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학에 진학하면 여러 가지가 달라진다.
자신을 가르쳐 주시는 분에 대한 호칭도 그 중 하나로, 초등학교 때부터 고등학교 시절에는 “선생님”이라고 부르다가 대학에 진학하면 그 호칭은 “교수님”으로 바뀌게 된다.

그런데 신입생 환영회에서 어느 선배가 “교수님”이라는 말 대신에 “선생님”이라는 말을 사용하라고 신입생들에게 몇 번이나 강조했다. 그때까지만 해도 선생과 교수는 여러모로 다르고 또한 교수라는 호칭을 사용함으로써 스스로 대학생이 되었다는 것을 은연중 즐길 수 있는 시기였기에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의아해하고 있는 신입생들에게 그 선배는 ‘교수라는 호칭은 개인 상호 간의 관계에 따른 것이 아니라 사회적 신분에 대한 객관적 호칭이기에 은사에 대한 호칭으로는 적절치 못하며, 그것은 마치 고등학교 때 선생님을 교사님이라고 부르는 것과 같기에 우리 학과에서는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라는 취지의 말을 했으며, 그 후로 대학생활 내내 교수님이란 호칭 대신에 선생님이란 호칭을 사용한 기억이 있다.

대학 사회에서의 피교육자 시선에서 보면 가르쳐 주시는 분에 대한 호칭은 여러 가지다. 교수, 선생, 스승 혹은 은사 등이 거기에 속할 것이고, 교육자의 시선에서 보면 그 가르침을 받는 사람에 대한 명칭도 수강생, 학생, 제자 등 여러 가지일 수 있다.

그것은 두 사람이 서로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느냐에 따라 다르며, 그때 이루어진 호명관계가 지니는 의미의 차이는 매우 크다.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지만 과거에는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많았다면, 지금은 선생과 학생의 관계도 아닌 교수와 수강생의 관계가 많아지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교육을 상품으로 여기고 학생을 고객으로까지 생각하는, 그리고 대학을 수익을 내는 곳이라고 생각하는 일부 풍조를 생각하면 그것은 어쩌면 당연한 현상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불교 선종의 공안(公案) 가운데 줄탁동기(啐啄同機) 혹은 줄탁동시(啐啄同時)라는 말이 있다. ‘줄’은 알 속에서 자란 병아리가 알을 깨고 세상에 나오려고 부리로 껍질 안쪽을 쪼는 것을 말하는 것이며, ‘탁’은 그 소리를 듣고 어미 닭이 품고 있는 알을 밖에서 쪼는 것을 말한다. 불교에서 병아리는 깨달음을 얻으려는 제자로, 어미 닭은 수행자에게 방법을 일러주는 스승으로 비유하면서 ‘줄’과 ‘탁’이 동시에 이루어져야 깨달음을 얻을 수 있다는 것을 일러주는 화두이지만 교육현장에서는 바람직한 사제지간과 그 역할을 보여주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교수와 수강생이라는 호명 관계로는 줄탁동기가 이루어지기 힘들다. 스승과 제자가 지식은 물론 삶의 세목(細目)과 온기(溫氣)까지 주고받는 사이라면, 선생과 학생은 지식을, 교수와 수강생은 상품을 주고받는 사이에 가깝기 때문이다. 모든 피교육자와 교육자가 제자와 스승 혹은 선생님으로 호명되는 날을 간절하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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