學術誌(학술지)도 20여년 蒐集(수집)해

  나의 愛藏書(애장서)라는 이 글을 쓰기 위하여 평소에 아끼는 書架(서가)에 들어있는 책들을 훑어보았을 때 우선 책에 담긴 내용이 어떻다는 생각보다 한권 한권의 책들에 얽매져 있는 사연들이 나의 과거에 일일이 연결되어 있는 것이어서 나의 아끼는 책들에 관련되었던 일들이 차례차례로 走馬燈(주마등)처럼 머리에 떠올라서 마치 장편의 영화를 보는 듯한 느낌이다.
  이제는 벌써 표지도 낡고 누렇게 변색한 많은 책들 사이사이에 최근에 구입한 완독하지 못한 새 책들이 눈에 띈다. 그동안 수집한다는 생각 없이 어느 사이에 모은 오래된 책들 중에는 눈부시게 발전하는 20세기의 과학시대라 이미 내용이 낡은 것으로 변하여 역사물처럼 되기도 한 것들이 있으나 어느 부분에 어떤 내용이 기술되어 있다는 것까지 머리에 남아있고 정이 들어서 이러한 책들이 어떤 다른 호화판의 책들보다도 나에게는 크게 돋보인다. ‘宮路憲二(궁로헌이)’著(저)의 應用黴菌學(응용미균학)은 내가 아끼는 이러한 종류의 책 중의 하나다.
  이미 고령으로 은퇴하신 宮路博士(궁로박사)는 나의 恩師(은사)이시고 대학시절에는 이 두꺼운 책을 가지고 한 페이지 한 페이지를 읽고 또 읽고 해서 이제는 표지도 다 뜯어져가고 내용이 과거의 낡은 것으로 된 부분도 많으나 나의 微生物學(미생물학)은 이 책에서 시작되었고 또 현재에도 가끔 들여다 볼 정도로 내용이나 편집이 잘 되어 있어서 名著(명저)임을 새삼스럽게 느끼고 아껴오는 책이다.

  일본에서 유학할 때 빈곤한 우리 한국의 서적 형편을 생각해서 한정된 학비를 가지고 무리하면서 사들인 책들인 책들이 나의 장서의 주요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
  일본 동경의 간다(神田(신전))의 古書店街(고서점가)에는 새 책이 정가보다 싸게 팔리고 있는 경우가 많아 이런 책들을 구입하느라고 헤메던 일들이 생각난다.
  나의 서가를 장식하는 책들은 주로 발효에 관계되는 전문서적으로 전공분야에 있어서의 명저는 대개 가지고 있다. ‘베르게이’의 ‘Determinative Bacteriology’ ‘로―더’의 ‘The yeasts’, ‘쿠―크’의 ‘The Chemistry and Biology of Yeasts’, ‘라마나’의 ‘Bacteriology’등은 나의 연구생활에 번번이 활용되는 책들이다. 이러한 자연과학계의 단행본의 珍稀本(진희본)이란 거의 볼 수 없다. 그러나 보고 싶은 책을 원하는 때 곧 볼 수 없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고 보면 나에게는 이러한 책들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모른다.
  나에게 또 다른 아끼는 책이 있는데 이것은 약20년 동안 모으고 있는 學術雜誌(학술잡지)이다. 내 전공분야에 있어서 일본의 대표적인 학회지인 발효공학회지 일본농예화학회지 식품공학회지 발표협회지 ‘Agrcultural and Biological Chemistry’등이며 매달 발간되는 이들 학술 잡지는 우리나라에 있어서는 6ㆍ25사변으로 인하여 빠지지 않고 계속 구비하고 있는 곳은 드문 것 같다.
  어떤 연구를 하든지 이들 학술 잡지는 나의 가장 좋은 연구 자료가 되고 있으며 현재도 계속 매월 우송되어 오고 있어 선진국의 연구를 내다보는 창구의 역할을 하고 있다.

  나의 책들 중 英書(영서)의 단행본에는 사진판의 책인 소위 말하는 海賊版(해적판)이 끼어있다. 이러한 책들은 인쇄나 제본이 원본에 비하여 못한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나라에서도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일본에서도 이런 서적은 호주머니 사정이 허용치 않아 원본을 살 수 없는 사람에게 인기가 있다. 나도 예외 없이 이러한 서적을 많이 이용하였고 또 10년 전 중국 체류시 臺灣(대만)에서도 이러한 해적판 서적이 범람하고 외국에도 逆輸出(역수출)해서 단단히 재미를 보고 있던 때였고 臺北市(대북시)에는 이런 종류의 책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큰 책점이 있어 구미를 당기는 책들을 마구 사가지고 왔기 때문에 나의 서가에는 일본 중국 등의 국제적 해적판이 나란히 꼽혀 있기도 하다. 출판의 동기야 어떻든 한정된 돈으로 외국에서 공부하는 나의 입장에서 보면 고마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러한 책과는 달리 서가의 일각을 당당히 차지하고 있는 책이 있으니 이것이 ‘Encyclopagedia Britanica’이다. 서점의 권유로 있었으나 약 20만원에 가까운 책값이라 단념하고 도서관에서나 보기로 작정하고 있었는데 뜻밖에 부산에 계시는 어머니께서 사서 보내시지 않았는가?
  어머니께서도 학창시절부터 들어오던 대영백과사전이라 선뜻 사서 선물로 주신 것이다. 나는 이 책을 받고 여러 가지 감회가 깊었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이 책을 손에 들 때마다 어머님의 깊은 마음에 저절로 머리가 숙여지는 것을 느끼지 않을 수 없다.
  딱딱한 과학 서적이 대부분인 나의 책 중에서도 몇 권의 명곡해설서가 나의 젊은 과거의 낭만적이고 무한한 꿈을 안고 있을 때의 나의 청춘을 회상케 한다.
  “독서를 폐한다. 이것은 즉 자살이다”란 國木田獨步(국목전독보)의 말을 되새길 것도 없이 책을 떠난 우리들의 생활이란 있을 수 없다. 보다 향상되고 정신적으로 충족된 생활을 해나가기 위해서도 책을 읽어야겠고 보고 싶은 책이 나의 애장서로서 갖추기 힘들다면 도서관에서라도 구비되어 있었으면 하는 마음을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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