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은 억압과 장벽을 없애는 방법

봄이다. 남산은 곧 겨울의 검은 그림자를 털고 신록으로 덮일 것이다. 잎은 푸르고 꽃은 화려한 계절이 왔다. 남산의 봄을 바라보는 일은 동악을 오르는 기쁨의 하나이다.
봄이 되었다고 푸른 날만 있는 것은 아니다. 한기(寒氣)는 방심한 마음을 공격하며 겨울의 꼬리는 오래도록 남아있다. 때로는 꽃비대신 눈보라 흩날리는 봄날도 있다. 허술한 차림에 봄추위는 더욱 시리다. 그래도 얼음 꽁꽁 어는 날로 되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알기에 추위는 더 이상 두렵지 않다. 봄은 길을 떠나고 새로운 여정을 시작하는 때다.

남산의 봄이 좋은 것은 주변으로 아름다운 길이 있기 때문이다. 상록원을 지나 오솔길을 따라 오르면 3월이 눈부신 개나리길이 있고, 철쭉과 진달래 불타는 언덕이 있다. 사월부터 쏟아지는 벚꽃과 오월의 아카시아까지 남산 길은 거닐만하다. 도심 복판, 대학의 교정에 이어진 길로는 세계 어느 곳보다 아름다운 동악이다.
남산은 여러 길을 품고 있다. 돌계단을 질러 팔각정까지 빠르게 관통하는 등산로는 급하다. 숲의 어둠에 덮인 그 길은 올라야할 정상에 사로잡혀 목적지를 향해 가파르다. 자칫 빠른 보폭에 숨이 차오른다. 목적지 밖에 없는 이정표는 돌아갈 길을 알려주지 않는다. 
요즘 산길엔 둘레길이 유행이다. 굽이굽이 한눈팔며 주변을 살필 수 있는 둘레길은 한층 여유롭다. 둘레길로는 남산이 으뜸이다. 남산은 여러 길을 품고 있어 오묘하다.
세상의 모든 길이 통하던 시대가 있었다. 신발끈을 동여매고 걸어 파미르를 넘을 수 있던 시절도 있었다. 지금은 오가는 길에 철조망이 쳐지고 총칼이 가로막는다. 우주로는 나갈 수 있어도 동족(同族)의 국경은 넘지 못한다.

땅위의 길뿐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 마음의 길도 닫히고 있다. 계층은 분화되고 계급은 서로 높은 담을 쌓아 더 이상 열심히 공부하여도 사회적 성공의 계단을 오르기 힘들다. 세상에 첫발을 내딛을 청년들에게 암담한 시절이 됐다. 꿈과 희망을 가지고 미래를 향해 나아가라는 치사(致辭)는 거짓이거나 사탕발림이다. 우울하지만 과거와 같은 출세의 길은 이미 끊어졌다. 코피 흘리며 법전을 외워도 영예의 길을 걷는 이는 겨우 버스 한 차도 채우지 못할 정도이다. 우리는 길을 걷지 못하고 섬에 갇혔다. 그렇다고 절망하거나 포기하라는 이야기는 아니다. 막다른 길, 꽁꽁 문을 닫아 놓고 자기 입맛에 맞는 이에게만 문을 열어주는 좁은 길을 향해 걷지 말자는 바람이다.

길은 서로 이어져 있을 때 힘이 있다. 세상 모든 길은 로마로 이어졌기에 영광과 번성의 역사가 가능했다. 길을 막는 사람들은 대개 어리석거나 사악하다.
며칠 전 구글(google.com) 에릭 슈미트 회장은 의미심장한 말을 했다. 바르셀로나 ‘월드 모바일 콩그레스(WMC 2012)’에서 남긴 말이다.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면 기술을 통해 세상을 바꿀 수 있습니다. 컴퓨터 네트워크 뿐 아니라 서로에게 자신의 이야기를 전하는 것만으로도 세상과의 연결이 가능합니다. 누가 세계의 어떤 커뮤니티에 속해있던 소통을 통해 물리적인 장벽을 없앨 수 있습니다.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엘리트들에게 억압과 장벽을 철폐하도록 보다 많은 것을 요구해야 합니다.” 그의 말은 디지털 시대의 길인 네트워크를 차단하고 장악하려는 세력에 저항할 것을 촉구하는 메시지이다.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만들어가고 있지만 과거의 악습을 되풀이하고 있다.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기보다 권력의 처분을 기다리며, 마땅히 져야할 책임을 회피한다. 서툴게나마 말하기보다 권위에 복종한다. 그 대가로 길은 막히고 담은 높아졌다. 태어날 때부터 현실의 계급은 정해지며, 대학을 졸업할 때쯤이면 무거운 부채를 짊어져야한다. 이런 분위기에 청춘의 봄은 춘몽(春夢)에 불과하다. 권력자에게 더 많은 권력을 주고 부자에게 더 큰 부를 벌어다주기 위해 개미처럼 일해야 하는 삶이 기다리고 있을 뿐이다. 때문에 봄날의 자각이 필요하고, 막힌 길을 열어야 하며, 높은 담을 부숴야한다. 세상의 길을 끊어지지 않게 이어야한다.
에릭 슈미트는 이대로 네트워크의 장벽을 용인하면 과거 빈부의 격차, 권력 계급의 차별이 고스란히 디지털 계급으로 고착된다는 것을 경고하고 있다. 스마트 폰을 가지고 디지털 장비를 사용한다고 똑똑해지는 것이 아니라 주변과 연결하고 조금이라도 자기 마음을 전하는 일에 몰두할 때 똑똑(Smart)해 진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올봄엔 권력의 전쟁인 선거도 있다. 유불리를 가늠하며 네트워크를 통제하고 사람들의 관심을 차단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구글 회장의 경고는 이 땅의 현실에도 고스란히 적용된다. 청년들은 보다 똑똑해져야하고 스마트한 봄을 만들어야한다.
막힌 길속에 잘 닦인 도로는 제자리만을 맴돌 뿐이다. 어디로 이어진 길인지 알 수 없는 두려움보다 자기 땅에 사로잡힌 저주가 더 고통스럽다. 살아간다는 것은 스스로 길을 찾는 일이다. 그것이 책을 통해서건 권력과 자본을 통해서건 한발한발 자신의 길을 걸어가야 한다. 봄날의 축복 속에서 길과 길을 잇고, 마음과 마음을 연결하며, 막힌 길을 뚫는 청춘을 기다린다. 그것이 살아있는 청년의 봄이다.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