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밤에 처량하게 울어대는 귀뚜라미의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구름사이로 흘러내리는 달빛을 보고 있노라면 나도 모르는 사이에 명상에 잠기곤 한다.
  더욱이 고요한 주위에 심술궂은 바람이 서늘하게 불어 창문을 두들길 때면 나는 슬퍼진다.
  그 옛날 금토끼가 계수나무 아래서 떡방아를 찧던 그런 달은 아니련만 그래도 가을밤엔 그 어찌 신비스럽지 않겠는가?
  슬픔을 간직한 가을의 달은 지나간 아름다운 추억들을 하나하나 내 머리 위에 떠오르게 한다. 어린 시절 소꿉친구와 잠자리 잡던 일부터 어제에 이르기까지 가지런한 추억들…. 달빛에 흔들리는 갈대며 슬픈 미소를 짓는 들국화며 가로등, 이런 것들은 나의 서글픈 마음과 외로움을 더해줄 뿐이다. 사람과 사람의 입에서는 봄은 여자의 가슴을 더한층 부풀게 하는 계절이라 하고 가을은 남자가 외로워지는 계절이라 한다.

  ‘햄릿’을 향한 그리움에 ‘오필리아’가 방황하던 때가 환희에 찬 꽃피는 봄날이었다고 한다면 ‘오셀로’가 부하 ‘이야고’의 속임수에 빠져 사랑하는 아내 ‘데스데모나’를 죽이고 괴로워하며 잠 못 이루었던 때가 바로 귀뚜라미가 울어대는 가을밤이 아니었겠는가? 울며 소맷귀 부여잡는 낙랑공주의 섬섬옥수를 뿌리치고 입산한 마의태자 역시 이처럼 고요하고 처량한 가을밤의 달빛을 보고 있으면서 금강산 어느 모퉁이에서 그녀를 생각하였으리라. 옛날 우리선조들이 인생을 즐기다 한줌의 부토로 돌아가게 됨을 생각하며 정자위에서 풍류를 즐기고 술잔을 기울이며 아름다움과 신비로운 달빛에 마음을 비쳐보며 생의 멋과 보람을 찾으려한 것도 가을밤이었을 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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