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년만에 컴백’ 농구선수 김승현(체교01졸) 동문 인터뷰

▲ 김승현 선수

농구엔 턴-오버(Turn over)가 있다. 경기 중 A팀이 패스미스를 하거나 실책했을 때 B팀에게 공격권이 이전되는 것을 이르는 말. 한마디로 ‘분위기 반전’이다.
3년간의 공백을 깨고 이번 시즌 삼성 유니폼을 입은 김승현(체교01졸)의 행보도 그 자체로 농구팬들에겐 반전이었다. 이번 시즌 활약으로 다음 시즌에 대한 기대도 생겼다. “삼성에서의 생활에 매우 만족하고 있습니다”라는 그의 말 속엔 더욱 새로워진 가드 김승현을 볼 수 있으리라는 확신마저 느껴진다.
매일 구슬땀을 흘리며 농구 인생 속 또 다른 턴 오버를 준비하는 김승현을 만났다.

농구와의 첫 만남, 그리고 동국대
김승현이 처음부터 농구공을 잡았던 것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 축구선수로서 꿈을 키워가던 중 우연치 않은 계기로 농구에 입문했다. 하마터면 농구 코트 위 김승현을 보지 못했을지도. 초등학교 4학년 때 농구를 처음 접한 이후 중고등학교를 거치며 잠재성을 인정받기 시작했다. 늦게 배운 농구지만 그렇게 그는 농구 선수로 변화했다.
인천 송도고등학교에 진학 후 우리대학의 지명을 받았다. 그것도 갓 입학한 1학년 선수가 당시 감독이던 최성호 전 동국대 감독의 눈을 사로잡은 것이다. 그렇게 동국대와의 인연은 시작됐다.
지금도 최성호 전 감독과 연락을 주고 받는다는 김승현은 그 때를 ‘행운’으로 여기는 눈치다. 지금의 창의적인 플레이가 탄생된 것이 바로 대학 시절이었기 때문.
“중고등학교 때 저를 지도하셨던 모든 분들이 농구를 자유롭게 가르치는 스타일들이셨어요. 그래서 대학교에서도 자유롭게 플레이할 수 있게 최성호 감독님이 만들어주셨죠. 제가 만약에 연세대나 고려대를 갔다고 하면 억압 받으면서 농구를 했을 거 같아요. 저는 틀에 박힌 농구를 하는 스타일이 아니거든요.”

‘동대생’ 김승현, “저도 C.C 해봤어요”
2012학년도 새 학기가 되며 많은 신입생들이 우리대학을 찾았다. 이 가운데 신입생들 사이 가장 해보고 싶은 것 1위는 단연 소개팅과 C.C(캠퍼스 커플)다. 97학번으로 입학한 김승현 역시 예외는 아니었다. C.C 경험이 있었느냐는 물음에 웃음을 터트리며 대답했다. “1학년 때 잠깐 해봤던 거 같아요. 제가 사범대학이었는데 대학소속 학과끼리는 다들 친분이 있었어요. 저희 과와 다른 과랑 모여 이야기도 많이 하고 술도 많이 먹고 일일주점도 많이 했었죠. 그런 곳에서 만났던 걸로 기억해요.”
김승현은 지금도 운동부 선수들 사이에 지옥 훈련장소로 여기는 ‘헐떡 고개’를 기억한다. ‘헐떡 고개’는 학림관과 만해광장 사이에 있는 길이다. 당시에도 숙소인 금강관에서 생활하며 훈련하며 그 ‘헐떡 고개’를 자주 넘나들곤 했단다. 체육관 여건상 야간에서 새벽으로 이어지는 훈련도 많았지만 그래도 그에겐 행복했던 추억으로 남아 있다. “당시에는 체육관이 농구부 소유가 아니어서 원하는 운동시간대에 운동을 할 수 없었던 걸로 알고 있어요. 밤 10시 반에 운동해서 새벽 1시정도에 끝난 적도 있어요. 그래도 그때 정말 재미있었어요.”

2002년의 환희, 그리고 김승현표 패스
운동선수들에겐 누구에게나 전성기가 있기 마련이다. 그것이 타의로 정해지든 자의로 정해지든 말이다. 김승현 선수 역시 전성기가 있었다. 정말 왕년엔 어마어마했던 추억을 가지고 있다. 지난 2001/2002시즌 MVP와 신인왕을 동시 석권했다. 아직까지도 난공불락(難攻不落)의 기록으로 남아있다. 당시 활약을 바탕으로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로 출전해 금메달 획득에 크게 기여했다. MVP수상은 보너스였다.
“그때는 선수들이 굉장히 단합이 잘 됐어요. 요즘은 국제대회가 있으면 시간이 촉박하게 모여서 대표팀 훈련을 하는데 그때는 굉장히 시간적 여유가 많았어요. 그래서 일찍부터 모여서 다같이 훈련을 하고 전지훈련을 가곤 했죠. 모여 있는 시간이 많다보니까 단합이 잘 되고 기량이 출중한 선수들이 굉장히 많았어요. 농구를 재밌게 했던 거 같고요. 제게는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었죠.”
그 때와 지금 달라진 것이라면 그의 몸 상태와 나이일 것이다. 대신 김승현은 여전히 뛰어난 패스실력을 과시하고 있다. 혹자들은 그를 ‘천재 가드’라 부르기도 한다. 하지만 본인은 이러한 평가에 손사래부터 쳤다. 별다른 패스 연습은 하지 않았다는 그는 경기 때마다 타 선수와는 다른 패스를 하겠다는 생각으로 매 경기에 나선다고 밝혔다.

“동국대 농구부 감독? 당연히 좋죠!”
이번 시즌 코트에 복귀한 김승현의 최우선과제는 팀의 우승이다. 삼성에서 새로운 ‘턴 오버’를 맞은 그는 해피 엔딩을 꿈꾸고 있다. 올스타전을 전후로 살아난 본인의 플레이를 다음 시즌까지 이어가겠다는 각오다.
은퇴 후 지도자생활을 계획하고 있는 김승현에게 넌지시 물었다. 바로 동국대 농구부 지휘봉을 잡는 것에 대한 것이였다. 이에 김승현은 흔쾌히 오케이를 외쳤다.
학교에 대한 강한 애착을 항상 가지고 있다는 김승현에게 현 우리대학 농구부 선수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그러자 바로 강조한 것이 ‘동국인’이란 자부심이었다.
“틀에 박힌 농구를 하면 안 된다고 말해주고 싶고요. 꾸준히 자기계발을 하고 자기가 단점이라 생각하는 부분은 더 연습을 많이 해서 그것을 장점으로 만들 수 있는 그런 선수가 됐으면 해요. 더불어 동국인이라는 자부심을 느꼈으면 좋겠어요.”

김승현 VS. 동국인 속성문답

김승현 동문과의 만남 전 페이스북과 농구부 선수들에게 질문을 받았다. 많은 질문들이 쏟아졌지만 그 중 5개를 엄선해 김 동문에게 거침없이 던졌다.

Q. 중학생 때부터 팬이었어요. 동국대 시절 가장 기억남는 시합은요?
3학년때 연세대와의 시합이 기억에 남네요. 그 날 30점 넘게 득점했었어요.

Q. 김승현에게 마르커스 힉스, 라이언 페리맨이란?
힉스는 정말 대단한 선수였어요. 호흡도 잘 맞았죠. 페리맨은 조용히 자신이 맡은 일에 최선을 다했어요. 아마 그 두선수를 만나지 못했다면 01-02 시즌의 영광은 장담할 수 없었겠죠.

Q. 현재 동국대 농구 후배 중 기대되는 선수가 있나요?
학교에 갔을 때 전주고 출신 가드 안우진(체교2) 선수가 눈에 들어왔어요. 본인의 플레이 스타일을 잘 살리면 좋은 선수가 되리라 생각해요.

Q. 시즌이 끝나면 종종 놀러 오신다고 들었는데 이번에도 오실 의향은 있는지, 그리고 농구화도 기증 해주시면 더욱 좋은 성적 낼 수 있을 거 같아요.(농구부)
자주는 아니지만 농구부에 몇 번 갔어요. 현재 계신 서대성 감독님과도 친분이 있어요. 기회만 된다면 종종 가고 싶어요. 농구화는 몇 번 기증했는데, 정기적으로 기증 할 만큼 그렇게 부유하진 않은데.(웃음). 

Q. 대학과 프로에서 경기와 훈련에서의 차이를 알고 싶어요.(농구부)
대학리그는 단기간에 몇 경기를 소화하면 되지만 프로는 그게 아니거든요. 기술보다는 체력적으로 많이 차이가 나요. 프로생활을 대비해 대학시절부터 체력을 많이 길렀으면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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