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태섭 변호사

고등학교 시절 우연히 선배의 책장에서 밀턴 프리드먼의 ‘선택의 자유’라는 책을 발견했다.
우파(극단적인) 경제학자 프리드먼은 이 책에서 자유주의 경제 체제, 특히 정부의 간섭 없는 자유로운 경쟁에 대해 상찬을 늘어놓는다. 왜 승자에게 보상이 주어져야 하는지, 그것도 보통 사람은 평생 꿈꾸기 어려운 엄청난 보상이 주어져야 하는지 노벨 경제학상을 탄 이 석학은 고등학생도 이해하기 쉽게 설명을 해준다.
 주먹질 좀 잘한다고 무하마드 알리가 천문학적인 돈을 버는 것이 억울한가? 아름다운 다리를 가졌다고 해서 엄청난 출연료를 받는 마를레네 디트리히는 부당한 수익을 올리는 걸까? 프리드먼은 그렇지 않다고 답한다. 그들에게 그렇게 큰 보상을 주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경쟁을 할 유인을 덜 느끼게 된다. 스타 시스템을 없애면 경제 규모 자체가 작아지기 때문에 나머지 사람들의 몫도 줄어들게 된다.

 즉 알리가 돈을 더 받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이 적게 받게 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스타들이 많은 돈을 벌면서 경제에 자극을 주면 모든 사람들이 잘 살게 된다. 그리고 그런 체제는 우리가 선택한 것이며, 우리에게 자유로운 선택을 할 기회를 제공한다는 것이었다.

 너무나 명쾌했다. 왜 우리가 경쟁을 해야 하는지 그 이유가 손에 잡힐 듯이 보였다. 인간 본성에 대한 통찰에 기반한 주장에 반박의 여지는 없어보였다. 그리고 25년이 흘렀다. 완벽해보였던 프리드만의 이론은 여지없이 틀렸다는 것이 드러났다.

 경쟁을 통해서 모두가 잘 살게 된다는 생각은 오류였다. 일단 심각한 양극화가 나타났다. 1970년 상위 1%는 전체 소득의 10%를 가져갔다. 2007년이 되자 그들이 차지하는 비율은 23%로 늘어났다. 더 심각한 문제는 나머지 99%의 삶이다. 과거에는 열심히 일하면 성공할 수 있다는 꿈이라도 꿀 수 있었다. 그러나 경쟁을 극한으로 밀어붙인 결과 이제 99%의 사람들은 성공은 커녕 생존을 놓고 싸우게 되어버렸다.

 이윤을 절대시하는 가치관은 결국 고차 방정식을 응용하여 리스크를 헤지하면서 막대한 수익을 올리는 금융 자본을 만들어냈다. 99%가 그나마 가지고 있던 경제적 여유분은 각종 펀드의 수익으로 빨려나갔다. 전 세계 곳곳에서 많은 사람들이 시위에 나선 것은 이런 상황에서 혼자 할 수 있는 일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해야 할까. 불행히도 아직 답은 없다. 정책 결정자도, 시위대도 대안을 내놓지 못 한다. 시위에 뚜렷한 지도자가 없고 요구사항도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저항하는 사람들이 요구사항조차 말하지 못하는 상황. 그것이 지금의 비극이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있다. 머리를 맞대고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다.
이제는 ‘닥치고’ 성실히 노력하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일단 모든 사람이 살 수 있는 세상의 설계가 나와야 한다. 그 전에는 세상을 점령하려고 나온 시위대에게 들어가라고 할 명분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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