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나이 마흔이 되면...이라는 문장을 수없이 되뇌이던 때가 있었다. 아마 중학교 3학년 가을 무렵이었던 것 같다. 몸이 약해 6개월간 학교를 쉬게 되면서 ‘아 나도 죽을 수 있구나’라는 생각을 처음 했고 나름 심각했다.

그러다 문득 마흔이라는 단어를 떠올렸던 것은 ‘내가 과연 마흔살까지 건강하게 살 수 있을까?’라는 지극히 비극적인 소녀적 감수성에 기인한 바가 크다.
그 당시 어린 내게 마흔이라는 나이는 왠지 까마득해서 쉽게 도달하기 어려운, 그러나 가장 멋지고 반짝거리는, 인생의 정점쯤으로 여겨졌던 듯하다. 그래서 생각했다. 정말 후회 없이 열심히 살리라. 치열하게 살리라. 그리하여 내 나이 마흔이 되면 자랑스러운 나에게 툭툭 어깨 한번 쳐주고 장렬하게 전사(?)하리라.
하지만 삶은 그렇게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었다. 20대의 나는 이제 막 걸음을 뗀 아이처럼 혹독한 세상살이를 하나하나 깨쳐나가기에 바빴고 30대의 나는 방송일에 제법 재미를 붙여 하루하루의 의미보다는 프로그램 한편 한편으로 1년을 계산하며 살았다. 그러다가 언제 어디서 나타났는지 모르게 불쑥 마흔을 맞았다. 너무도 싱거운 등장에 나는 제대로 묻지도 못했다. 너 정말 열심히 살았니? 네 어깨 툭툭 쳐줄 수 있을 정도로 열심히 살았냐구.

그러나 물어도 답하지 못했으리라. 그로부터 다시 십년이 지난 지금까지 내 삶은 아직도 치열한 전투중이니까.
쉰이라는 나이에 나는 열두살 열네살 두 아이를 둔 엄마이고, 방송경력 26년째 접어든 중견 작가이고, 대학생들을 가르치는 선생님이고, 뒤늦게 공부를 더 해보겠다고 덥썩 다시 책을 잡은 늦깎이 대학원생이다. 하루 스물 네시간을 잘라 아침 눈뜨면서 저녁까지는 학교공부와 강의와 방송일을, 퇴근 후 집에 와서는 아이들 뒤치닥꺼리를, 아이들 재우고 새벽 두세시까지는 밀린 공부를 한다. 미처 못 다 읽은 책을 읽는 주요 장소는 출퇴근 시간의 전철 안이다.

정말 좋은 엄마가 되고 싶었고, 정말 좋은 선생님이 되고 싶었고, 정말 좋은 작가가 되고 싶었던 소녀 시절 꿈을 하나씩 실현 중이다.
마흔을 훌쩍 넘겨 쉰이 되어서까지 내가 이렇게 꿈을 놓지 않을 수 있었던 가장 큰 힘은 아무리 힘들어도 나는 할 수 있다는 믿음이다. 희망이다.
‘생로병사의 비밀’이라는 의학 다큐멘터리를 5년간 하면서 무수히 많은 환자들을 만났었다. 그 중 극적으로 암을 극복한 말기암환자들의 인터뷰가 인상적이다. 전문의가 “당신은 말기암입니다. 생존확률은 5%에 불과합니다”라는 선고를 내렸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절망에 빠지지만 그들은 한결같이 이렇게 물었다고 한다. “생존가능성이 5%나 된다구요? 그럼 저도 살 수 있겠네요”

꼭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난 남들이 이야기하는 5%의 가능성에 도전하려 한다. 왜? 설령 실패를 하더라도 ‘원하니까 해보는 것’과 ‘원하지만 해보지 못하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으니까.
내 치열한 삶은 아직도 현재 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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