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로 배운 삶, 늦깎이 고시생의 성공 밑천”

동절기 한반도는 한파로 말미암아 꽁꽁 얼어붙는다. 하지만 추위는 곧 사라지고 따뜻한 봄이 오기 마련이다. 어김없이 봄이 오듯 대한민국의 봄을 위해 묵묵히 일하는 기관이 있다. 공공기관의 물품구매나 시설공사 계약을 하는 고유의 ‘계약업무’ 이외에 기술력 있는 중소기업의 해외시장 진출에도 이바지하는 곳. 바로 조달청이다. 지난해 3월부터 조달청의 수장을 맡게 된 최규연 동문의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다들 그렇듯 어릴 적엔 대통령이 꿈이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평범하게 살고 싶다는 생각이 자리 잡았습니다”라고 운을 뗀 최 동문은 강원도 원주에서 나고 자랐다. 당시 대학을 나와도 취업이 힘들다는 주변의 말에 그는 인문계 진학을 포기하고 원주농업고등학교(現 영서고)로 진학했다.

청년 농부에서 행시합격생까지
“농사 하나는 정말 잘 했습니다.” 그에게는 특이한 이력이 있다. 대학진학을 포기하고 고등학교 졸업 후 부친을 도와 농사를 시작했다. “말이 쉽지 농사일이 육체적으로 엄청나게 힘듭니다. 그래도 자연 속에서 내가 뿌린 만큼 거두는 게 좋았어요.”
자연과 함께 5년. 농사일은 인생의 지혜와 여유로움을 알려주었다. 하지만 농사가 인생 퍼즐을 완성하기 위한 마지막 조각은 아니었다. 삶의 단조로움을 벗어나고 싶었던 최 동문은 그 길로 절차탁마(切磋琢磨), 다시 펜을 잡았다.
대입 준비를 하던 중 부친상을 당하는 아픔도 있었지만 그는 강했다. 1977년에  방송통신대학 행정학과에 입학, 1년 뒤 우리대학 행정학과로 편입했다.
“입학할 때부터 목표가 뚜렷했기에 행정고시 합격을 위해 거의 모든 시간을 투자했습니다.”
집 안의 가장으로 책임감이 막중했던 최 동문은 학교와 집에서 공부하는 것 외에 허튼 일은 하지 않았다. 평균적으로 하루 8시간 정도를 공부에 매진했다. 스스로 그 이상 시간의 공부는 힘들다고 판단하였고, 정한 시간만큼은 낭비하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냉정한 판단력과 끈질긴 실천력으로 20대의 청춘을 쏟아 부었다. 노력에 대한 열매가 맺히는 시간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4학년 재학 중 제24회 행정고시에 합격한 것이다.

“금융실명제, 나의 작품 중 하나”
총무처 수습사무관으로 공직 생활을 시작한 최규연 동문은 주로 재무와 관련된 부서에서 업무를 했으며 ‘금융실명제’를 한국에 도입시킨 장본인 중 한명이다. “건축가처럼 결과물이 눈에 보이게 드러나진 않지만 국민들이 ‘이 제도 참 좋다’라고 말 해줄 때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그 후 1996년부터 1998년까지 영국 유학을 떠났다. 더욱 선진화된 정책을 보고 느끼며 대한민국에 적용시켜 공직자로서의 책무를 다하기 위해서였다. 당시 영국 유학 생활을 하며 ‘영어’란 장벽이 높게 느껴졌다는 최 동문은 “행정고시에서는 영어 점수가 제일 잘 나왔는데 막상 써야 하는 상황이 오니 힘들었다”고 회상한다. 하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 끝에 버밍엄 대학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눈앞의 이익만 쫓는 삶, 실패의 첩경
최규연 동문은 현재 조달청의 리더로서 우수한 중소기업을 육성하여 국가경쟁력에 기여하고 해외조달시장 진출에 가교역할을 하는데 업무의 우선순위를 두고 있다.
취임하자마자 가장 먼저 안팎으로의 ‘소통’에 힘썼다. 안으로는 조달청 직원들이 각자 역량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도록 방향성을 제시해 주며 필요한 모든 지원을 아낌없이 해주었다. 또한 밖으로는 지방청과 중소기업을 방문해 현장과의 거리감을 줄이는데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내가 언제 이 자리를 떠날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는 것이죠.”
30년간 공직생활을 한 그에게도 많은 유혹이 있었을 것이다. 이에 최 동문은 “나도 사람인데 욕심이 없었겠느냐”며 “그렇지만 욕망이 큰 사람과 욕구가 강한 사람은 차이가 있는 것”이라고 정리했다.
즉 욕망이 앞서면 ‘눈앞의 이익’만을 쫓겠지만 무언가를 이루고자 하는 욕구가 큰 사람은 작은 유혹에도 흔들리지 말아야 함을 강조했다.
“흙탕물이 흐르는데 혼자 맑은 물이 될 수 없고 맑은 물이 흐르는데 혼자 흙탕물이 될 수 없습니다. 개개인의 의식이 결합하여 사회문화를 형성하게 되는 거 아니겠습니까.”
‘타인이 잘하기를 바라기보다 우선 스스로부터’라는 정신이 체질화된 최 동문이었다.

후배들이여, 많은 가능성을 열어라
지난해 우리대학은 5명의 행정고시 합격자를 배출하며 전국 대학 7위를 기록했다.  지금도 많은 학생들이 시험 합격을 위해 불철주야 공부하고 있다.
최 동문은 “지금과 과거의 시험 난이도와 경쟁률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하지만 한 가지 변하지 않는 사실은 스스로에게 부끄럽지 않게 공부해야 한다는 점”이라고 격려의 말을 전했다.
공부 방법 또한 간단명료했지만 핵심을 짚어주었다. “비법은 따로 없습니다. 공부 이외의 외부 요소를 멀리해 삶을 단순화시켜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해야 합니다. 학과 공부를 소홀히 하지 말고 국가시험과 조화를 이루도록 커리큘럼을 만들어야 합니다.”
20대 초반을 자연과 함께한 추억이 있는 최규연 동문은 우스갯소리로 시골을 떠나면서 인생이 괴로워진 면도 있다고. “지금이야 아침에 여유가 조금 생겨 신문 볼 시간이 있지만 사무관 시절에는 신문 보는 시간도 아까웠습니다. 요약본으로 20~30분 보는 게 다였습니다.”
그래서 동국인 후배들이 인생의 길을 남과 같이 정해놓고 사는것 같아 아쉽단다. “절체절명의 정신으로 살아가는 것도 좋지만 세상에는 수많은 사람이 있고 이들의 삶이 모두 똑같을 수는 없습니다. 많은 가능성을 열어놓고 생각한 대로 끝까지 온 힘을 다해야 하지 않을까요.”
앞으로 더욱 많은 동국인이 스스로의 ‘인생의 길’로 들어설 수 있기를  바라는 최 동문의 애정을 알 수 있었다.
자기에게 부끄럽지 않게 묵묵히 일하고 리더로서 주변 사람들과 소통에 힘쓰는 최규연 동문. 그가 있기에 대한민국의 경제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조달 사업의 미래는 밝아보였다.

 

최규연 동문 프로필  

Δ1956년 출생 Δ1981년 동국대학교 행정학과 졸업 Δ1981년 제24회 행정고시 합격 Δ1998년 영국 버밍엄대 경제학 석사 Δ2007년 재정경제부 홍보관리관 겸 대변인 Δ2008년 기획재정부 회계결산심의관 Δ2009년 기획재정부 국고국장 Δ2010년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 상임위원 Δ2011년 조달청장(現)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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