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의 길’ 제시하는 나침반은 도서관에있다

세상의 반은 진실이고 그 나머지는 거짓이다. 낮은 빛나고 밤은 어둠에 사로잡혀 있다. 우리는 선과 악이 뒤섞인 곳에서 살고 있어, 세상의 미로를 걷다 보면 언뜻 원치 않은 곳에 이르게 된다. 균형을 잃고 혼돈에 빠지거나 선과 악의 경계가 무너진 곳에서 지나간 시간을 원망하는 일도 생긴다.

인생은 우주에서 일어나는 단 한 번의 사건이며 돌이킬 수 없는 경험의 과정이지만, 누구나 간절히 원하는 삶의 모습이 있을 것이다. 서로 비슷한 것을 원할 것 같아도 깊이 들여다보면 모두가 바라는 것은 같지 않다. 하지만 원치 않는 삶의 모습은 비교적 비슷하다. 그중에 가장 피해야 할 최악은 무지한 자의 삶이다.
무지(無知)는 모든 고통의 원인이며, 죄악의 근본이고, 거짓의 원천이다. 가난한 자는 행복할 수 있어도 무지한 인간을 위한 행복이란 결코 없는 것이다. 우리는 무지로부터 벗어나기 위해 스승을 찾아 배우고 책을 읽으며 세상을 둘러본다.

현자(賢者)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무지에 대해 이야기했다. “너 자신의 무지함을 알아야 한다!” 우리는 자신의 무지에 대해 눈을 감고, 아집과 독선에 빠지며 스스로를 옳다고 믿는다. 세상 대부분 갈등은 이처럼 무지에 빠진 아집과 독선의 충돌로부터 비롯되었다.
소크라테스가 아테네의 젊은이에게 지혜의 향연을 베푼 대가는 사형이었다. 젊은이를 타락의 길로 이끌어 간다는 죄목이었으니, 누군가는 세상이 지혜를 갖는 것을 두려워했다. 대부분의 사악한 권력, 독선의 자본, 위선의 가르침들은 청년이 눈 뜨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지성의 무기를 가진 인간은 정복할 수 없기 때문이다.

소크라테스의 후예들이 세운 인류 지성의 전당이 있었다. 약 2,300여 년 전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에 도서관이 세워졌다. 약 70만 개의 파피루스 두루마리, 한 개 두루마리가 160권 분량이라 하니 가히 거대하였다. 당시 인간 지성이 이룬 모든 학문과 사색을 모아둔 곳이다. 고루한 서가만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예술품을 전시하며 강의하고 토론할 수 있는 공간이 두루 있었으니 대학의 원형은 그렇게 시작되었다.
찬란했던 알렉산드리아의 번영은 이곳을 오가는 모든 책을 사들였고 보존하고 출판하였다. 학자들은 책을 읽기 위해 알렉산드리아로 몰려들어 새로운 사색이 이루어지고 지식을 배우려는 젊은이들이 모여들었다. 그 덕에 알렉산드리아의 교역은 증대하고 문화는 번창하였으며 삶은 윤택한 곳이 되었다. 책과 지식 따위가 군대와 자본보다 더 위대한 일을 해낸 것이다.

포용과 융합의 문화를 이룬 도시 알렉산드리아에는 두 개의 명물이 있었으니 하나는 도서관이었고 또 하나는 파로스섬의 등대였다. 두 곳 모두 낮과 밤의 항로(航路)를 밝히고 가야할 지표를 일러주어 인간을 두려움과 무지로부터 구한 곳이다.
이 알렉산드리아의 도서관을 파괴한 것은 무력과 독선이었다. 카이사르의 방화에도 살아남았던 도서관은 콥트주교 테오도시우스의 칙령으로 문을 닫았다는 것이 정설이다. 약 700년 영광의 역사도 종교적 독선(Dogma)과 불관용의 폭력 앞에 무릎 꿇었다.

알렉산드리아가 쇠락한 후 채 100년이 되지 않아 인도 비하르에 세계에서 가장 컸던 대학이 세워졌다. 날란다 대학, 모두에게 자비를 베푼다는 뜻을 가진 곳이다. 날란다에는 모두 7개의 도서관이 있었다. 불교 교육을 위한 대학이었지만, 고대 인도의 천문학, 문학, 의학 등의 모든 문헌이 날란다의 도서관에 쌓였고 중동에서 극동에 이르기까지 명성있는 학자들이 모여들었다.
때문에 새로운 종교적 사조와 인간 정신에 대한 탐구가 가능했다. 번성하던 때는 10만 명 이상의 학생이 공부하던 곳이다.

5세기경 세워진 날란다 대학은 안타깝게도 약 700여 년 후에 파괴되고 만다. 역시 종교적 독단과 무력의 힘에 의해서다. 날란다 대학 일곱 개 도서관은 모두 일곱 날 밤낮을 불탔다고 전해진다. 불더미 속에서 목숨을 걸고 건진 장서의 일부만이 살아남아 파괴를 피해 히말라야 산속으로 옮겨졌다. 우리가 지금 보고 있는 티베트대장경의 대부분은 그렇게 살아남은 것이다.

1959년 중국공산군의 티베트 침공으로 망명길에 나선 달라이라마 일행은 그 힘겨운 피난의 여정에도 티베트대장경과 장서를 옮겨왔다. 피난길에 나선 난민들은 자신의 짐을 버리고 책짐을 나누어지고 히말라야를 넘었다. 1세대 난민에게 왜 그리하였냐고 물었던 적이 있었다. 대답은 단순했다. “옷과 돈은 없어도 살 수 있지만, 지혜가 없다면 인간의 삶을 살 수 없기 때문이다.” 지식과 지혜가 없는 인간이란 탐욕과 폭력과 무지의 공포 속에서 살아갈 뿐이다.

도서관은 대학의 시초이며 심장이다. 강의실에서 찾지 못할 해답을 풀어갈 수 있는 곳이다. 도서관에 늘 새로운 지식이 쌓이고 길을 찾는 젊은이들이 이어지는 한, 인간은 어떤 문제도 해결해갈 것이다. 불타버린 알렉산드리아 도서관 서가에 써있던 ‘영혼의 안식처’란 명문(銘文)처럼 욕망과 혼돈에 지친 영혼이 찾아야할 곳은 진한 커피향의 카페가 아니라 도서관이다. 서가(書架) 사이에 난 단순하고 올바른 길을 걷다보면 진실의 편에 서서 나머지 절반의 거짓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삶의 양지에서 길을 찾는 나침반이 도서관에 숨어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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