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6회 동대문학상 소설 장원

두루마리 휴지처럼 인생이 툭, 끊어질 수 있다면……. 힘겹게 배를 부여잡고 토끼 똥을 싸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거창한 죽음을 원하는 게 아니다. 죽음에 대한 어떤 환상을 가진 것은 더더욱 아니다. 단지 죽음을 깔끔하게 맞이할 수만 있다면. 딱딱한 똥을 몇 번이나 차가운 물속으로 발사했지만 개운하지가 않았다. 변기를 꽉 막은 허벅지가 새삼스레 답답하게 느껴졌다. 굵은 잔털이 듬성듬성 난 두 허벅지 위로 휴지 한 뭉치가 힘없이 착륙했다. 오른손에 둘둘 감긴 휴지는 내가 내뱉은 한숨에도 아무런 반응을 보이질 않았다. 변기 물을 내리고 양손으로 팬티와 바지를 추켜올리면서 나는 혹시 내 몸 어딘가에 존재할지 모를 점선을 찾았다. 희미하게나마 점선을 찾는다면 그 즉시 잡아 뜯을 요량이었다.

지난 몇 주간 밥을 제대로 먹은 적이 없는데도 복통이 끊이질 않았다. 아내와 아들을 찾아야만 했다. 휴가가 줄어들고 있었다. 밥을 먹느라 한 곳에 앉아있어야 할 일 분 일 초가 아쉬웠다. 석회가 떠있는 물을 마시고 말이 통하지 않는 타지의 거리 곳곳에서 아내의 얼굴과 아들의 목소리를 찾았다. 고개를 돌리면 어디선가 아내가 내게 달려와 안길 것만 같았다. 정신없이 거리를 걸으면서도 끊임없이 아내의 체온이 느껴지는 것만 같아 나는 반팔 셔츠의 단추를 하나씩 풀었다. 더 이상 풀 단추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난 아직도 마닐라의 번화가를 헤매고 있었다. 단추를 다 풀어버린 탓에 셔츠가 벌어져 땀에 전 러닝셔츠가 흉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내 꼴을 본 시장 곳곳의 상인들이 제각기 소리를 높여 뭐라고 외쳐댔다.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손으로 연방 부채질을 하며 아들의 목소리를 기억하려 애썼다. 작년 여름, 아내와의 마지막 통화가 떠올랐다. 아들이 변성기를 맞이했다는 이야기만 들었지 직접 통화를 할 수는 없었다. 아들은 친구의 생일파티에 갔다고 했다. 그 후로 이미 일 년이 지났다. 변성기 전의 아들의 목소리가 어땠는지조차 기억이 나질 않았다. 떠나기 전에 나와 무슨 이야기를 했던가. 아들의 마지막 말이 뭐였지. 아들의 마지막 목소리는? 아니, 우리가 이야기를 길게 나눠본 적이 있긴 했던가. 거기까지 생각이 다다르자 나는 발걸음을 멈춰야만 했다. 열흘의 휴가가 이토록 허무하게 끝났다는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지만 난 공항으로 향했다.

 

서울에 도착하자마자 아내의 친구들 연락처를 뒤적였다. 아내에겐 부모님도 형제도 없었으므로 나는 염치불구하고 얼굴조차 희미한 그네들에게 전화를 할 수 밖에 없었다. 아들이 벌써 중학생인데도 불구하고 몇몇의 사람에게는 아주 오래전에 아이 돌잔치에 찾아와 줘서 고마웠다는 인사로 말문을 열었다. 모든 번호에는 이을 말을 찾으려고 애쓰는, 당황한 혹은 어이없어하는 목소리들로 가득했다. 결혼 후 집들이를 앞두고 함께 정리해놓은 전화번호부인 탓이었다. 벌써 십여 년 전의 일이었다. 설사 전화번호가 바뀌었어도 그 위에 함부로 엑스 자를 그을 수가 없었다. 아내의 가지런한 글씨가 아깝지 않느냐고 그냥 그렇게 자위하며 'ㅇ'에서 'ㅈ'으로 넘겼다.

전화번호부에 있는 아내와 관련한 전화번호들에 한 통씩 전화를 걸었다. 하지만 어디에서도 아내의 소식을 들을 수 없었다. 오히려 그들에게 한동안 유용할 안줏거리를 제공해준 것만 같아 마음 한구석이 쓰렸다. 아내와 아들이 필리핀으로 떠나기 직전까지 이름을 들었던, 아내의 가장 절친한 친구만이 먼저 내 건강을 염려했다. 기러기 아빠일수록 몸을 더 잘 챙겨야 하는 거 아시죠? 아무 일도 없는 것처럼 그냥 전화를 끊었다. 문득 헛헛한 느낌이 들었다.

전화번호부를 찬찬히 두어 장 넘기며 더 전화해볼 곳이 없는지 찾다가 이내 덮었다. 이미 밤이 늦었으니 내일 찾아보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다. 어쩌면 전화를 해볼 곳이 한 군데도 더 나오지 않는다면 나는 오늘 밤을 어떻게 보내야 할지 몰라 그랬는지도 모른다. 뜨거워진 휴대폰을 옆에다 내려놓았다. 혹시라도 전화번호부를 다시 찾아봐야 한다는 사실을 잊을까봐 거실의 신발수납장위에 전화번호부를 올려 두려고 자리에서 일어섰다. 소파에는 초조했던 내 엉덩이가 낙인처럼 찍혀있었다. 신발수납장 위에 전화번호부를 올려두고 아까 집에 들어올 때 꺼내온 우편물들을 집어 들었다. 그때였다. 한 장의 점선이 신발장으로 소리를 내며 미끄러졌다.

우리에겐 스스로의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습니다.

‘자살자격증’을 따고 싶다고요? 걱정하지 마세요.

저렴한 가격으로 당신의 권리를 찾아 드립니다.

검은 명함 위에는 하얀색 글자들이 반듯하게 타이핑되어 있었다. 밥알을 씹는 것처럼 한 글자 한 글자를 소리 내어 곱씹었다. 아내의 글자들도 이런 맛일까. 명함을 살짝 뒤집었다. 역시 검은 배경에 하얀색으로 숫자들이 타이핑되어 있었다. 이름조차 쓰이지 않은 불친절한 명함에서는 꽤나 고소한 맛이 났다. 밥알을 오래 씹은 것 마냥 혀끝이 달았고, 뜨뜻한 숭늉을 마신 것처럼 뱃속으로 온기가 퍼졌다. 전화번호부 위에 우편물들을 올려놓고 망설임 없이 뒤돌아서 침대로 엎어졌다. 그냥 그대로 씻지 않고 옷조차 갈아입지 않은 채 명함을 쥐고 잠들었다. 어쩌면 점선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었는지도 몰랐다.

 

 

다음날, 휴가가 끝나자마자 회사에 사직서를 냈다. 정확히 말하면 그냥 평소처럼 출근을 한 후에 사직서를 조용히 놓고 나왔다. 드라마에서는 회사를 관둘 때 다들 한 상자씩 짐을 들고 나오던데 내겐 짐도 없었다. 어차피 이직을 할 예정도 아니었으므로 사무용품도 굳이 챙겨서 나올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그냥 두면 필요한 누군가가 가져다 쓰거나 혹은 알아서 정리될 터였다. 가방에서 업무와 관련된 서류들을 꺼내어 책상에 가지런히 놓았다. 그리고 서류들 위로 사직서를 반듯하게 올려놓았다. 책상 한 귀퉁이를 차지하고 있던 가족사진을 들었다. 지난 열흘간 닦아주지 못한 액자에는 먼지가 뽀얗게 앉아있었다. 엄지손가락으로 아내와 아들의 얼굴에 묻은 먼지를 닦아냈다. 새삼스레 아내와 아들의 얼굴이 낯설었다. 텅 빈 서류가방에 가족사진 하나를 넣었을 뿐인데 여느 출근 때보다도 발걸음이 무거웠다.

지하철을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머릿속은 혼란스러웠다. 어느 것 하나 계획대로 되어가는 것이 없었다. 내가 왜 사직서를 냈는지, 도대체 언제 사직서를 써놨던 것인지조차 기억나지 않았다. 지금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 걸까. 이 와중에도 아내와 아들만 생각하면 머리가 온통 새하얗게 변했다. 어디서부터 잘못되었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 아내가 이 사실을 안다면 난 뭐라고 말해야 할까. 내가 과연 옳은 결정을 내린 걸까. 아내가 결정을 내려줘야 하는데. 그렇게 하염없이 생각만 하다가 내릴 역을 지나쳤다. 역을 두 개나 지나친 탓에 다시금 생각할 시간을 벌 수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리면 그 순간 나는 또 혼자가 될 것이었다. 혼자 집에 앉아서 어떤 결정을 내릴 수 있단 말인가. 더 이상은 전화할 곳도 없었고 무작정 다시 필리핀으로 떠날 수도 없었다. 그렇다면 아내와 아들은? 그러는 사이에 반대방향 지하철을 탔고 내려야 할 곳에서 내렸다. 금세 홀로 되었다.

한낮의 역사(驛舍)는 한산했다. 지하철이 다음 역으로 떠나자 휑한 역사에는 내 구두소리가 유난히 크게 울렸다. 구두소리 사이로 아내의 얼굴이 그다음엔 아들의 얼굴이 그리고 명함이 불규칙하게 끼어들었다. 기왕이면 아내의 웃는 얼굴을 보고 싶었다. 하지만 아내의 얼굴은 대개 옆모습만 떠올랐다. 어딘가를 바라보고 있는 옆모습. 그나마 아내의 얼굴은 어느 정도 떠오르기라도 했으니 나은 편이었다. 아들의 얼굴은 흐릿했다. 아까 회사에서 사진을 챙기며 분명히 아들 얼굴을 한번 쓰다듬기까지 했는데도 안개가 낀 것처럼 뿌옇게만 보였다. 아들은 나를 닮아 쌍꺼풀이 없었다. 아니, 아내를 닮아 쌍꺼풀이 있었던가. 코는 어땠지. 입술모양은? 집에 가는 길 내내 가장 명확하게 떠오른 건 점선, 아니 그 명함이었다.

 

평범한 삶을 꿈꿨기에 여태껏 나는 각종 자격증 시험에 응시해왔다. 운전면허는 기본이었다. 대한민국 국민이라면, 대한민국 남자라면 당연히 지갑에 운전면허증이 있어야 한다고 생각했던 때가 있었으니까. 아내와 아들이 한국을 떠난 이후, 기름 값을 아끼기 위해 차를 타지 않았다. 그러다보니 유지비가 엄청난 낭비처럼 느껴졌고 홀로 남겨진지 일 년 남짓한 무렵에 아내의 충고를 듣고 바로 차를 팔았다. 운전면허는 그렇게 유효기간만 하루씩 증발하고 있었다. 이뿐 아니다. 대학생 때는 취직을 하기 위해 끊임없이 자격증을 따려고 애썼다. 그저 이력서에 한 줄이라도 더 채워 넣기 위해서 그 뜻조차 가늠할 수 없는 용어들을 외웠고 또 외웠다. 그러나 난 오늘부로 더 이상 직장인이 아니다. 갑자기 내 삼십팔년이 소리 없이 증발하여 사라져버릴 것 같았다.

내 지난 삶들이 이대로 하나씩 부정당하고 증발하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았다. 집 문을 닫기 무섭게 신발도 벗지 않은 채 양복 상의주머니에서 명함을 꺼냈다. 어제저녁부터 벌써 몇 번이나 손에 쥐어보았기 때문에 명함은 내 지문들로 가득했다. 우스꽝스럽게도 지문들은 살려달라고 외치는 것만 같았다. 지문들의 목소리를 뒤로하고 휴대폰을 집었다. 멈추지 않고 명함에 적힌 숫자를 하나씩 눌렀다. 마치 이 순간만을 기다려 온 것처럼. 하지만 통화 버튼을 누르지는 못했다. 나는 평범한 소시민이고 싶었다. 언제까지나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보통의 사람들처럼 대학을 나와서 회사에 취직하고, 쥐꼬리만한 월급이나마 꼬박꼬박 받으면서 가정을 꾸리고 그렇게 평범하게 살고 싶었다. 그러다가 나이가 들어 평범하게 죽고 싶었다. 그래서 나는 지금껏 자살자격증을 따고 싶다고 생각한 적이 없었다. 그냥 순리대로 살다가 죽고 싶었다.

물론 자살자격증이라는 기괴한 이름에 한 번도 호기심이 발동한 적이 없다면 그것은 거짓일거다. 스스로의 목숨을 끊는데 필요한 자격증이라니. 그러나 그게 언제부터 존재해왔는지, 그게 어떻게 하나의 자격으로 분류되었는지는 내게 중요하지가 않았다. 그건 운전면허나 컴퓨터운용사처럼 그저 하나의 자격에 불과했기 때문이다. 그냥 서점의 자격증 코너에 있는 책을 뒤져볼 때의 가벼운 기분으로 통화버튼을 누르기로 했다. 자격증을 딴다고 무조건 그걸 써먹어야 한다는 법은 없다는 걸 몸소 터득했으므로. 그건 결국 어떠한 자격을 취득하거나 혹은 부여받는데 지나지 않는다는 걸 매우 잘 알고 있으므로. 실행은 의무가 아니라 선택이었다.

휴대폰 너머로 잔잔한 피아노 소리가 들려왔다. 적어도 첫 단추는 나쁘지 않았다. 자살에 대해 문의하려는데 일반적인 통화음이 들려왔다면 조금은 섭섭했을지도 몰랐다. 자살로 가는 첫 시도. 이름은 모를지라도 이런 클래식이야말로 제격이었다. 왼쪽 중지와 검지로 피아노 소리에 박자를 맞추고 있는데 한 여자가 전화를 받았다. 조금은 나른한 목소리였다.

- 자살자격증 취득을 돕고 있는 김이에요.

그 여자가 내뱉은 첫마디가 조금은 나를 진정시켰다. 여보세요, 혹은 네, 라는 말로 전화를 받았다면 난 아마 우물쭈물 거리다가 전화를 끊고 말았을 것이었다. 다행히도 나는 바로 본론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 상담을 받고 싶은데요.

상담 예약을 하는 데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김은 차근차근 이것저것을 일러주었다. 메모지가 필요했다. 습관처럼 양복 윗주머니에서 펜을 꺼내 들고 주변을 더듬거렸다. 자살자격증은 분명한 합법이에요. 선생님도 신문에서 아마 보신 적 있으실 거예요. 자세한 이야기는 상담 때 다시 하겠지만 선생님께서 이렇게 전화를 하신 것은 분명 이유가 있다는 뜻이죠. 저와 만나기 전에 그 이유를 한번 정리해 보세요. 그래야 상담 시간을 절약할 수 있답니다. 상담비용을 삼십 분 단위로 지불하셔야 하거든요. 김의 말에 대답하면서 어제 신발수납장 위에 올려두었던 전화번호부에 의미 없는 말들을 휘갈겼다. 이걸 여기에 놔두길 잘했다고 생각하며 약속장소를 받아 적었다. 아내의 글씨 위로 내 글씨가 겹쳐졌다.

 

저녁 무렵, 광화문의 한 카페에서 김을 만났다. 카페 안으로 들어오던 김은 분명 처음 보는 사람이었지만 낯이 익었다. 급히 뛰어왔는지 김의 이마에는 땀이 맺혀 있었다. 김은 목 덜미를 식히려는지 긴 머리를 양손으로 틀어 올리며 다가왔다. 전화를 걸었을 때처럼 무슨 말부터 꺼내야 할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자리에서 일어나야 할까 망설이고 있었다. 김은 그런 모습이 당연하다는 듯이 살짝 웃으며 내 쪽으로 다가왔다. 나는 그렇게 엉덩이만 살짝 들고 엉거주춤한 모습으로 김을 만났다. 김과 나는 커피를 주문했다. 종업원이 커피를 만들러 주방으로 향하자 김은 통화할 때처럼 먼저 말문을 열었다. 선생님은 정말 자살하고 싶으세요? 대답하기 어려운 질문이었다. 나는 정말 내가 죽고 싶은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난 그저 아내를 찾고 싶었고, 아들을 다시 만나고 싶었다. 그러나 벌써 일 년째 연락이 끊겨 있었다. 난 어디에서도 소식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필리핀으로 떠났던 것이다. 전화번호와 그곳 집 주소 그리고 아들이 다니는 학교 이름을 알았기 때문에 난 그들을 쉽게 찾을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내가 고개만 주억거리자 김은 서두르지 않았다. 아직 마음을 단단히 잡숫지 못했군요. 김의 말투는 뭔가 나를 나무라는 느낌이 들었다. 내가 계속 아내와 아들의 생각에 사로잡혀 있는 동안 김은 가방에서 주섬주섬 무엇인가를 꺼내 테이블 위에 펼쳐놓았다. 그 와중에 시간당 상담 비용을 지불해야한다는 김의 말이 떠올랐고 나는 아내와 아들을 잠시 억지로 잊기로 했다. 바쁘게 움직이는 김의 손을 쳐다보고 있으려니 내 시선을 느꼈는지 김이 다시 말을 건넸다. 제게 전화하실 때 어떤 기분이셨어요? 나는 멍하니 김을 바라봤다. 김은 얼굴 쪽으로 내려온 머리칼을 귀 뒤로 살짝 넘기더니 말을 이었다. 순간 김은 아내 같았다.

- 제게 전화를 거시는 분들 중 대다수가 상담을 요청하곤 해요. 그러면 전 모두를 만나죠. 그러나 대개는 선생님처럼 제 질문에 대답을 찾지 못해요. 그냥 제게 어떤 이야기를 하고 싶어서 나오시는 분들도 계시고, 착잡하고 막막한 마음에 일단 제게 연락을 하긴 하지만 자살에 대해 깊게 생각해보지 않으신 분들도 계시죠. 물론 제 도움으로 자살자격증을 취득하시고 그 이후에 합법적인 자살을 맞이하신 분들도 계세요. 전 선생님이 지금이라도 생각해보셨으면 좋겠어요. 지금 이 순간 정말로 선생님이 제게 전화하신 이유에 대해서요. 어차피 결정은 선생님 스스로가 내려야만 하니까요.

김은 여전히 나른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했다. 김이 말을 끝마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 종업원이 다가와 커피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종업원은 아무 말 없이 다시 주방으로 사라졌다. 이곳은 김의 상담 전용 카페인 모양이었다. 김은 미리 테이블 위에 올려두었던 서류들을 보여주었다. 자살자격증에 관한 신문기사 스크랩북과 자살자격증 원서, 그리고 자살자격 수험 서적이 빼곡히 적혀 있는 팸플릿들이 한눈에 들어왔다. 꽤 두꺼워 보이는 스크랩북을 집어 내 쪽으로 끌어당겼다. 지금 이 시각에도 누군가는 자살을 기도하고 있을 거예요, 하고 김은 자살에 대해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사실 자살이야말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가장 큰 권리라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느냐고 김은 내게 질문했다. 스크랩북에는 자살자격증에 관한 신문 기사들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고, 나는 헤드라인들을 천천히 훑으며 김의 말을 들었다.

- 자살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기 위해서 통과된 이 법안으로 인해 자살하는 사람들이 반이나 줄었다는 사실을 알고 계세요? 자격증 없이 함부로 자살을 시도하면 벌금을 물죠. 잘 알고 계시듯이 벌금은 최소 천만 원이에요. 만약 자살이 성공할 경우 벌금은 가족에게 부과되고, 자살이 실패할 경우 본인에게 부과되죠. 벌금을 내지 않는 자살을 하기 위해선 자살자격증을 취득할 수밖에 없어요. 그런데 이걸 따는 과정은 꽤나 복잡하고, 어려워요. 체계적으로 도와주는 기관이 존재하지 않으니까 전 이 자격증을 따려는 사람들을 도와주기로 했어요. 우리에겐 죽음을 선택할 권리가 있으니까요.

김의 말은 물 흐르듯 자연스러웠다. 김의 정수리에서부터 머리카락 끝까지 미끄럼을 타고 내려오는 기분이었다. 커피를 마시며 김의 말을 듣고 있자니 자살을 선택하지 않는 것이 오히려 바보같이 여겨졌다. 내 권리를 왜 나는 선택할 수 없는가. 내 권리라면 마땅히 내가 누려야 하지 않는가. 이런저런 생각들에 휩싸여 혼란스러웠다. 김의 바로 앞에 있는 자살자격증 원서로 손을 뻗으려는 찰나, 김은 시험 절차에 관해 이야기를 꺼냈다.

- 원서를 내고 접수가 되면 그때부터 여섯 달 동안 여러 시험들을 보게 돼요. 그 시험 중엔 심리검사도 있고 면접도 있죠. 그리고 가장 중요한 건 누군가가 선생님을 계속 지켜보게 될 거라는 점이에요. 선생님이 정말로 자살을 원하는지 판단해야하기 때문이에요. 생각보다 좀 복잡하죠?

상담이라기보다 김의 일방적인 대화였다. 김은 내가 가지고 있는 것과는 다른 명함을 한 장 건넸다. 명함을 받은 채로 김이 자료들을 가방에 넣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숙여 명함을 살폈다.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글자들은 모두 반듯반듯했다. 하지만 지난번보다 어떤 면에서는 좀 더 친절한 명함이었다.

김. 우리은행. 135-423561-….

명함의 글자들을 읽고 있는데 김이 일어섰다. 악수를 청해야 하나 싶어서 따라 일어섰는데 김은 살짝 미소 짓고는 돌아섰다. 김이 돌아선 자리에서 익숙한 샴푸 향이 풍겨왔다. 이로써 한 시간만큼의 상담비와 커피 두 잔 값을 내야 했다. 김은 마음을 정하지 못한 날 위해 친절하게도 자살자격증에 관련한 전단지를 한 장 두고 갔다. 전단지를 읽으며 카페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는 아내와 아들 생각이 끼어들지 않았다. 어디서 갓 지은 밥 냄새가 풍겨오는 것도 같았다.

 

집으로 돌아왔을 때 집은 역시나 텅 비어 있었다. 어디에서도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집. 침대 위로 걸려 있는 가족사진 말고는 어디에도 아내와 아들의 흔적은 없었다. 지난 오 년간 철저하게 뒷바라지를 했었다. 집을 두 번이나 옮겼고 차도 팔았다. 아내가 원하는 대로 모든 것들을 해주려고 노력했다. 아들의 더 나은 미래를 위해서라면 몇 년 동안 혼자 사는 것쯤은 문제도 아니었다. 아니, 그럴 거라고 착각했다. 그런데 난 아내와 아들을 만날 수 없었다. 조금씩 천천히 모든 것들을 잊어가고 있었다. 아내의 얼굴도 아들의 목소리도 더 이상 생각나지 않았다. 침대 위의 가족사진과 회사에서 챙겨온 가족사진. 단 두 개의 단서만이 남아있었다. 그런데도 우습게 나는 아내와 아들의 얼굴을 자주 잊었다.

김을 만났던 한 시간이 꿈처럼 느껴졌다. 회사에 사직서를 두고 온 일도 사실이 아닌 것만 같았다. 아내와 아들을 찾으러 필리핀으로 떠났던 일도, 애초에 아내와 아들과 연락이 끊겼다는 사실도 모두가 거짓 같았다.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현실이고 어느 것을 믿지 말아야 하는가. 무엇을 선택해야 하는가. 아내가 필요했다. 사소하게는 매일의 반찬과 나의 일정, 그리고 우리의 결혼식에서부터 집들이, 아들의 유학까지 모든 것들을 결정하던 아내가 절실히 필요했다. 내 권리를 찾고 싶어서 김을 만났는데, 아내와 아들을 잃은 내 자신을 잡을 수가 없어서 김을 만났는데. 아내가 없었다. 결정을 내릴 자신이 없었다.

나는 전화를 걸어 내가 무얼 하고 있는지 확신이 들지 않는다고 김에게 사실대로 털어놓았다. 김을 마주하고 있을 때보다 훨씬 마음이 편안했다. 가끔씩 접속사가 빠지고 단어들이 뒤엉키기는 했지만 비교적 내 마음을 솔직하게 털어놓을 수 있었다. 김은 잠자코 내 말을 듣기만 했다. 두서없는 이야기를 끝내고 나서 마른침을 연거푸 삼켰다. 김이 대답해주길 기다렸다. 그러나 김은 말이 없었다. 나는 김의 태도가 무엇을 뜻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저 대답을 원했다. 그래도 나한테 다시 연락을 해온 것을 보니 선생님은 결국 자살을 원하는 것이라고, 혹은 그렇게 확신이 서지 않는다면 그냥 지금이라도 없던 일로 하시라고. 김의 입에서 나올 말이 전자이든 후자이든 내겐 중요치 않았다. 그저 대답이, 결정이 필요했다.

한참 동안이나 뜸을 들인 후에 김은 입을 열었다. 선생님 같은 분들을 위해 시험이 복잡한 거랍니다. 확신이 없는 사람들을 위해 여러 가지 절차가 필요한 거죠. 원서를 일단 한번 써보시겠어요? 김의 목소리는 여전히 나른했다. 나마저 잠에 빠져들 것 같았다. 잠에 취해 그러겠다고 대답을 했다. 노곤한 와중에 이름과 주민등록번호, 주소와 연락처를 불러준 것도 같았다. 잠투정을 부리는 아이처럼 발음이 올바르지 못했는데 김은 되묻는 일도 없었다. 계속해서 질문을 한 후에 김은 작게 웃었다. 원서는 상담비 입금 확인 후에 제가 접수할게요, 라는 김의 말을 신호로 나는 잠들었다.

 

 

평소처럼 여섯 시에 눈을 떴지만 나는 다시 잠을 청했다. 머리가 지끈거렸다. 어차피 사직서를 놔두고 나왔으니 오늘부턴 회사에 갈 필요가 없었다. 사직서로 시작된 생각은 명함으로 그리고 김과의 상담으로 이어졌으며 마지막엔 아내와 아들의 행방불명으로 귀결했다. 아내와 아들에게서 왜 연락이 없는지, 분명 송금한 돈을 지난달 말에 돈을 찾아갔다는데 왜 연락이 오지 않았는지 이유를 알 수 없었다. 무슨 일이라도 당했는지 그렇다면 내게 먼저 연락이 왔어야 하지 않는지, 결국 잠에서 깼다. 잠깐이라고 생각했지만 눈을 떠보니 벌써 여덟 시였다. 평소 같았으면 지하철을 타고 회사로 향하고 있을 시간이었다. 나는 순식간에 방향을 잃었다. 규칙적으로 생활해오던 리듬이 깨졌다. 내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어제 하루 종일 커피 한잔을 제외하고는 아무것도 먹지 않았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필리핀에 갔을 때도 제대로 된 식사를 하지 못했고, 아내와 아들을 찾으러 가야겠다는 계획을 세웠던 지난 한 달간은 밥 구경도 못해봤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껏 챙겨 먹은 음식은 서울과 마닐라 거리에 가득했던 패스트푸드점의 햄버거 세트였고 그나마도 손에 꼽을 정도였다. 그땐 밥 먹는 시간이 아까웠지만 이젠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었다. 남아도는 게 시간이었고 곧 자격시험을 앞두고 있으니 몸보신이라도 해야 할 터였다.

입고 자버린 탓에 구겨진 양복을 침대 위에 벗어두고 샤워를 했다. 머리에서부터 찬물을 끼얹었다. 쉬지 않고 몇 번이나 끼얹었지만 정신은 몽롱했다. 머리카락 끝에서 물이 뚝뚝 떨어졌다. 대충 온몸에 비누칠을 하고 샤워기를 틀었다. 샤워기를 이리저리 돌려가며 비눗기를 씻어내다가 새삼스레 욕실에 있는 모든 것이 홀수임을 알았다. 하다못해 칫솔마저 하나인 외로운 화장실이었다. 나는 더 이상 외로워지지 않기 위해 얼른 머리를 감았다. 아직 결정은 내리지 못했지만 어서 김에게 돈을 부쳐야겠다고 생각했다. 적어도 지금보다는 덜 외로울 수 있을 것 같았다.

집에는 요깃거리가 얼마 없었다. 냉장고에 있는 반찬이라곤 쉬어 꼬부라진 깍두기가 전부였다. 몸보신을 하기 위해서는 우선 장부터 봐야 했다. 쌀을 씻어 얹혀놓고 편한 셔츠와 추리닝 바지를 찾았다. 아내가 떠난 후 쇼핑을 하지 않아서 계절감을 잃은 옷들만이 옷장에 가득했다. 대충 옷을 찾아 걸치고 아까 벗어놓은 양복 상의를 뒤졌다. 어제 받은 명함을 찾아야 했다. 결정을 내려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대답을 할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명함 두 장을 왼손에 쥐고 오른손에는 지갑을 들었다. 아직도 머리카락에서는 간간이 물이 떨어지고 있었지만 개의치 않고 집을 나섰다.

집 바로 앞 편의점에 다녀올 계획이었기 때문에 열쇠를 챙기지 않았다. 얼른 뛰어가서 참치와 치즈, 그리고 포장용 김치를 한 팩만 사올 셈이었다. 아니 그전에 편의점 구석에 있는 기계로 김에게 돈을 먼저 부칠 생각이었다. 하나씩 해야 할 일들을 지워나가고 싶었다. 슬리퍼를 끌며 계단을 내려와 녹이 슨 대문을 열었다. 그리고 편의점으로 향했다. 차가 다니지 않는 이차선 도로를 무단횡단했다. 근래에는 슬리퍼를 신은 일이 없었기에 발 안쪽이 괜히 아파왔다. 하지만 멈추지 않았다. 얼른 김에게 돈을 부쳐야 했고, 밥을 먹어야 했다. 아침을 먹고 나서 김의 연락이 오면 다시금 나만의 리듬을 되찾을 수 있을 것이었다.

편의점 문을 열자마자 오른쪽 구석에 있는 기계 쪽으로 향했다. 왼손에 쥐고 온 명함을 버튼 옆에 올려두고 지갑 속에서 돈을 꺼냈다. 누군가의 목소리를 한 시간 동안 들은 값으로 이 정도 가격이면 저렴한 편이라고 생각했다. 그렇지만 나는 몇 번이고 돈을 세었다. 김의 계좌에 돈을 넣었다. 곧 김의 문자가 올 테고 이것으로 외로움은 조금이나마 잠잠해질 수 있을 것이었다. 명세표를 뽑은 후 명함을 다시 왼손에 쥐었다. 점선을 찾은 것 마냥 힘이 솟았다. 서둘러 제일 작은 참치 캔을 집었고 열 장짜리 치즈 한 봉을 그리고 포장 김치를 집었다. 김의 연락이 오기 전에 볶음밥을 만들어 두고 싶었다. 권리를 행사한 기념으로 스스로에게 밥상을 선물할 예정이었다. 어쩌면 두 번 다시는 없을지 몰랐다.

볶음밥 재료들이 담긴 비닐봉지를 흔들며 다시 무단횡단을 했다. 슬리퍼가 자꾸만 발바닥을 때렸다. 그래도 전혀 짜증나지 않았다. 아직 오지 않은 김의 문자가 기다려졌다. 난 이제부터 뭘 하면 되는 걸까. 아마도 김이 차근차근 설명해 줄 것이다. 대문은 내가 아까 열어놓은 대로 활짝 열려 있었다. 마라톤의 결승점을 지나는 사람처럼 뿌듯한 마음으로 대문을 통과해 계단을 뛰어올랐다. 뛰어온 탓에 숨이 찼다. 아까 분명 문을 닫고 나왔다고 생각했는데 현관문이 살짝 열려 있었다. 밥 짓는 소리가 들려왔다. 아무런 의심 없이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누군가의 뒷모습이 보였다. 검은 모자 구멍 사이로 머리칼이 늘어져 있었다. 검정색 목티가 몸의 굴곡을 드러내 주고 있었다. 아무리 봐도 여자였다. 나는 현관문 손잡이를 잡은 그대로 얼어버렸기 때문에 아무런 소리도 내지 못했다. 그러나 여자는 나를 눈치 챈 듯 보였다. 여자는 모자를 더 푹 눌러쓰고는 재빨리 싱크대 쪽으로 향했다. 뭔가 미끄러지는 소리가 났고 뒤이어 날카로운 소리도 났다. 여자가 내 쪽으로 돌아왔을 때 여자의 오른손에는 과도가 들려 있었다. 여자의 얼굴을 볼 겨를도 없었다. 소리를 질러야겠다는 생각도 들지 않았다. 손잡이를 놓으려다가 비닐봉지를 놓쳤다. 참치 캔이 경쾌하게 계단 아래로 굴러 떨어지는 소리가 들려왔다. 뒤이어 밥솥이 울기 시작했다.

여자가 들고 있는 과도는 날 향하고 있었다. 여자는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과도를 잡고 나와 대치하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문을 열고 들어가 무릎을 꿇고 빌어야 하는지 혹은 이대로 계단을 뛰어 내려가 도움을 요청해야 하는지 여자에게 묻고 싶었다. 차라리 나에게 손들어, 따위의 말을 해주었으면 했다. 여자가 명령하기만 한다면 나는 그걸 바로 따를 참이었다. 그러나 여자는 그 자리에 꼿꼿이 서서 그냥 과도만 들고 있었다. 그런데도 겁이 났다.

- 살려주세요.

나도 모르게 살려달라는 말이 튀어나왔다. 아니, 그 말은 미처 목구멍을 벗어나지 못했다. 여자는 천천히 내 쪽으로 다가왔다. 위기상황이 온다면 아내와 아들의 얼굴이 제일 먼저 생각나리라고 여겼으나 뜻밖에도 어제 한 번 만난 김의 얼굴이 생각났다. 그리고 그 다음으론 유난히 나른하던 김의 목소리. 김은 내가 입금한 돈을 확인했을까. 내 원서는 무사히 접수되었을까. 김의 문자는 언제쯤 올까. 내 외로움은 언제 끝이 날까. 다리에 힘이 풀려가고 있었다.

- 살, 살려주세요. 돈은,

- 문 닫아.

여자의 목소리는 유난히 나른했다. 여자의 뒤로 검은 점선들이 보였다. 문이 닫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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