는 정치가 자신이 지도자로서 갖추어야 한다고 생각한 조건을 열거하자면 방대한 ‘리스트’를 작성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시도를 할 필요가 없다. 좀 더 문제의 핵심을 좁혀 들어가서 민주적 지도자란 어떠한 것을 최소한 갖추어야 하는가함을 생각해 보기로 하자.
  이 문제를 놓고 우리가 손쉽게 참고할 수 있는 것은 ‘막스 웨버’(Max Weber)의 ‘職業(직업)으로서의 政治(정치)’이다.

  ‘웨버’는 민주정치에 있어서 정치가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조건으로 중요한 세 가지를 역설했다. 첫째로, 정치가는 사명감 또는 자기 職業(직업)에 대한 정열이 있어야 한다고 그는 생각했다. 권력의 장악자가 자기직무에 보람을 느끼며 헌신하고자 하는 정열이 小英雄主義的(소영웅주의적)으로 기울어 권력욕에만 사로잡혀 있다면, 그러한 자의 지배를 받는 민중은 크나큰 피해를 당할 것이다. 권력이란 폭력 장치를 운전하는 자에게 바른 理想(이상)이 결여되고 있다면, 민중에게는 큰 불행이라고 할 수도 있다.
  둘째로, ‘웨버’는 정치가에게는 責任倫理(책임윤리)가 있어야 한다고 했다. 자기가 한 직무수행의 결과에 대해서 책임을 지지 않는다면, 그러한 정치의 효과보다 큰 災難(재난)은 없을 것이다. 특히 민주사회에 있어서는 정치가가 그 권력을 국민의 이름으로 행사하기 때문에 국민에 대하여 책임을 져야 한다. 여기서 정치가가 책임을 진다는 것은 최후로는 자기가 맡은 권력의 직위에서 물러난다는 것이다.
  셋째로, ‘웨버’는 정치가에게는 見識(견식)이랄까 또는 건전한 판단력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정치가 한 사람이 그릇된 판단을 내렸기 때문에 인류에게 크나큰 비극을 안겨준 實例(실례)는 얼마든지 들 수 있다. 정치가는 역사의 흐름과 시대의 상황을 파악하기 위하여 자기가 결단하여야 할 사항에 대해서 고문ㆍ전문가ㆍ측근참모ㆍ정책 수립진 기타 등의 조언ㆍ제의ㆍ설명ㆍ해설ㆍ분석 등을 잘 들어서 신속ㆍ정확ㆍ과감하게 적절한 판단을 하지 않으면 안 된다. 정치가 자신이 어느 특정 분야의 전문가가 되어야만 할 필요는 없지만, 전문적 지식과 전문가의 조언은 충분히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

  위에 든 ‘웨버’의 政治家論(정치가론)은 민주사회의 정치가像(상)을 바르게 부각시킨 것이라고 하겠다. 이를 뒷받침하는 것은 근래에 미국 국회에 설치되어, 미국대통령으로서 갖추어야 할 것은 무엇인가를 연구한 ‘대통령위원회’의 결론과 그것이 일치하는 점이다. 미국국회의 대통령위원회는 미국대통령으로서 갖추어야 할 요건으로서 ‘건전한 판단’을 들었다. 미국대통령이 됨직한 이상적 인물이란 건전한 판단력이 있는 사람으로서 용기가 있고 관찰력이 예민하며, 그때그때의 상황에 따라 시기를 적시에 선택하고 주위 인물의 조언이나 전문가의 지식을 적절히 활용할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한편 1963년 영국의 노동당이 집권을 앞두고 이론가들이 黨首選定基準(당수선정기준)으로 제시했던 것을 참고로 보면 다음과 같다. 즉, ①하원지도자로서 능력이 있을 것. 특히 의회 연설이나 의회 안에서의 협상ㆍ교섭ㆍ절충ㆍ조절에 능할 것.
  ②次期(차기) 총선거에 내세워서 민중에게 ‘어필’할 수 있는 인물일 것.
  ③당수는 물론 내각의 首相(수상)이 될 수 있는 인물일 것.
  ④黨(당)의 통일에 혼란을 초래하는 缺格(결격)사항이 없을 것.
  ⑤동료 사이의 인간관계가 원만한 사람일 것.
  ⑥성실성이 있고, 신뢰감을 줄 수 있는 인물일 것.
  ⑦정치적 견해가 건전ㆍ확고할 것 등을 들었다.

  그 밖에 일본의 국회의원이며 정치학자인 河上民雄(하상민웅)은 정치가로서 갖추어야할 조건으로서 ①직업에 대한 보람을 느낄 것. ②유능한 조언자를 확보하고 있을 것. ③민중과 함께 있는 인물일 것. ④시대의 요구를 극적(드라마틱)으로 표현하는 능력이 있을 것. ⑤권력에 대한 충동과 함께 권력의 중요성을 인식할 것 등을 들고 있다.
  어떠한 지도자를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결국은 민중이다. 그 사회의 지도자는 그 사회의 얼굴이라고도 할 수 있다. ‘나치스’의 ‘히틀러’가 집권한 것은 반드시 ‘나치스’의 책략 때문이라고만 할 수 없다. 또 1930년대 공황기에 ‘루즈벨트’가 미국의 대통령이 된 것은 미국민의 선택에 의한 것이다. 이렇게 생각해 볼 때에 지도자론은 민중론에 직결된다고도 할 수 있다. 특히 민주사회의 지도자론은 더욱이 민중의 정치 감각과 직결된다고 하겠다. 자기의 운명에 직결되는 결단이라는 것을 머리에 두고 지도자는 자기가 만든다는 의식이 있어야 할 것이다. 민중 앞에 나서는 ‘지도자’란 인물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데 그치는 것으로 끝나서는 아니 될 것이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민이 정당에 참여할 수 있는 기회가 더욱 개방되는 것이 제도면에서 배려되어야 할 것이 소망스럽다.
  오늘날은 영웅을 기대하는 시대는 아니다. 농경사회에서 개인의 이니시아티브가 크게 요청될 때에는 영웅이 기대된다. 그러나 산업사회에 있어서는 모든 조직이 합리적인 사무체계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영웅이 아니라, ‘리더’가 요청되고 ‘권위적인 심벌’보다 ‘지성적인 판단’이 요구된다. 우리는 지도자가 장중한 위엄을 갖추고 나타날 때를 기다리는 ‘指導者論(지도자론)’의 단계는 벗어나야 할 때이다. 한국 사회의 민주화는 ‘카리스마’적 지도자의 출현을 기대하는 것이 아닌, 민중의 길잡이를 내세우려는 ‘民衆的(민중적) 요청’의 구체화 작업의 일환이 될 때에 그 의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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