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사지원본부 학생서비스팀 시행 충남 마곡사 템플스테이를 다녀와서
속세를 떠나 번뇌를 내려놓다

정각원에서 참된 수행을 다짐하며 삼배를 올린 학생들은 부푼 가슴을 안고 버스에 올랐다. 출발한 지 두 시간 반. 어두컴컴한 밤길을 뚫고 그렇게 마곡사에 도착했다. 수행복으로 환복 후 영명스님을 만났다. 지난 2월부터 템플스테이 진행을 맡은 영명스님은 “세상의 걱정을 잠시 잊고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으면 한다”며 일정을 설명했다. 학내 템플스테이 동아리 부회장인 서창민(국교2) 군은 “늦게 도착했지만 공기가 너무 좋아 머리가 맑아진다”며 내일 있을 일정에 기대감을 보였다.

여러 학생들이 서울에서 잘 볼 수 없는 별을 보기 위해 방에서 나와 밤하늘을 보았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사찰에서의 취침시간인 밤 10시가 다가왔다. 하지만 학생들은 이 시간에 눕는 것이 익숙하지 않았다. 멀뚱멀뚱 뜬 눈으로 다음 날 새벽 3시 기상을 걱정하며 사찰에서의 밤이 지나갔다.

새벽 3시. 경내에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졸린 눈을 비비며 법당으로 향했다. 법당에는 목탁소리가 울려 퍼졌다. 중간 중간 스님의 예불에 제창하는 학생들도 눈에 띄었다. 아침예불 후 다시 108번의 내려놓기를 했다. 일 배씩 정성을 쏟을 때마다 참회하는 마음과 번뇌의 소멸을 바라며 40분간 정성스레 ‘번뇌’를 내려놓았다. 그리고 ‘참 나’를 찾았다. 어느새 새벽의 차가운 공기는 땀과 열기에 묻혀버렸다. 송가영(국통4) 양은 “40배를 할 때부터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머리가 맑아지고, 집착이 사라지는 느낌이 들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108배로 놀란 근육을 진정시키기 위해 스트레칭과 좌선 명상의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아침 6시. 아침공양시간이 돌아왔다. 발우공양은 아니었지만 참가 학생들은 자발적으로 잔반 없는 공양을 만들었다. 공양 후에는 경내를 청소하며 속세의 더러움을 쓸어냈다. 청소 후 둘러본 마곡사. 어둠 속에 숨었다가 그 자취를 드러낸 마곡사의 풍경은 상상 그 이상이었다. 산으로 둘러싸이고 앞에는 물이 흐르는 좋은 터에 자리 잡은 마곡사에 가을이라는 계절이 더해지자 눈을 돌리는 곳마다 장관이었다.

천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마곡사. 신라의 고승 자장율사가 창건할 당시는 대사찰이었으나 현재는 영산전(보물 제800호), 대웅보전(보물 제801호) 등의 몇몇 전각만 남아 있다. 또한 백범 김구 선생이 일본군을 피해 은신한 백범당은 많은 이들이 찾고 있다. 1898년 마곡사에서 은신한 김구 선생은 이곳에서 출가한 뒤 1946년 다시 돌아와 향나무를 심었다. 남아있는 백범당과 향나무가 당시의 역사를 보여주고 있었다.

“다른 프로그램은 못 해도 이것만은 해야 된다.” 영명스님이 강조한 명상코스걷기. 남녀가 짝을 이루어 명상코스를 완주하는 것이다. 한 명이 안대를 쓰고 나머지 한 명은 파트너를 보호해야 한다. 낯선 사람을 믿고 나를 완전히 맡겨야 하는 시간. 가장 완벽한 호흡을 맞춘 이다교(교육대학원 교육학) 씨와 석동우(경행2) 군은 “짧은 시간이었지만 서먹서먹한 분위기를 없앨 수 있었고 같이 나아가는 공동체적 느낌을 받게 해주는 좋은 프로그램이었다”고 소감을 밝혔다.

마곡사를 떠나 속세로 돌아오기 전 영명스님은 참가 학생들에게 오색실 팔찌를 선물했다. 영명스님은 “타 종교인이 참가해 더욱 반가웠다”며 “대부분 참가자들의 표정을 보면 삶의 고단함에 눌려 있지만 나갈 때는 행복해하며 웃는 모습을 볼 수 있어서 보람을 느낀다”고 밝혔다. 또한 “내 한마디가 그 사람의 인생에 중요한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 진지하게 임하고 있다”며 인사를 나누었다.
경쟁이 치열하고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큰 이 사회. 일상에 지쳤을 때 휴식이 필요하다. 템플스테이를 통해 모든 것을 내려놓고 참 나를 찾는 시간이었다.

이준석 수습기자 stone@dongguk.edu

저작권자 © 대학미디어센터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