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환스님

 우리는 요즘 아이폰과 아이패드 등 스마트 형태의 기기들이 대세인 시대에 살고 있다. 물론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에게는 무용지물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명의 이기(利器)가 우리에게 주는 혜택은 정말 고맙다. 그 가운데서도 어둠을 밝혀주는 전구를 발명한 토마스 에디슨의 공적은 특히 돋보인다. 그러나 그의 유년은 참 엉뚱했다. 직접 알을 까겠다며 거위 알을 품은 적도 있고, 털에서 불꽃을 일으킨다며 고양이 두 마리를 마구 비벼대기도 하였다고 한다. 그러던 그가 마침내 백열전구와 축음기 등 수많은 발명품을 만들어냈다. 그래서 에디슨의 장례식날 밤, 미국인들은 모든 전기불을 1분간 끄면서 위대한 발명가의 죽음을 애도했던 것이다.

사실 거위 알을 품은 에디슨을 보며 사람들은 “정말 못 말려!”라고 웃어넘겼다. 그들은 알에서 거위가 나올 수 있나 없나 하는 결과에만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러나 정작 에디슨은 거위 알을 품고서 무슨 생각을 하였을까? 알이 몸에 닿을 때의 촉감, 알과 자기 몸의 체온 변화, 어미 거위의 웅크린 자세, 알을 품은 어미 거위의 심정까지 체험하지 않았을까? 그것이 어린 에디슨에게는 입체적인 자극과 살아있는 데이터로 작용했을 것이다.
자신이 직접 해보고, 직접 느껴보고, 직접 깨닫는 것, 이것이야말로 최상의 공부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종교도 마찬가지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경전 속에 갇혀 있는 우아한 향기’가 아니다. 만약 이러한 고정관념을 가졌다면 그때는 사정없이 깨부수어야 한다. 왜냐하면 경전 속에 갇혀있는 향기에는 생명력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끄집어내야 한다. 팔을 걷고 경전 속으로 ‘쑤~욱!’ 손을 집어넣고는 경전 속 가르침을 거머쥐고 끌어내어 우리들의 삶과 생활에다 적용시켜야 한다. “이렇게 한다고 설마 내가 달라질까?”라는 생각은 금물이다. 나와 경전, 나와 상대, 나와 세상을 하나로 보고 행동해 보는 것이다.

에디슨이 거위 알을 품고 느꼈듯이 내 몸의 체온과 내 마음이 변해야 한다. 그러면 얼었던 곳이 녹고, 막힌 곳이 뚫려 통하게 된다. 이웃으로, 세상으로 그 향기가 퍼져나가 나의 일상이, 인생이 바뀌어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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