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득 누군가가 흘리고 간 말을 줍는다.
  ‘편지꽂이에 가보라’는 말을 미소와 함께 남겨둔 채 가버린 것이다.
  편지꽂이에는 숱한 얘기들이 가득 담겨져 있었다. ―내게 온 소식은 어떤 것일까―하는 생각으로 이것저것 뒤적였다. 그 중 가장 낯익은 글씨가 또박 또박 쓰여진 봉투를 하나 뽑았다. 도톰하게 담긴 친구의 얘기를 손끝에 느끼며 편지꽂이에서 돌아서려 했다.
  그런데 뭔가 허전함을 느꼈다. 아직 꽂혀있는 몇 개의 봉투를 뽑았다. 거기에는 우표가 없는 봉투들이 적지 않게 꽂혀있었다.
  반쪽난 인장만이 허전하게 남아 있을 뿐 내가 받은 편지의 우표도 이미 누군가에 의해 떼어진 흔적만 남고 우표는 붙어 있지 않았다.
  내 동생이 방학숙제로 흔해빠진 우표를 몇 장 모으다가 이제는 제법 우표수집책을 몇 권씩이나 가지고 있는 것을 생각하면 우표를 떼어간 이에게도 얼마간 이해는 가지만, 그리 기분 상쾌한 일은 되지 못한다. 하기야 우표 한 장 붙이는데 무슨 정성이 나타나라고 할지 모르지만 그 떼어진 자리에서 친구의 정성을 발견하지 못함이 미안한 일이 되지 않을까.
  어떠한 일이나 취미에 열의를 쏟는다는 것이 얼마나 멋있는 일인가. 무엇인가에 열중할 줄 모르는 이를 어찌 건전하고 보람찬 생활의 영위자라 할 수 있을까마는 그 취미나 일을 위해서 누군가의 기분을 잠시나마 상하게 한다면, 글쎄, 다른 이들은 어떻게 생각할까? 언제나 정이 오가는 친구, 지금은 서로 가까이 있지 않아서 그 메울 수 없는 공백을 한 장의 엽서를 통해 메워 보려는 친구의 정성을 가득 담고 찾아온 편지, 이미 떼어진 우표를 탓하면 무슨 소용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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