新刊書籍(신간서적) 먼저 읽는 게 重要(중요)

  책이 소중한 것임을 알고 책에 애착을 느끼고 욕심을 부리기 시작한 것은 大學(대학)에 입학한 후 부터였다. 나는 국민학교에서부터 중학(지금의 고등학교) 졸업 때까지는 책이 무엇인가를 잘 모르고 지냈다.
  日帝時代(일제시대)에 중학5년을 졸업했는데 나는 공부라고는 별로 하지 않았다. 공부를 안 하니 책이 내게 소중한 존재가 될 수 없고 때로는 귀찮은 짐(負擔(부담))이라고만 생각 되었다.
  특히 책을 큰 부담으로 생각하게 된 데는 내 나름대로 이유도 없지 않았다.
  나는 어쩌다가 비교적 어린 나이(중학2년)에 思想的(사상적) 洗禮(세례)를 받았다. 그 사상이란 곧 抗日(항일)이요 獨立(독립)이며 日帝(일제)가 不遠將來(불원장래)에 패망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때 당시 官立中學(관립중학)에 입학을 하고보니 교정에서부터 복도, 교실에까지 나붙은 표어가 있었다. ‘國語常用(국어상용)’의 포스터이다. 이때 國語(국어)는 곧 日本語(일본어)를 의미한다. 일본어를 常用(상용)안하면 처벌된다. 그리하여 한국인 학생 간에도 對話(대화)에 쓰이는 말은 우리말이 아니라 日語(일어)이고 日語(일어)시간이 많이 배정되어 있기 때문에 日語(일어)는 상당히 높은 수준의 것이고 古代史(고대사)까지 습득케 했다. 따라서 그때 당시 중학생의 日語(일어)실력은 대단한 편이고 ‘國語常用(국어상용)’이라고 채찍질에 日帝會話(일제회화)에도 관습적이고 日語(일어)가 많이 쓰여지게 되는 世態(세태)였다.

  그런데 나는 이미 思想的(사상적)인 세례를 받은지라 동료급우들의 日語(일어)사용이 잔뜩 불쾌해졌고 나는 한국인학생에게는 물론이요. 심지어 日人(일인)선생보고도 우리말로 對應(대응)했다. 日人(일인)학생도 그때 당시 단순한 급우가 아니라 교무처와 연락이 있는 요새말로 ‘에이전트’(agent)이다. 나의 ‘國語不常用(국어불상용)’곧 韓國語常用(한국어상용)이 敎務(교무)당국에 즉각 보고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이 때문에 교무실에 불려 들어가 여러 선생들에 의하여 집중구타를 당하는 것이 빈번했다.
  이렇게 되고 보니 日人(일인)에 대한 적개심이 더욱 치밀고 日語(일어)교과서가 눈에 거슬리게 되었다. 영어ㆍ수학ㆍ물리ㆍ화학ㆍ생물 등은 비록 日語(일어)로 쓰여져 있지만 일본을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덜한데 소위 國語(국어)교과서와 日本(일본)역사 修身(수신)교과서등은 참으로 괴로운 존재였다. 특히 日本(일본)역사는 물론 동양사에 있어서도 한국의 역사는 쑥 빠지고 역사시간에는 한국과 일본의 同祖同根論(동조동근론)이 되풀이 강의되었다.
  비록 年少(연소)하지마는 思想的(사상적)으로는 완전한 독립국 국민으로 자처하고 있는 나에게 일어로 쓰여진 철저한 同化政策(동화정책)-民族抹殺定策(민족말살정책)의 소산인 교과서가 아무리 책이라 할지라도 나에게 소중한 존재가 될 수는 없었다.

  待望(대망)의 해방은 내가 졸업한 그 다음해에 왔다. 이때부터 영어공부를 재차 지각하고 책을 사기 시작하여 大學二年(대학이년)때에는 경제관계학술서적만 약 6백여권을 수집했다. 결코 적은 분량은 아니다. 나는 아침마다 햇빛에 번쩍이는 금박사의 책들을 보면 더욱 자부심을 갖게 되고 부실한 외국어실력이지만 돌파하려고 애썼다. 겨우 책이 무엇인가를 알고 애착을 느끼게 된 것이다.
  그런데 졸업을 앞두고 6ㆍ25동란이 勃發(발발)되었다. 책을 서울에 고스란히 두고 시골에 피신하고 있다가 한참 만에 부산으로 갔다. 부산에 도착한 그 당일 광복동 국제시장의 露店(노점)책가게를 순방하고 나는 깜짝 놀라고 동시에 全身(전신)에 맥이 풀리고 말았다.
  내가 그처럼 극성스럽게 모아서 간직한 책들이 부산에 와있지 않은가? 책房(방)주인에게 이 책이 내 책이라고 해보았으나 이런 이야기가 통할리 만무했다. 주인은 정당한 책값을 주고 샀다는 것이다. 따라서 내 책은 눈앞에 있건만 그 책은 내 책이 아닌 것이었다.
  一部(일부)는 다시 사들였으나 가죽으로 裝飾(장식)된 高價(고가)의 ‘資本論(자본론)’같은 것은 놓치고 말았다. 이렇게 하여 소위 愛藏書(애장서)의 거의 대부분을 잃고 서가에는 當場(당장) 필요한 몇 권의 新刊書(신간서)만이 꽂히게 되었다.

  나는 이를 계기로 해서 發刊年度(발간년도)가 오래된 古稀本(고희본)을 비싼 값으로 사들일 것은 일체 그만 두기로 했다. 경제서적은 古典(고전)일지라도 염가의 신판이 얼마든지 나오는데 애써 古稀本(고희본)을 수집한다는 것은 낭비요, 경제학적으로도 ‘經濟的(경제적)’이 못되기 때문이다.
  특히 社會科學(사회과학) 가운데서 어느 분야보다도 발전의 템포가 빠르다고 볼 수 있는 경제학의 경우 新刊書(신간서)를 누가 먼저 보느냐가 문제이지 古稀本(고희본)의 多寡(다과)가 문제될 수는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나의 愛藏書(애장서)는 新刊書(신간서)이고 앞으로 나오게 될 무수한 新刊書(신간서)가 나의 愛藏書(애장서)가 될 것이다. 끝으로 한국의 特異(특이)한 現象(현상)을 지적함으로서 맺는 말을 대신 하겠다. 소득수준이나 인구비례로 우리나라에서 ‘브리타니카’가 제일 많이 팔렸다고 한다. 한국사람 같이 책을 안 읽는 주민도 드문데 唯獨(유독) 大英百科辭典(대영백과사전)의 판매실적이 세계 제1위를 마크했다는 사실은 참으로 놀라운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책을 산사람가운데 과연 몇 사람이나 그 사전을 읽을 수 있으며 활용할 수 있을까. 豪華(호화)주택에 ‘브리타니카’는 必須(필수)의 장식품이 될 지는 모르나 이런 무식한 藏書家(장서가)들이 이 나라의 指導層(지도층)을 형성하고 있다는 사실이 더 놀라운 일이고 韓國(한국)의 오늘의 현실과 未來(미래)는 바로 이러한 단면에서 寸度(촌도)될 수 있지 않을까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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