題字(제자)는 筆者(필자)

  책은 양식이라지만 나에게 있어서는 생명이다. 흔히 千種祿(천종록)이 담겼다지만 그저 읽고 챙기고 싶어 산다. 學窓(학창)시절에는 학생증을 잡히고 책을 예약한 뚱딴지니, 대등변을 내서 책사는 버릇은 으레 저지르는 수작이다. 일찍이 중앙 여고에 있을 무렵은 글에 미친 송생원이 아니라 책에 미친 버러지였다. 책을 사달래서 안사주면 심통을 부린 미치광이였다. 힌다한 대학 도서관과 맞서서 독서 競賣(경매)에 달겨 붙었고, 商買(상매)와 어깨를 겨누며 흥정을 했으니 딱한 것은 내가 아니라 나의 욕심이었다. 책을 갖춰야 교육이 되고, 책을 지녀야 自身(자신)이 선다고 억지를 썼다. 이 생각은 지금도 여전한 고질이다.
  집을 줄여 책을 샀고, 품을 팔아 책을 사야 직성이 풀렸다. 하긴 展示(전시)효과를 노린 文集(문집)도 있으나, 그렇지 않고는 도시 좀이 쑤셔 조바심했다. 書(서)사를 불러야 맘이 뇌고, 책을 한권이라도 사야 눈이 감겼다. 이것이 誤入(오입)임을 이르지 않으면서도 ‘한걸음 먼저 읽어 열 걸음 앞서가자’의 信條(신조) 한 결 같이 섬겼다. 숫제 희망의 쟁취라는 엉큼이라도 지녔다면 출세를 위해 뻣뻣한 고개도 숙이고, 권리에 빌붙어 풀방구리의 쥐새끼를 닮았을 텐데, 이에는 막무가내니 거덜이 난 것은 오직 알량한 주머니다. 有識(유식)을 證明(증명)하기 위한 家訓(가훈)부터가 탈이었다. 그러나 후회도 아니고 엄살도 아니다.
  내가 내 돈으로 가장 먼저 산 책은 李光洙(이광수)의 ‘사랑’이었다. 父兄(부형)이 보지 말라니까 그저 발광이 나서 물레 사들인 반항이었다. 하라는 공부는 안하고 하지 말라는 공부를 곧잘 즐겼다. 이렇게 모은 책이 꽤 불었다. 이 재미로 책을 사고 책을 읽는 버릇이 비롯되었다. 마침 외가에서 慶雪書林(경설서림)을 경영했었고, 게다가 光東書局(광동서국)도 아는 집이라 책과는 진작 인연이 컸던 관계로 아초부터 문제는 타고 났었다. 住着(주착) 없는 出帆(출범)이었다.
  東大(동대)에 들어와서는 제법 바지랑대로 하늘의 별을 따보겠다고 專門書(전문서)를 무작정 사서 뒤졌다. 그때 진작 古書(고서)에 눈을 쏘았다면 작이나 좋았으련만 생각할수록 분하다. 하기야 6ㆍ25에 산새처럼 날아갔을 것은 뻔 하나, 눈 뜬 소경의 그제는 좀처럼 가셔지지 않는다. 당시 만해도관훈 등에는 宋申用(송신용)씨의 翰林書林(한림서림), 李謙魯(이겸로)씨의 通文館(통문관), 金益煥(김익환)씨의 古書店(고서점)에는 珍書(진서)가 수두룩했었으니 말이다.

  내가 맨 먼저 입수한 專門書(전문서)는 星州本(성주본) ‘松江歌辭(송강가사)’와 英祖版(영조판) ‘內訓(내훈)’이다. 살만한 처지가 돼서 산 것이 아니라, 헛된 오기가 저지른 엉뚱이 솔직한 고백이다.
  그 값은 中程度(중정도) 월급의 10배인 六萬(육만)환이었으니 어림도 없는 生心(생심)이었다. 이 책은 恩師(은사) 그거 權悳奎(권덕규)선생의 手澤本(수택본)이었기 때문에 더욱 극성을 떨었다. 다음으로 산 것이 나의 專攻(전공)이 된 ‘杜詩解諺(두시해언)’ 重刊本(중간본)이고, 그 초간본은 가장 아끼는 ‘松江歌辭(송강가사)’와 웃돈 五萬(오만)원이나 더 얹어서 李謙魯(이겸로) 씨에게 졸라서 바꾼 第(제)25卷(권)뿐이었다. 이 乙亥字本(을해자본)은 지난여름 同文堂表具店(동문당표구점)에다 加衣(가의)를 부탁했다가 그만 놓치고 만 稀貴本(희귀본)이다. 맙소사 그때 牧隱(목은)의 序(서)가 붙은 ‘金剛經(금강경)’까지 읽었다. 어느 손이 탔는지는 모르지만 시간이 흐르면 절로 탄로가 날 것은 안다. 좌우간 도둑 치고는 너무하다.
  워낙 杜詩書(두시서)라면 사죽을 못 쓰는 杜狂(두광)이라 杜字(두자)만 붙어도 사들이는 미련이다. 한번은 通文館(통문관)에서 杜牧(두목)의 古板本(고판본) ‘杜楚川集(두초천집)’을 사려니까 주인 李謙魯(이겸로)씨가 “아니 李(이)선생, 콩은 사지 않고 팥을 사다니”한다. 딴은 콩은 ‘大豆(대두)’니까 ‘大杜(대두)'요, 팥은 ’小豆(소두)‘니까 ’小杜(소두)‘임에서다. 허니 小杜(소두)인 杜牧(두목)보다 大杜(대두)인 杜甫(두보)를 사라는 호차리였다. 그때 初刊本(초간본) 10卷(권)이 무더기로 나왔으니 어서 80萬환만 내고 사라는 충고였으나 도무지 손이 내키지 않아 시방도 망설이고만 있다. 이 책은 돌아가신 海圖(해도)선생의 愛藏(애장)이었는데 한갓 군침만 삼키고 있는 판이다. 한권에 20萬(만)원만 해도 나에겐 大金(대금)이니 10坪(평)짜리의 오두막으로는 어방도 없어서다. 책으로서 내 눈을 부시게 한 것은 宋本(송본) 보다도 역시 東大圖書館(동대도서관)의 보물 ’釋譜詳節(석보상절)‘ 第(제)23ㆍ24를 손아귀에 넣었을 순간이다. 정녕 眼福(안복)이요 冊福(책복)이랄 수도 있다. 그 책으로 해서 망칙한 욕도 되우 먹었으나 한편 봉사들의 눈을 뜨게 한 것도 사실이다. 아무렴 눈은 있는 법이고, 임자는 있는 법이니, 적이 자위하면서 太公望(태공망)을 읽는다.  지금도 방앗간을 그냥 지나지 못하는 참새는 노상 고서점을 기웃거린다.

  나의 愛藏書(애장서)라면 뭣보다도 退耕(퇴경) 權相老(권상노)선생의 ‘時調漢譯集(시조한역집)’의 手稿(수고)가 으뜸이다. 그 또박또박 메꿔진 草稿本(초고본)은 항상 나의 活訓(활훈)이요 나의 자랑이기 때문이다. 비록 甲寶字本(갑보자본)ㆍ甲辰字本(갑진자본)ㆍ丙子字本(병자우본)ㆍ乙亥字本(을해우본) 등의 ‘種註分類杜詩(종두분류두시)’가 가지런하나 아마 눈이 감길 때까지 泰安(태안)하고 남을 貴重本(귀중본)으로 안다. 近者(근자) 李東林(이동림) 同學(동학)의 도타운 알선으로 ‘杜詩諺解(두시언해)’ 初刊本(초간본) 卷(권)10ㆍ11이 안겨져 심심하면 넘기고 있으나 이 담겨진 도가니는 못돼서 말이다. 杜字(두자)만 봐도 홀려 번쩍 뜨이는 내라서 外地(외지)에 가서도 한 아름의 專杜書(전두서)를 사온 바보지만, 그래도 나는 이 멋에 내일을 살고 이 맛에 오늘을 누려 百餘種(백여종)의 杜詩書(두시서)를 갖고 있다. 초라한 연구실에 꽂힌 ‘四部叢刊(사부총간)’과 사랑을 속삭이고, 캐비넷에 모셔 둔 희귀한 杜詩書(두시서)에 미소를 보내는 재미는 아는 이는 안다.
  자주 봐주지 않아도 앙탈을 안 하고, 어쩌다 넘겨도 언제나 반색을 하는 책과의 호젓한 대화, 이것은 잣달은 去來(거래)가 깃든 사랑이 아니라서 次元(차원)부터가 특이하다. 사뭇 아끼는 난초의 앙징스런 蘭香(난향)이 자욱한 방이지만 그러나 도둑村(촌)이 부럽지 않은 書庫(서고)를 꿈에도 잊은 적은 없다.
  코른 간지리는 책 내음에 파묻혀 하루를 씨름하다 보면 나의 愛藏書(애장서)는 모나리자를 닮으니 책은 나의 생명이 아닐 수 없다. 간 여름 한라산에서도 愛藏書(애장서)의 손짓을 맡은 철부지 二酉(이유)는 이 맛과 이 멋을 팔고 싶어도 사주는 영악이 없어서 이왕 내친걸음에 저승에까지 짊어지고 가려고 서투른 등산을 짐짓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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