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사람봉사단 전공연계봉사활동 보육원서 진행

▲봉사활동을 함께 진행 한 동국대학교 체육교육과 학생들과 함께.

“거시기 허리는 펴고, 엉덩이를 쭈~욱 빼야제(빼야지). 방망이는 뒤로 젖히고, 그려!”
무등산 자락, 광주광역시 운림중학교 운동장. 구수한 전라도 사투리가 울려 퍼졌다. 공포의 검빨유니폼(검은색과 빨간색으로 구성된 타이거즈의 유니폼), 해태왕조의 전설. 그라운드를 떠났지만 야구에 대한 열정, 그리고 카리스마는 그대로였다. 바로 김성한(54세) 전 기아타이거즈 감독. 2004년 기아타이거즈 감독직을 끝으로 그라운드를 떠나, 경기 운영위원과 해설위원 등으로 나섰던 그가 다시 나타났다. ‘한국야구’의 내일을 이끌어갈 꼬마선수들을 지도하기 위해.

우리대학 체육교육과 출신인 김성한 감독은 지난 19일, 대학 후배들과 함께 광주광역시 무등육아원(원장=정갑진) 원생들에게 야구를 지도하는 시간을 가졌다. 참사람봉사단(단장=김희옥)과 체육교육과의 ‘체육지도봉사프로그램’에 참가한 후배들을 위해 힘을 보탠 것이다.
타석에 들어선 류기원(14ㆍ운림중학교1)군. 헐렁한 유니폼을 입은 꼬마야구선수. 긴장한 표정으로 연신 방망이를 고쳐 잡았다. 꼬마타자 기원 군이 방망이를 휘둘렀다. 헛스윙이었다. 멋쩍어하는 류 군을 향해 김 감독이 한마디 했다. “거시기 이것(방망이)을 이렇게 잡아야제! 힘을 빼야쓰겄다(빼야되겠다).” 그 후 2구. ‘탁!’ 경쾌한 소리를 내며 공은 하늘 높이 올라가 포물선을 그렸다. 홈런! 박수가 터져 나왔다.
해태타이거즈(현 기아타이거즈) 3번 타자 오리궁둥이 김성한. 그는 1982년 우리대학 졸업과 동시에 해태타이거즈의 원년멤버로 프로야구계에 발을 들여놓았다. 14시즌을 뛰는 동안 타점왕 2회, 홈런왕 3회, MVP 2회, 최다안타 2회 등 한국 프로야구에 굵직굵직한 역사를 만들어간다. 김성한의 활약에 광주를 기반으로 한 타이거즈는 7회 우승, 올스타전 12회 출전이라는 경이로운 기록으로 80년대 한국 프로야구계를 주름잡았다.

 

▲김성한 감독은 무등보육원 원생들에게 매사에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모든 일이 형통하니, 꿈을 이루기 바란다고 원생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다음 타자는 강민국(16ㆍ운림중학교3)군. 방망이를 잡은 민국 군을 보며 김 감독이 한 마디 한다. “방망이를 높이 들어야 혀(해). 시선은 공을 봐야제(봐야지)!” 김 감독은 직접 시범을 보였다. 꼬마선수들은 엉덩이를 쭈~욱빼고 김성한 감독의 트레이드마크 ‘오리궁둥이’를 장난스럽게 따라하며 김 감독을 주시하고 있었다.
김성한에게 광주는 언제나 애틋하다. 그는 광주 해태타이거즈가 출범한 1982년부터 김성한은 타이거즈의 전설이었다. 1983년 전기리그. 김성한은 해태 홈그라운드인 무등경기장에서 열린 ‘삼미슈퍼스타즈’와의 경기에서 2차전 선발투수로 깜짝 출전해, 완봉으로 틀어막으며 팀을 전기리그 1위로 도약시킨다. KBO역사상 유일무이한 타자 겸 투수였다.
1995년 선수생활을 은퇴한 김성한은 타이거즈의 수석코치를 시작으로 지도자의 길을 걷는다. 2004년 감독으로 지휘봉을 내려놓을 때까지 22년 김성한의 야구정신은 무등산에서 출발했고, 무등산에서 빛났으며, 무등산에서 막을 내린다.

김성한 감독은 무등보육원 원생들에게 “나도 중학교시절 부모님이 돌아가시고, 교감선생님 덕분에 어렵게 야구를 배웠다”며 “매사에 긍정적인 생각을 하면 모든 일이 형통하니, 꿈을 이루기 바란다”고 원생들을 격려하기도 했다.
김성한 감독에게 가장 많이 칭찬을 받은 김광수(15ㆍ운림중학교2) 군도 “감독님께 계속 ‘잘한다’는 칭찬을 들을 때마다 기분이 좋았다”며 “김성한 감독님처럼 훌륭한 야구선수가 되고 싶다”고 장래 포부를 밝히기도 했다.

사인을 해달라는 아이들의 요청에 호탕한 웃음을 지어보이며 정성스레 사인하고, 안아주는 김성한 감독이다. 김 감독은 “대학 후배들과 함께 운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보육원 아이들과 친해지는 즐거운 경험을 했다”며 “앞으로도 후배들과 함께 계속 봉사하는 기회가 계속 되었으면 한다”고 밝혔다. 김성한 감독은 그렇게 ‘내일의 타이거즈’를 키우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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