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을 읽는다. 나는 지금껏 책을 읽고 지적인 사고를 하는 것이 문명인의 개념인 줄 알고 있었다. 문자 그대로 번역하자면 문명인은 ‘문명이 발달한 사회에서 사는 사람’이다.

그날도 평화롭게, 아니 다소 힘겹게 혜초원정대를 실은 버스는 카라코람 하이웨이를 달리고 있었다. 비포장도로를 구불구불 계속해서 달렸다. 잘될 리 없는 냉난방 탓에 이미 더위를 먹은 지 오래. 게다가 이제는 익숙해질 만한 타국의 향기까지 내 코를 끊임없이 자극한다. 멀미가 심해져 밖을 잠시 바라보면 어김없이 눈앞에 펼쳐지는 건 까마득하고 끝 없는 절벽뿐. 도리어 병을 얻고 다시 문을 닫는다.

결국, 포기한 나는 눈을 감고 조용히 명상에 잠기기로 한다. 그런데 갑자기 아랫배에서 슬슬 신호를 보내온다. 사실 혜초원정대에서 가장 음식을 많이 가린 것은 나였다. “21세기 청년혜초 도전! 나는 세계를 경험하고 와야지!”라는 굳은 의지마저 무색하게 만든 중국의 기름지고 재료를 알 수 없는 음식들. 게다가 수저 위에 각종 벌레들이 나앉고 새까만 행주가 식탁 위를 오가는 걸 보니 도무지 음식을 입에 댈 수가 없었다.

결국, 깨작깨작 먹던 나는 자연스레 얹히고 얹혀 장에 이상이 생기기에 이르렀다. 근데 왜 하필 이 버스에서일까, 부처님에게 원망해봐도 소용없는 일이었다. 어찌 됐건 나는 이 상황을 해결해야 한다. 드디어 사진을 찍기 위해 버스가 멈추고 나는 가이드에게 화장실이 어디냐 물었다.

미안한 듯한 가이드의 웃음. 그의 손끝을 따라가 보니 낮은 모래언덕이 하나 덩그러니 있었다. 아, 설마. 그렇다. 이곳은 화장실마저 드문 곳이었다.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나는 모래언덕으로 다가갔다. 그나마 황무지가 아닌 것을 위안으로 삼으며 혜초원정대 사람들과 거리를 재보기도 하고 오만가지 상황설정을 했다. ‘이 모래가 바람이 불어 날아가면 어쩌지?’, ‘저 버스 위에서 보일수도 있는 각도인데...’

하지만 급했던 나는 더 이상 생각을 할 겨를도 없이 아무것도 없는 대지에서 일을 해결했다. 순간 느껴지는 자유로움. 처음엔 자연화장실을 이용하는 것이 미개하다고 느껴졌다. 일을 치르고 난 후에는 그간 걱정이 오히려 미개했던 것임을 알게 됐다.

한순간의 경험으로 문화충격 그 자체였던 실크로드가 세계인을 알아가는 문화의 장으로 변모한 것이다. 이후로는 힘든 일도 있었지만 모든 여정이 즐거움으로 다가왔다. 혜초도 분명 실크로드를 건너며 수많은 문화충격을 겪었을 것이다. 그는 왕오천축국전에 오천축의 풍속에 대해 보고 듣고 체험한 이야기를 낱낱이 기록했다.

솔로우는 “문명인이란 보다 더 경험이 많고 더 현명해진 야만인이다”라고 말했다. 이렇듯 문명인이란 다른 세계를 경험하며 세계에 대한 앎을 추구하는 것이 아닐까. 단순히 문자를 읽고 문명이 발달한 사회에서 안주하는 것은 진정한 문명인이 아니다. 두려움을 떨치고 책에서 뛰쳐나와 직접 몸소 부딪히며 세계에 대한 경험을 쌓은 혜초.
그는 21세기 진정한 문명인의 롤모델이다.

 

백선아 기자 amy@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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