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상 아침이면 이 자리에서 무언가를 생각하던 P의 모습을 찾을 수 없게 되고부터는 어떤 물속에 무엇 하나 빠져버린 기분을 갖게 되고 ‘벤치’가 갑작스레 넓어진 것 같은 생각을 갖곤 한다.
  이곳에서부터 아침을 옮겨놓고 이곳에서 어제를 잃어버린다는 P가 그토록 두려워하던 가을이 온 탓일까.
  그의 어두운 얼굴을 이 ‘벤치’에서 대하고부터는 늘상 하던 모든 버릇이 이 ‘벤치’에 와있는 것으로 잊어져 가고 있었는데 이제 그가 없는 ‘벤치’는 가을 속에 묻혀버린 것 같다. 애써 가을을 부정하고만 싶어 내 피로한 몸을 내맡기면 아침이슬이 차갑게 피부를 자극해서 어쩔 수 없이 가을 속에 휩쓸리는데 이 조그마한 심신을 잡아줄 P는 오지 않으려나. 차라리 많은 사람들 틈에서 이 부담을 덜어 보는 게 나을 것 같아 자리를 뜨면 강한 P의 영상이 다시금 이곳으로의 매력을 더해주어 이 ‘벤치’와의 달 없는 싸움은 여전히 계속되고 있는 것이다.

  P와 나란히 앉아 있다가 강의실의 문을 들어설 때 나는 P의 모든 것을 부러워했다. 그가 모든 것을 긍정적으로 보는 눈으로부터 가을을 두려워하는 마음에까지 하지만 그가 없는 나는 되풀이되는 ‘벤치’와의 생활이 싫어진 것이다.
  어찌 보면 성숙을 싫어하지 않는 모든 인간처럼 나 자신 역시 가을을 은근히 기다리는 변덕스러움으로 P의 벤치가 두려워 졌는지도 모른다.
  가을은 무척이나 급한 성질을 가진 아주 매정스런 것이라 단정해 보면 차라리 P의 벤치는 그 푸르른 빛으로 나의 한 부분을 채워주고 있는 것 같아 더욱 더 박절한 것인지도 모른다. P의 벤치가 푸른빛을 잃고서 가을을 맞고, 나를 맞아준다면 그땐 가을이 매우 빠르게 성숙해갈런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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