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마도 긴장하는 카리스마, 또 그 속의 소탈함 - 배우 최민식(연영 89졸) 동문 인터뷰

Prologue.
‘배우’ 최민식 동문(연영 89졸)을 표현하는 가장 적절한 단어는 바로 ‘강렬함’이다.
북한군 특수부대원·3류 건달·복수자·퇴물 복서·살인마 등등… 최 동문은 한국영화사에 남을만한 ‘쎈’ 역할을 쉼 없이 연기하며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의 배우로 자리매김했다. 그래서일까. 오랜만에 모교를 방문한다는 최 동문과의 인터뷰를 앞두고 혹시나 하는 걱정이 밀려왔다. 하지만 기우였다. 최 동문은 인터뷰 내내 거침없으면서도 소탈하고 솔직한 대답을 들려주었다. 지난 16일, 문화관 두리터는 최 동문의 호탕한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S#1. 시네마키드의 꿈
고등학생 시절, 그저 영화를 보는 것이 좋았다. 입시위주의 교육에 갑갑함을 느껴 학교도 자주 빼먹었다. 대신 동네극장에서 하루 종일 영화를 봤다. 최민식 동문에게 있어 진정한 학교는 바로 동네극장이었다.
“일상이란 게 참 단조롭잖아. 거기에 비하면 연극이나 영화 속 새로운 세상에서 사는 건 정말 충격이었지 뭐. 황홀하기까지 했어.”
최 동문은 특히 창작극 ‘난쟁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을 보며 연극이 사람의 마음을 얼마나 짠하게 만드는지를 느꼈다고 한다. 연극이나 영화를 볼 때마다 노트에 자신의 감상을 ‘날 것 그대로’ 적어두었다고.
“정말 형식도 뭐도 없이 있는 그대로 내 느낌을 적은거야. 지금 보면 참 재밌을 텐데 말이야. 잃어버려서 너무 아쉬워.”
노트가 감상으로 빼곡히 채워지면서, ‘직접 해보고 싶다’는 꿈도 함께 커졌다. 그래서 고등학교 3학년 때 극단 ‘뿌리’의 단원으로 들어가 기초를 다졌다. 그리고 1982년, 마침내 연극영화학과 신입생으로 동악에 발을 내딛었다.

S#2. 프로의 자세를 배우다
대학 시절, 한 치의 후회도 없다. 그만큼 충실히 보냈다. 매일 새벽 등교해 분장실, 스튜디오, 연습실 등 곳곳에 물광을 내며 하루를 시작했다. 꼭 배우로 출연하지 않더라도 항상 공연에 참여했다.
“영섭이 형(연극학부 신영섭 교수)이랑 문어(연극학부 이동훈 교수)랑 곧잘 어울려 다녔지. 힘들면 소주 한 잔하고. 고됐지만 정말 즐거웠어.”

그렇게 4년, 소극장을 집이라 생각하며 연기에 빠져들었다. 엄격한 규율과 독특한 시스템을 갖춘 우리대학 연극영화학과 덕분이었다.
“약속에 10분 늦는다는 게, 어찌 보면 작은 일이잖아? 그런데 그걸로 선배들한테 많이 깨졌지(웃음). 당시에는 그게 참 싫기도 했어. 나도 사람인데. 근데 지금 생각하면 그게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네. 스타니슬랍스키(Constantin Stanislavski)의 ‘배우수업’에 보면 ‘배우는 모름지기 군인과 같이 철저한 규율 속에서 생활해야 한다’는 대목이 나와. 보통 연기를 개성이나 자유 뭐 그런 걸 맘껏 펼치는 걸로 생각하잖아. 맞아. 맞는데, 그건 엄격한 규율 속에서 단련을 거쳐야 가능한 거야.”

최 동문은 연기는 혼자 하는 것이 아니라 협업이라며 기본부터 지켜야한다고 소리를 높였다. 그러면서 대학 시절의 배움 덕분에 지금까지 배우생활을 하면서 한 번도 스텝들을 기다리게 한 적이 없다고 덧붙였다. 실제로 우리대학 연극영화학과 출신 연기자들은 훌륭한 기본자세와 태도로 여러 분야에서 좋은 평을 듣는단다.

S#3. 자신을 위한 연기에 빠지다
명배우에게 작품 질문도 빼먹을 수 없다.
“어떤 작품이 가장 애착이 가나? 배우 인생의 전환점이 된 작품은 무엇이냐”고 우문(愚問)을 던졌다. 그러자 “그런 거 없어”라는 현답(賢答)이 돌아왔다. 담배 한 개비를 비벼 끄며, 최 동문은 대답을 이어갔다. 눈빛에서 진지함이 묻어났다.

“열 손가락 깨물어서 안 아픈 손가락 없잖아. 작품 하나하나 온 힘을 다해 찍는 거야. 장르, 소재 하고 상관없이 작품에 명확한 메시지가 있고 매력이 있으면 어떤 배역이든 가리지 않아. 일단 맡은 역할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고민하고 연구해. 온 열정을 다 쏟아 붓지. 그러니까 작품 모두가 다 소중한 거야. 엄청 힘들고 스트레스 받아도 연기 자체의 마력에 푹 빠져버리니까 즐겁게 할 수 있더라고(웃음).”

최 동문은 배우의 프로정신을 강조하기도 했다. 연기를 취미로 하는 아마추어와 달리, 프로는 공연을 위해 최적의 컨디션을 유지하고 온 정성을 다해 끊임없이 자신을 통제해야 한다는 것이다.
얘기를 듣다보니, 문득 최 동문이 연기를 하는 이유가 궁금했다. 어떤 현답이 돌아올까를 기대하면서 다시 한 번 우문을 던졌다. 역시나 현답이 돌아왔다.
“물론 대중을 위해서 연기를 하기도 해. 하지만 무엇보다 내 자신을 위해서 연기를 하는거야. 관객과 소통하고 교감하면서 내 자신을 발견하고 표현하거든. 이게 정말 커다란 기쁨이야. 또, ‘인생이 뭐냐?’ ‘사랑은 또 뭐고 미움이란 또 뭐냐’ 이런 원초적인 질문에 찾아가는 길을 걷는다는 의미도 있지.”

S#4. 최민식에게 동국대란?
인터뷰 내내 최 동문을 향한 “몇 기 아무개입니다!” 하는 연극학부 후배들의 인사소리는 끊이지 않았다. 지인들도 종종 최 동문에게 인사를 건네며 안부를 물었다. 최 동문도 밝은 표정으로 후배들의 인사에 답했고, 지인들과 격의 없이 장난을 나누기도 했다. 최 동문은 “참 좋네. 참 좋아”라며 오랜만에 모교를 방문한 느낌을 풀어놓았다. 그에게 동국대란 무엇일까?

“한마디로 고향집이지 뭐. 배우의 의미를 친절하게 가르쳐주고 내 길에 대한 확신을 굳히게 해준 그런 곳. 연기자로서의 밑거름도 다 학교 다니면서 쌓은 거고. 정말 열정 하나 가지고 무서운 것도 없이 이 길에 뛰어들었는데, 오늘 그 초심을 잊지 않기 위해 온 거야.”
최 동문은 그런 ‘고향집’ 같은 학교가 발전하는 모습을 보며 기쁨과 함께 아쉬움을 느낀다고도 말했다. 현대적이고 세련된 것도 좋지만 전통과 역사를 간직한 공간을 보존했으면 싶단다. 오랜 역사를 자랑하던 연극영화과 소극장이 사라진 건 정말 아쉬운 일이라고.

“정말 하나의 문화유산인데 말이야. 전통과 역사도 함께 지키는 게 당연한 거지.”
후배들을 위한 조언도 남겼다. 주어진 일에 얽매이지 말고 젊음의 특권을 누릴 것을 주문했다. 특히 연극학부 후배들이 걸을 힘든 길을 걱정했다. 정책 입안과 제도 마련 같은 자신을 포함한 선배들이 해야 할 일에 큰 책임을 느낀다고.

“피할 수 없으면 즐기는 거야. 어려울수록 더 즐기는 거지. 발 담근 물이 똥물이라고 옷을 걷을게 아니라, 그냥 묵묵하게 정말 열심히 걷는 거야. 그러다보면 기회는 반드시 와. 확신을 가지라구. 그 길이 조금이라도 수월해지도록 나 같은 선배들이 힘을 보탤 테니까 말이야.”

Epilogue.
1시간 정도로 예정했던 인터뷰는 4시간이 넘어서야 끝났다. 그 긴 시간 동안, 최민식 동문은 자신의 뚜렷한 연기철학과 소신을 진솔하게 풀어놓았다. 추억을 더듬으며 때로는 격앙되기도, 때로는 철없는 스무 살 그 때의 웃음을 보여주기도 했던 최 동문을 보며 그가 천생 배우란 생각이 들었다. 동악에서 태어난 한국 최고의 배우 최민식 동문, 그가 가진 앞으로의 꿈은 무엇일까?

“이것도 거창한 거 없는데(웃음). 그저 재밌고 의미 있는 영화 계속 만드는 거지 뭐. 열심히 하다보면 사람들 기억에 남게 되겠지?”

김유경ㆍ이재우 수습기자 kkllhj110@dongguk.ed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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