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대별로 구분해본 우리대학 교사(校舍) 성장사(成長史)

우리학교는 1906년 명진학교로 출범하여, 1946년 지금의 필동 3가 26번지 일대에 서울캠퍼스를 열었다. 우리대학의 오래된 숙원사업인 운동장 및 수영장 23,499㎡(7,108평)를 지난해 12월 28일 매입을 발표했다. 우리대학 캠퍼스가 기존 142,703㎡(4만 3천여 평)에서 166,202㎡(5만 여평)으로 확대되는 것이다. 앞으로 우리대학은 운동장 개발 및 혜화문 개발사업을 통해 남산속의 에코캠퍼스, 지역사회와 함께하는 열린 캠퍼스, 국제적 학문과 문화교류의 중심지로 거듭날 예정이다.


필동캠퍼스 조성계획 세워

현재 우리대학이 위치한 서울시 중구 필동의 토지는 일제시대에 조계종 서본사 별원 조계사가 소유하고 있던 땅이었다. 우리대학의 전신 혜화전문학교는 종합대학으로 승격시키기 위해 필동캠퍼스 조성계획을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필동캠퍼스 조성당시 대지 면적이 2만 3,987평으로, 넓은 대지 위에 7동의 목조 기와지붕 건물이 자리잡고 있었다. 1949년 5월 14일 대학본부(현 명진관) 건물의 정지공사에 착수함으로써 우리대학은 교사증축에 대한 강한 의욕을 보였다. 하지만 예산배정과 확보에 어려움을 겪게 되어 건축공사는 이내 중단되고 만다.

전후 서울귀환

1950년 5월 학교는 다시 필동캠퍼스 조성을 적극적으로 추진한다. 그러던 중 1950년 6ㆍ25 한국전쟁이 발발하며 인민군이 서울을 장악했고, 각 대학건물도 인민군에 의해 접수되었다.
전후 서울캠퍼스는 거의 황폐화되어 있었다.
종로구 명륜동의 교사는 미 헌병대에 징발된 상태였고, 필동 교사와 2만 3,987평의 넓은 터는 인적이 끊긴 채 잡초만 우거져 있었다.

명진관 건립

서울로 귀환 한 후 정국이 안정되자 우리대학은 본격적으로 필동캠퍼스 개발계획을 본격화 한다.
종합대학교의 위상에 걸맞은 본관 건물을 건설하기로 결정하고, 1954년 4월 1일에 국내 굴지의 설계 전문가인 송민구를 초빙해 건축사무소장에 임명하였다.
1954년 9월 8일 석조 3층 으로 이루어진 본관(현 명진관)의 설계도가 완성됐다.
본관 건물은 지상 3층 35실, 연건평 1,462평으로 당시로서는 메머드급 건물이었다. 1954년 11월 기초공사를 시작으로 2년 여간의 공사기간을 거쳐 1956년 12월 완공된다.

제2차 신축계획 마련

본관(현 명진관) 건축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을 무렵, 대학과 재단은 제2차 신축계획을 마련했다.
2차 신축공사의 주요내용은 신축중인 본관(현 명진관) 앞에 대학본부(현 대학본관)를 신축하고, 본관(현 명진관) 뒤에 과학관을 신축하는 것이었다.
1958년 5월 1일에는 중앙도서관(현 법학관) 및 대학원 건물 건축공사도 시작됐다.
제2차 신축계획 시행 이후 중앙도서관 및 대학원 건물의 신축으로 우리대학은 연건평 1만 평을 넘어서는 대규모 대학으로 성장하게 된다.
한편 대학본부(현 대학본관) 건축공사는 1958년 10월 말에 완료되었는데 12월에는 대학본부 내에 1,5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중강당이 완공되었다.

제2차 신축계획 마련

본관(현 명진관) 건축공사가 한창 진행되고 있을 무렵, 대학과 재단은 제2차 신축계획을 마련했다.
2차 신축공사의 주요내용은 신축중인 본관(현 명진관) 앞에 대학본부(현 대학본관)를 신축하고, 본관(현 명진관) 뒤에 과학관을 신축하는 것이었다.
1958년 5월 1일에는 중앙도서관(현 법학관) 및 대학원 건물 건축공사도 시작됐다.
제2차 신축계획 시행 이후 중앙도서관 및 대학원 건물의 신축으로 우리대학은 연건평 1만 평을 넘어서는 대규모 대학으로 성장하게 된다.
한편 대학본부(현 대학본관) 건축공사는 1958년 10월 말에 완료되었는데 12월에는 대학본부 내에 1,500여 명을 수용할 수 있는 중강당이 완공되었다.

중앙공무원교육원 매입

중앙도서관(현 법학관) 아래에 위치한 중앙공무원교육원(현 혜화관)은 공무원 교육을 위해 건립된 연건평 3,221평의 대형 건물이었다.
1969년 8월 정부 측에서 이 건물을 매각하려 한다는 소식을 접한 대학측은 이 건물을 반드시 매입해야 한다는 방침을 정하고, 매각을 주관하고 있던 총무처와 절충을 벌였다. 수차례의 협의 끝에 대학법인은 1970년 6월 정부 측과 임대차계약을 체결함으로써 건물 및 용지에 대한 불하의 우선권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였다.
우리대학은 건물의 완전 매입을 추진하였으나 9억 원에 달하는 막대한 자금을 조달하는 것이 문제였다. 대학법인은 조계종 총무원 측에 도움을 요청해 결국 총무원은 현재의 삼성동에 위치한 봉은사의 토지 10만 평(현 한국종합무역센터 부지)을 매각하여 매입자금을 조달한다.

재향군인회관 매입ㆍ학술문화관 완공
1988년 4월 20일 우리대학은 현재 학술문화관 자리에 있던 재향군인회관 건물을 매입한다.
재향군인회관 건물 매입 이후 보수작업을 거쳐 미술학과가 사용해 왔으나 동국학술문화관의 건립계획 확정이후 건립기금을 마련하고, 건학 90년이 되는 해인 1996년 2월 완공돼 3월 4일 준공식을 가졌다.

필동테니스장 매입/산학협력관ㆍ기숙사 건립

2004년 12월 우리대학은 중앙도서관 아래에 위치한 4,381평 규모의 필동테니스장을 매입하였다. 테니스장 매입은 부족한 교지를 마련하기 위해 1960년대부터 꾸준히 추진해오던 사업이었다.
테니스장 매입으로 우리학교는 매입한 중앙대 부속병원 건물과 함께 전체 교지의 16%에 해당하는 약 6,000여 평(건평 포함 약 1만여 평)의 교지를 추가로 확보하게 되었다.
2008년 12월 테니스장 부지에 지하 4층 지상 7층 총 50,400㎡의 규모의 산학협력관과 기숙사를 착공해 오는 2월 완공을 앞두고 있다.

중앙대 필동병원 매입

중앙대 측이 필동병원의 매각을 결정함에 따라 우리대학은 2004년 3월 건물을 인수한다. 우리대학 캠퍼스와 가까운 거리에 위치해 있을 뿐 아니라 유동인구가 많은 곳에 위치해 교육환경 개선과 학교홍보에 긍정적 효과가 기대됐다. 이렇게 매입한 충무로관은 영상문화콘텐츠 특성화사업 추진 거점으로 구축한다. 본관에는 영상센터를 구축했으며 신관에는 산학협력센터가 입주하고, 창업보육센터, 게스트하우스 등이 마련되었다.

지하주차장 완공

2011년 9월에는 학내 주차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주차장이 완공됐다. 경영관·사회과학관 지하공간을 개발했으며 총 445대의 차량 주차가 가능하다.

운동장ㆍ수영장 토지 매입 및 개발

2011년 12월 27일 운동장과 수영장 토지 (23,499㎡) 일체를 기획재정부로부터 매입함으로써 우리대학은 학교면적의 20%에 해당하는 토지를 확보하게 됐다. 이에 앞서 우리대학은 서울시로부터 연면적 18,000여평 6개층의 개발승인을 받았으며 다양한 개발모델 수립이 진행될 예정이다. 이에 따라 운동장ㆍ수영장은 단기계획과 중장기 계획으로 나누어 개방형 친환경 캠퍼스로 꾸민다는 계획이다.

정리=고석현ㆍ손선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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