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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4.22 13: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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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랑비에 옷 젖는 줄 모르고 … 등록금 몽땅 날려대학가에 드리운 ‘검은 손’의 유혹
   
 
     
 

새벽 4시, 눈을 떴다.
곧 UEFA 챔피언스리그(유럽리그 상위 팀들 간 대항전) 경기가 있다. 오늘도 곧바로 컴퓨터 앞에 앉아 모니터를 켠다. 경기가 있기 전 내가 베팅한 경기들을 확인할 참이다.
이번에 선정된 경기는 총 8경기. 난 이번에 큰 맘먹고 집에서 보내주신 용돈 50만원과 아르바이트 수당 일부 20만원을 모두 털어 베팅했다.
내가 건 조합(돈을 베팅한 경기들의 묶음)은 총 3가지. 이 중 주력(적중 가능성 상관없이 원하는 경기들에만 베팅한 경우)과 비주력(적중 가능성이 가장 낮지만 배당률이 최고 높은 조합으로 선택한 경우)은 이미 실패했다.

이제 믿을 건 보험(배당률이 낮지만 적중 가능성이 매우 높은 베팅형태)뿐이다. 이미 하루 전날 보험 조합에 베팅한 야구 경기들의 승패를 맞춰, 오늘 경기만 맞추면 120만원이 내 손으로 들어온다.
걱정은 없다. 내가 승리 팀으로 선택한 레알 마드리드(스페인 축구팀, 현재 리그 선두)는 세계 최고의 팀 중 하나인데다 내가 좋아하는 크리스티아누 호날두(축구선수)는 최고의 컨디션이다.
함께 중계를 보는 이들도 생각은 마찬가지였다. ‘설마 레알이 지진 않겠죠? 건승(베팅에서 적중하는 경우를 뜻하는 용어)하세요’라며 중계사이트 채팅창에 모인 이들은 서로에게 인사를 건넸다.
스포츠 베팅을 시작한 이후 하루라도 경기를 편하게 본 적 없다.
대학교 1,2학년 시절 친구들과 함께 치맥(치킨과 맥주)을 마시며 즐겨보던 축구 경기를 이젠 가슴을 움켜쥐고 보게 됐다.

때문에 성격도 난폭해졌다. 응원하는 팀이 실점하는 순간 욕과 함께 주위에 있는 물건을 집어 던지기까지 한다. 때론 상대팀 공격수를 죽이고 싶다는 살인 충동도 생긴다.
말수도 부쩍 줄었다.
매일매일 경기 결과가 궁금해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는다. 경기가 있는 날이면 집에서 혼자서 보는 것이 편해졌다. 이젠 돈도 없다. 모두 베팅에 투자했다 잃은 탓이다.
밖을 나가도 돈이 없어 점심도 제대로 먹지 못한다. 그나마 적중에 성공해 배당금을 타는 날이라면 상황은 낫지만 대부분 사발면으로 끼니를 때우고 있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자 선후배들도 멀어져 갔다. 모임에 나가면 매번 돈 문제가 발생한다. 최근 들어 난 모임이 끝난 후 모두가 돈을 걷을 때 미안하다는 인사만 쏟아냈다. 친구가 대신 내준 돈만 해도 100만원이 넘을 듯 싶다.

 친구들과의 모임도 피하고 있다. 분명 일부는 날 폐인 취급하며 손가락질할지 모르는 일이다. 하지만 나로선 어쩔 수 없다. 지금까지 잃은 돈, 빚진 돈까지 모두 만회하려면 이 베팅 게임에서 이겨야 한다. 그리고 반드시 배당금을 받아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 놓지 않으면 안 된다.
경기가 시작됐다. 레알 마드리드의 승리에 내 모든 것이 걸려 있다. 식은 땀이 나고 몸서리가 친다. 중계방에서 함께 보고 있는 이들도 가슴 졸이긴 마찬가지.
시간이 지날수록 더욱 승부에 집착하기 시작했다.
분명 레알 마드리드가 이기고 있고 이대로만 끝난다면 120만원은 내 돈이 된다. 피를 말리는 승부가 이어지던 후반 45분, 경기 종료를 목전에 뒀다. 2분만 버티면 곧 난 이 게임의 진정한 승자가 될 수 있다.
하지만 그 때 예상치 못한 일이 발생했다. 모스크바 팀이 동점골을 터트린 것.
난 그 자리에 주저 앉았다. 온 몸에 기운이 없다. 또 돈을 모두 날렸다. 벌써 13연패(13번 베팅해 모두 적중시키지 못한 경우)다. 거짓말이었으면 좋겠다.
이제 앞으로 한 달을 어떻게 보낼 지 앞이 막막하다. 더 이상 베팅할 돈도, 끼니 해결할 돈도 없는 나.
모든 것을 잃은 상실감에 허탈한 마음 뿐이다. 그냥 이대로 잠들어 죽었으면 하는 바람뿐이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며 결국 난 그날 학교 수업을 모두 빠진 채 패배감을 잊기 위해 잠으로 하루를 채웠다.

김형민 기자  kkllhj110@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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